2008. 8. 29. 13:31

Eddie Condon

Eddie C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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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의 역사는 수많은 기인들로 채색되어 있는데, 에디 콘던 역시 그 일각을 장식하는 사람이다. 고래급 애주가였으나, 차림새는 언제나 단정했고 예의도 발랐고 미소 띤 얼굴에 재치있는 유머 감각까지 지니고 있었다. 네 줄짜리 기타라는 그 예를 볼 수 없는 기묘한 악기를 연주했으나, 절대로 솔로는 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등장한 모든 음악 스타일을 거부하고, 자기 클럽을 경영하면서 죽을 때까지 오직 변함없는 스타일의 딕실랜드 재즈를 연주했다.
  지금 세상에 에디 콘던의 팬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많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눈을 감고 그의 연주를 알아맞출 수 있는 사람은, 설사 있다고 해도, 극소수일 것이다. 뮤지션들이 좋아하는 연주였다고 하니까, 필시 재즈 정신에 투철한 리듬을 새겼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가능한 한 눈에 띠지 않도록 배경에 녹아 있기를 고집한 듯, 아무리 열심히 귀를 맑게 해도 연주의 특징이 잡히지 않는다. 참 묘한 사나이이다.
  콘던 명의의 레코드 중에서 나는 이 "Bixieland"--- 빅스 바이더벡의 노래를 모아 연주하고 있다. ---를 좋아한다. 연주도 멋지지만, 콘던 자신이 쓴 해설이 상당히 재미있다. 예를 들면 멤버 소개 중에 버드 프리맨이 등장하고, 악기는 utter silence라고 되어 있다. 즉 '완전한 침묵'이다. "실제로 그날 버드 프리맨은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다른 가게로 유배를 당했었죠. 그래도 재킷에 그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니 기쁘군요. 특히 버드 자신이 그렇겠죠." 
  그리고 그날의 스튜디오에는 시바스 리걸이라는 목사가 한 사람 같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친밀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모두들 그를 환영했다고 한다. 물론 "모두들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면서 연주를 했다"는 뜻이다.
  늘 단골의 낯익은 명인 명수들이 능숙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질 높은 연주를 펼친다. 콘던 씨는 녹음의 주재자로 전혀 빈틈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연주의 구석구석에 빅스에 대한 모든 연주자들의 경외감이 충만하고, 그 친밀한 분위기가 듣는 이의 마음에 우아하게 전해진다.
  빅스의 음악을 진솔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 앨범의 연주법에 다소 불평을 할지도 모르겠다. 빅스가 아닌 어떤 유의 절실함을 여기서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행복한 것이 아니냐"라고 그들은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점에 대해서는 콘던 자신도 어는 정도 인정하고 있다. 우리들은 빅스를 모방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뮤지션들은 다만 빅스를 기리기 위해서 모였고, 그의 음악을 연주하며 즐겼던 것이라고.
  "아무튼, 미안하다고 누구에게 고개 숙일 마음은 없고, 그 점은 시바스 리걸 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콘던은 말한다. 우리도 시바스 리걸 씨의 힘을 빌려 까탈스럽게 뭐라뭐라 잔소리 하지 말고, 그저 여기에 있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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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9. 13:05

Mel Tor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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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 Torme 

  멜 토메가 죽기 몇 년 전, 그의 특별 기념 리사이틀을 듣기 위해서 나는 뉴욕의 카네기 홀에 갔다. 프랭크 포스터가 어렌지먼트를 담당한 스몰 밴드를 거느리고 멜 토메는 전성기를 방불하는 목소리로 매력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훌쩍 들럿다"는 제리 멀리건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몇 곡에 인상적인 바리톤 색스를 곁들였다. 그 멀리건도 곧 죽었다.
  멜 토메는 나이가 들어서도 예풍(藝風)이 시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경묘하고 세련된 스타일은 젊은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변하지 않았다. 인생의 연륜이니 고담(枯談)의 경지니 하는 그런 따위에는 서툴렀던 것 같다. 일일이 까다롭게 굴지 않고, 그러면서도 까다로운 것을 매끄럽게 해낸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입가에는 늘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뉴욕의 멋쟁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멜 토메는 원래 드러머였고 버디 리치는 원래 가수였다. 둘 다 같은 시기에 드럼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둘은 사이 좋은 친구였으므로, 라이벌 관계에 놓이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 의논했다. '버디, 나는 노래만 할 테니까, 자네는 드럼만 치라구.'...... 이렇게 합의를 보았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어느 시점부터 멜 토메는 오로지 가수로, 리치는 오로지 드러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이름을 날렸다. 결과부터 얘기할 수밖에 없다면, 그 반대가 되었을 때보다는 더 나았을 것이다.
  멜 토메가 남긴 대부분의 앨범은 세련된 재즈 향으로 가득해서 딱 한 장을 대표작으로 고르기는 어렵다. 멜 톤즈를 거느린 초기 연주도 싱그럽고 신나고, 50년대 베들레헴 버브 시대는 기력이 충만하고, 60년대 애틀랜틱의 앨범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만년의 연주도 "어째 좀 너무 잘 부르는 거 아냐"싶은 느낌만 빼면 불평의 여지가 없다.
  그런 전제하에서 개인적인 편견을 앞세워 고른다면, 나는 "Ole! Torme"를 좋아한다. 당시 유행했던 열두 개의 라틴 곡들을 그러모은 기획물인데, 쉽다면 쉽지만, 빌리 메이의 편곡이 상당히 멋지다. 멜 토메 하면 금방 마티 페이티의 지적이며 친밀한 중형 캄보의 연주가 떠오르는데, 물론 그것은 나름대로 멋지지만,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면, 역시 싫증이 난다. 그에 비하면 약간은 거칠게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리듬감으로 전개되는 빌리 메이의 사운드는 토메의 등을 떠밀어, 이 앨범에 여느 때와는 정취가 다른 '박력'을 선사하고 있다. 발랄하고 세련됨, 완벽한 콘트롤, 고상한 취향 등 일반적인 멜 토메의 세계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멜 토메가 빌리 메이와 좀더 많은 녹음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수는 노래의 품격이 프랭크 시나트라 쪽으로 기울까봐 꺼려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 한 모퉁이의 깔끔하고 아담한 나이트 클럽, 모피 코트, 샴페인과 칵테일, 그것이 멜 토메가 살았던 세계였다. 라스베가스의 대형 홀에서 노래한 시나트라적인 사운드는 그가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이 그가 멋쟁이 중의 멋쟁이라고 하는 이유겠지만, 약간 아쉬운 마음을 어쩌라.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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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Miller

Glenn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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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렌 밀러는 인기 절정에 있을 때 공군 소위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종군했었으나, 영불 해협에서 비행기 사고로 불의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아름다운 전설이 되었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그의 전기영화는 그의 전설을 통절하게 강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밀러는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보란 듯이 살아남은 셈이다.
  밀러의 음악은 재즈라기보다는 "재즈의 이디엄을 뿌려놓은 댄스뮤직"이라고 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당대에 인기를 양분했던 베니 굿맨 악단만큼의 혁신성도 없고, 적어도 레코드로 듣는 한, 그의 음악은 스윙하지도 않는다. 고작해야 소슬바람에 나부끼는 얇은 레이스 커튼 정도의 기품 있는 스윙이다. 악단에는 탁월한 뮤지션이 상당히 많았지만, 박진감 있는 솔로는 혀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 일반적인 재즈 팬이 밀러 악단의 음악에 진지하게 귀기울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밀러 악단이 남긴 몇몇 연주가 독자적인 스타일을 지닌 아름다운 양질의 음악이란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젊은 연인들에게 그의 음악은 아주 '실용적인' 음악장치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연주가 재즈이든 재즈가 아니든 그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젊은 남녀가 포옹을 하고서 아름다운 저녁 한때를 보내기 위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스윙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었다.
  내가 십대 초반이었을 때, 코베의 라디오 방송에 매일 밤 두 시간 동안 팝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와 봅 딜런 같은 팝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사이에 가끔 글렌 밀러의 곡이 흐르곤 했다. 예를 들면 "Hound Dog" 다음에 "진주 목걸이Srting of Pearls"나 "In the Mood"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온 일본이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코베란 도시가 그런 점에서 비교적 특수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튼 1960년 초반에 글렌 밀러의 곡은 내게 '현역' 팝송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니까 내게 글렌 밀러가 남긴 한 다스 정도의 히트 송은 오랜 옛날의 고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운' 이제 이곳의 곡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란 첫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타이틀 백에 흐르는 음악은 "월광 세레나데Moonlight Serenade"가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는 공기 주머니 같다고 해도 좋을 의고적(擬古的)인 공기가 있다. 내 머리 속에서 그 시대의 코베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월광 세레나데"적이다. 그곳은 마치 어느 시대의 어느 곳도 아닌 곳처럼 느껴진다.
  1962년에 녹음된 "Silver Jubilee Album"에서는, 레이 에바르, 텍스 베니키, 모더네아즈와 같은 밀러 악단의 과거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밀러 사운드를 찬란하게 재현한다. 여름의 해질녘에 잔을 기울여 쌉싸름하고 시원한 샤블리스를 마시면서 이런 음악을 들으면 "스윙 같은 것 안 하면 어때"하고 생각하게 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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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ie & Roy

Jackie &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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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 드문 미인인 재키 케인과 그의 남편 로이 크랄은 재주 많은 보컬 듀오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들은 세련되고 상큼하고 투명하고, 재즈 정신에 충만한 도회적인 음악을 창조했다. 흑인적이고 블루시한 끈적끈적함과는 인연이 없었고, 고뇌와 마음의 음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재키와 로이의 음악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확실한 오리지널리티가 있었고, 손바닥을 떠올리고 싶을 정도로 싱그러운 생명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재즈 코러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재키와 로이의 레코드는 거의 가지고 있고 오래도록 애청하고 있다. 아무튼 노래 솜씨가 훌륭하고(특히 재키의 자연스러운 미성은 매력적이다), 테크닉도 넘쳐 흐르고, 로이 크랄의 편곡도 세련되었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재키와 로이의 작품은 어떤 곡이든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다. "이건 어째 좀"하고 고개를 꺄우뚱해지는 곳이 없는 것이다. 40년대 후반, 찰리 벤트라 악단 시대의 풋풋하고 발랄한 보컬도 버리기 어렵고 컬럼비아 시대의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한 노래도 불평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딱 한 곡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그들이 1950년대 중반에 스토리빌 레이블로 남긴 두 장짜리 LP를 고를 것이다. 결혼한 후 벤트라 악단을 그만두고 둘이서 보컬 팀을 구성하여 그야말로 기력이 충만했던 시대의 기록이다. 싱그러움과 음악적 성숙이 적절하게 뒤섞여 질은 높은데, 피곤하지 않은, 어른을 위한 음악이 여기에 있다.
  "Storyville Presents Jackie and Roy"의 10인치 판에 수록된 여덟 곡은 조 모렐로 드럼과 빌 크로우의 베이스가 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당시(1955) 뉴욕의 힉코리 하우스에 매일 밤 출연하여 마리안 맥파틀랜드 트리오의 정규 멤버였다. 로이 크랄이 그 연주를 듣고 매료되어, 제발 부탁이라며 애원하여 이 두 콤비를 빌려 녹음 스튜디오로 데려왔다. 로이 자신이 피아노를 담당하고, 명수 배리 갤브레이스가 장인적이면서도 차분하게 기타를 연주했다. 혼은 없었다. 이 리듬 섹션이 실로 멋지다. 오랜 전부터 죽 같이 연주한 사람들처럼 밀고 당기는 호흡이 딱 들어맞는다. 특히 "Thou Swell"과 "Season in the Sun"에서 경쾌하고 밝은  재키와 로이의 노래 뒤로 들리는, 모렐로의 온갖 기교를 다한 연주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상쾌하다.
  그 모렐로의 명인적인 재주는 "Hook, Line and Snare"(로이 크랄 작곡)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 트랙에서는 주객이 바뀌어서 재키와 로이는 모렐로의 긴 드럼 솔로의 배후로 물러나서 득의의 스캣으로 참신한 코러스를 하고 있다.
  이 레코드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정도로 세련되고 고도로 기술을 구사하는 음악을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창출한 미국이란 토양(뉴욕이라고 한정이어야 할까?)에 그리고 그 특별한 시대에 새삼 경의와 감탄을 보내게 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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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Mingus

Charles Min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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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2학년 때, 신주쿠 가부키초에 있는 별 신통치 않은 레스토랑에서 철야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밤 열 시에서 새벽 다섯 시까지, 환기도 잘 안되는 실내에서 일을 하다가 마지막 전철을 놓친 술주정뱅이와 함께 첫 전철을 타고 미타카에 있는 자취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초가을에 시작하여 초봄까지 일했다. 그래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늘 겨울 풍경이 떠오른다. 그 겨울은 춥고 고독하였으며, 신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 레스토랑 근처에 란 이름의 조그만 재즈 카페가 있었다. '직립 원인'. 물론 찰스 밍거스의 앨범 타이틀에서 따온 이름이다. 재즈 팬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긴 이름을 다 기억할리 없다. 그 카페는 비교적 밤늦게까지 문이 열려 있어서, 틈이 나면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재즈를 들었다. 1970년대 전후의 신주쿠는 그 거리 특유의 활기로 가득했다. 그것은 난잡하고 폭력적이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진취적인 활기였다. 자기 주변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가슴 설레는 공기가 충만했다.
  그 재즈 카페에서 찰스 밍거스의 <직립 원인> 레코드를 실제로 틀어주었는데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LP <직립 원인>을 들을 때마다 그 카페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 시절 신주쿠 가부키초의 풍경이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계절은 겨울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LP <직립 원인>을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때 곡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고 별다른 흥분도 느끼지 못했다. '대체 이게 뭐야?' 하고 당황했을 뿐이었다. 특히 '포기 데이'(A Foggy Day)란 곡의 집요하고 시끌시끌한 유머 감각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레코드가 알게 모르게 나의 마음을 파먹을 들어갔다. 이전에는 그저 깔끔하지 못한 소리, 또는 엉터리 같은 진행으로  들렸었는데 점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만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어떤 연주가자 연주하는 '포기 데이'를 들으면  반드시 밍거스 판의 '포기 데이'가 하나의 규범적인 형상으로 내 머리에 떠오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밍거스가 '포기 데이'란 곡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레스터 영은 옛날에 '그 곡을 불 때는 가사를 전부 외워서 노래하면서 불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노래가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다고, 하지만 밍거스가 그 곡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은 이를테면 레스터 영적 세계관의 완전한 전복이다. 밍거스가 제시하는 것은 원래의 '포기 데이'가 아니라 뒤바뀐 '포기 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밍거스가 연주하는 '포기 데이'는  레스터 영이 노래하는 노래와 똑같은 맥락에서 따스하고 시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와닿는다. 눈물도 피도 있다. 밍거스의 음악을 통하여 뒤바뀐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신인지도 모를 일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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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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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브라운이 탁월한 테크닉과 재즈의 소울을 겸비한 위대한 베이시스트라는 것은 많은 재즈 팬과 평론가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재즈를 듣기 시작한 사람들 중에서 "다들 레이 브라운이 위대하다고 하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거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마치 기타를 치듯이 경쾌하게 베이스를 연주하는"(빌 크로우씨의 얘기) 초(超)하이테크 베이시스트들이 우글거리는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레이 브라운의 사운드는 다소는 목가적으로 들리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앰프의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밥 시대에 베이시스트가 다른 악기의 음악에 뒤지지 않으려면 크고 굵은 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래서 브릿지를 높이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브릿지를 높이려면 손가락의 강인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속도감 있는 복잡한 연주를 하기란 지난해진다. 그렇게 힘에 좌우되는 시대에 테크니션으로 일세를 풍미한 연주가가 오스카 페티포드이며 찰스 밍거스이며 레이 브라운이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 앰프와 녹음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스코트 라파로가 베이스 연주의 개념을 크게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시류의 변화에 무관하게 지금도 반듯하게 성실한 작업을 고수하는 정통파 재즈 베이시스트의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페티포드와 밍거스가 오래 전에 죽었으니, 지금은 레이 브라운이 그 대표 노릇을 한다. 만약 레이 브라운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들어보는 것이 좋으리라. "과연, 이것이 재즈 베이스 주자 본연의 연주로군"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레이 브라운은 연주할 때에 불필요한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비지니스 애즈 유주얼"이라는 느낌으로 담담하게 연주할 뿐이다. 음 하고 감탄사가 새어나오는 기교적인 솔로도 있지만, 그는 테크닉의 진열대와 같은 과시성이 없다. 아주 은근하게, 연변이 좋은 사람이 세상사는 얘기를 하듯이, 은근히 굉장한 것을 제공한다. 베이스 연주는 말 그대로 기초적인 리듬을 새기면서 연주자들에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키는 데에 있다는 기본 개념이 그의 뼛속에까지 스며 있는 듯하다. 그 이외의 '양념'은 그에게는 "사소한 고객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서비스를 싱글벙글 즐기면서 제공한다. 그리하여 그의 연주를 들으면, 재즈를 재즈로 성립시키는 것이 덩어리가 되어 가슴속에 쌓인다. 위대하다기에 충분하다.
  레이 브라운을 듣고 싶다면, 역시 그가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을 당시의 연주가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스카 피터슨의 기타 트리오 시대의 연주가 가장 멋들어지지만, 컴템퍼러리 "Poll Winners" 시리즈는 녹음 상태가 좋아 듣기가 쉽다. 이 트리오에서 브라운의 연주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양질의 유머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음악은 인간성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상에 있다. 고뇌와 내적 성찰? 그런 것은 어디 다른 데나 가서 알아보세요.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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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비 맨(Herbie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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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재즈 팬들 사이에서는 "성실하게 재즈를 추구한 50년대의 허비 맨은 들어줄 만한데, 60년대 후반에 들어서 성공을 거둔 후의 그의 음악은 너무 얄팍하다"는 평이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허비 맨 하면 'Memphis Underground'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인지라, 그런 주류파의 의견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래리 코옐, 소니 샤록의 농후한 더블 기타, 야, 멋있습니다.

 플륫이란 악기는 잼 세션에 포함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혼 악기에 힘이 달리게 되고, 음역도 좁고, 애당초 "없더라도 별로 상관없는" 악기이다. 그래서 플륫을 전문으로 하는 뮤지션들은 재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음악적인 미끼 같은 것이 필요하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밥을 먹고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륫 하나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으니 대단하지 않느냐"고 나 같은 사람은 순순히 인정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일까?

 허비 맨은 60년대 들어서, 라틴 음악과 보사노바로 질주하여 "Coming Home Baby"를 히트시켰고, 마침내는 대담하게 (당시로서는) 일렉트릭 록을 도입하여 "멤피스 언더그라운드"에 도달했다. 그동안에 아프리카 음악에서 일본의 아악(雅樂)에까지 탐욕적으로 손을 댔다.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던 것이다. "좋아, 상업주의 노선으로 밀고 나가보자!"고 결심한 지 반달 후에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만약 허비 맨이 60년대에 히트 앨범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면, 플륫은 클라리넷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악기가 되거나 재즈계의 다락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허비 맨은 화려하게 활약했던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플륫이란 악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한때 그것은 인기 악기로 군림하게 되었다. 나만 하더라도 플륫을 사서 학원에 배우러 다녔다. 영 신통치는 않았지만.

 "멤피스 언더그라운드"는 그렇다고 치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허비 맨의 앨범은 "Windows Opened"이다. 백은 비브라폰에 로이 에어즈, 베이스에 미로슬라프 비토우스, 기타에 소니 샤록, 드럼에 브루노 카 --- 이와 같은 당시의 레귤러 리듬 섹션이 강력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다. 참신하고 젊고 막무가내고, 거의 자기들끼리 노는 경지이다. 이들의 연주를 토대로 리더는 열심히 불어댄다. 허비 맨 자신의 연주 스타일은 딱히 새롭지 않지만, 그런 그룹 컨셉션을 주도하는 방식이 실로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곡도 당시의 팝송이 아니라 웨인 쇼터와 찰스 트리버 같은 신주류파의 음악을 의욕적으로 다루었는데, 이게 또 꽤 들을 만하다. 특히 비토우스의 사운드는 지금 들어도 청신하고 파워풀하다. 리얼 재즈이든 커머셜 재즈이든,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들어서 기분좋고 신나는데, 나쁠 게 뭐가 있을까요?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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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bie Mann - Memphis Under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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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크리스티(June Chri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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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 크리스티는 애니타 오데이나 크리스 코너와 나란히 1950년대에 활약한 스탄 켄턴 악단 출신의 여성 가수였다. 그녀는 일본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도시적이고 지적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볍고 정묘하게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이른바 백인적인 노래를 구사했지만, '문체'는 조금씩 달랐으니, 그 점이 흥미롭다. 물론 그 문체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싫고 좋음이 갈린다.
 

 무수한 크리스티의 레코드들 중에서 한 장을 고르라면, "Something Cool"의 완성도를 고려하더라도, 나는 주저없이 "Duet"(1950년 녹음)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이 레코드만큼은 신기하게도 몇 번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크리스티의 노래 솜씨도 빼어나지만, 그에 뒤질세라 스탄 켄턴의 피아노 반주 역시 빼어나다. 클래식 음악에 비유하면, 슈바르츠코프가 제럴드 무어의 반주로 슈베르트의 가곡을 노래하는 것처럼 깊은 맛이 있다. 두 사람의 자유로운 마음의 움직임과 그 얽힘이 그대로 소리가 되어 들려 온다. 솔로 피아노의 반주만으로 노래한 재즈 보컬은 그밖에도 몇 사람이 있고 --- 예를 들면 엘라와 엘리스 러킨스, 토니 베네트와 빌 에반스 --- 그들의 연주도 전혀 나쁘지는 않지만, 크리스티와 켄턴의 콤비네이션에 비하면 애당초 그 출발점의 깊이가 좀 다른 듯한 기분이 든다.
 
 크리스티의 다소 설명적인 프레이징을 켄턴의 피아노가 뒤에서 품안 깊숙이 받아들여, 거기에 한점 한점 살을 붙여나간다. 남성미가 넘치는 피아노이다. 달변가이면서도 그 내면은 과묵하고, 상념을 담으면서도 어떤 선 바깥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 이 레코드가 녹음되었던 당시, 컨턴은 사십대 중반, 크리스티는 서른 살, 양쪽 다 남자와 여자로서 기름기가 오르기 시작한 때이다. 이 레코드에 수록된 아홉 곡의 발라드를 가만히 듣노라면, 당겼다가는 밀고 밀었다가는 당기는 남녀의 마음의 움직임이 온기와 함께 절절하게 전해온다. 크리스티와 컨턴이 당시 어떤 개인적인 관계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기야 그런 것은 아무러면 어떠랴. 아무튼 거기에는 눈앞에 떠오르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그런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에 또렷하고 깊게 남는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빈틈없는 연주라고 할지라도, 이야기가 없으면, 살과 피가 없으면,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나는 LP의 B면에 실려 있는 다섯 개의 곡을 잇따라 듣기를 좋아한다. 한밤에 혼자서 위스키 잔을 기울이면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Baby Baby All the Time"을 듣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끝내 시간은 흐르고, 모든 아름다운 마음도 언젠가는 재가 흩어지듯이 사라지고 무(無)가 된다. 우리들은 그 명백한 사실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 --- 어떤 특별한 경우 --- 그것은 조용한 진동이 되어 공기 중에 남고, 모양을 바꾸어 어디에선가 은밀하게 이어져 갈 수도 있다. 준 크리스티의 목소리와 스탄 켄턴의 피아노에 귀를 기울이면, 어째서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그것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리라.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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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티몬스(Bobby Ti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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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티몬스는 자기 명의의 신나는 피아노 트리오 앨범을 몇 장 가지고 있는데, 음악적인 스릴이란 점에서는 1960년을 전후하여 아트 블래키가 주재한 재즈 메신저스의 리듬 섹션을 담당했을 때의 연주가 단연 으뜸이다.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리더보다 반주를 맡았을 때에 보다 인상적인 연주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티몬스도 그런 연주가들 중의 한 명일 것이다. 재즈 메신저스 당시의 그는 아무런 주저없이 리 모건, 베니 골슨과 같은 동행 출신의 마음 맞는 젊은 동료들과 한껏 좋은 재즈를 들려주었다.


 재즈 메신저스를 떠난 티몬스는 한때 캐논볼 밴드에 들어가서 수많은 곡을 히트시켰고, 펑키 재즈 전문 피아니스트로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내건 트리오의 연주는 신나고 재미있긴 해도, 음악의 틀이 너무 꽉 짜여 있고 폭이 넓지 못한 탓에 듣다보면 진력이 나기도 한다. 당사자도 그런 한계를 느꼈는지, 펑키 붐이 지나가고 빌 에반스와 핸콕, 타이너 등의 신세대 피아니스트가 재즈의 중추를 담당하게 되고부터는 점차 알코올에 빠져들었다. 연주는 거칠어지고 급기야 마지막에는 한낱 촌스럽고 평범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말았다.


 뮤지션이 행복하게 음악적인 천수를 누리는 것은 --- 예를 들면 엘링턴이나 루이 암스트롱 --- 멋진 일이다. 그러나 작업은 고되고 변화도 무쌍한 재즈의 세계에서 그와 같은 예는 오히려 드문 경우일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짧게 빛났고 그들의 인생은 혹독한 장애물로 얼룩져 있다. 그렇게 몇몇 항성(恒性)의 확고한 빛과 유성(流星)의 순간적이고 위태로운 빛이 뒤섞여 전체적인 재즈의 지도를 선명하게 그리고 매혹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아무튼 보비 티몬스라는 피아니스트는 한정된 몇 년 동안의 눈부신 활약으로 재즈 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고, 그것은 물론 찬란한 하나의 성취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성취를 이룬 삶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든 말이다.


 티몬스는 작곡가로서도 탁월했다. 그가 작곡한 "Dis Here", "Dat Dere", "Moanin"은 거뭇거뭇 펑키하고, 동료인 베니 골슨이 작곡한 많은 곡이 우수를 띠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불가사의한 멋을 지닌 건조한 유머 감각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곡은 "So Tired"이다. 아트 블래키의 앨범 "Night in Tunisia"에 수록되어 있는 이 곡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티몬스의 솔로는 적당히 억제가 살아 있어, 아삭아삭하고 상큼하다.


 아오야마(靑山)의 '바 라디오'에는 "So Tired"란 이름의 오리지널 칵테일이 있는데, 물론 이 곡의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내용물은 진에 위스키와 기네스 맥주. 하루를 마감하는 지친 저녁 나절, 카운터에서 마시는 이 칵테일이 부드럽게 나를 걷어찬다.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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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트 콜맨(Ornette Co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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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90년 초였을 것이다. 오네트 콜맨이 자신의 아들도 멤버 중의 한 명인 밴드를 이끌고 일본에 와서 요미우리 랜드의 야외 콘서트에 출현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날 일요일 오후에 맥주를 마시면서 느긋한 기분으로 그 연주를 듣고, "오네트 콜맨의 음악이 이렇게도 순수하고 유머 감각에 충만했어군"하고 놀람과 동시에 다소 맥이 빠지고 말았다. 나는 (그리고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리라) 오네트 콜맨의 음악이 도전적이고 지적이고 기본적으로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이가 들었으니 모서리가 깎여나가 둥글둥글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그가 전위적인 연주가로 활약한 60년대 비하면 세상이 많이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은 그 근본이 확 바뀌는 법은 없다. 그러니까 오네트 콜맨의 음악은 옛날부터 "순수하고 유머 감각에 충만했다"(또는 원래 그러기를 원했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다시 옛 레코드를 꺼내 들어보니, 그 음악은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인상으로 내 귀를 울렸다.
 과거 베트남 전쟁이 한참 치열했을 때, 신주쿠 언저리의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 카페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숨을 죽이고 새카만 JBL 유니트에서 빵빵 쏟아져 나오는 오네트 콜맨의 음악을 들었다. 마치 암호와 같은 음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듯이, 당시 오네트 콜맨을 듣는 행위야말로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를 읽거나 파졸리니의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특수한 감촉이었다. 대상과의 접촉 그 자체에 이미 의미가 내포되어 잇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뜨겁고 첨단적인 시대는 지나갔고 재즈의 상황도 크게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더불어 사람들이 오네트 콜맨의 음악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차라리 그것은 내게나 오네트 콜맨에게나, 솔직하게 말해서,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들은 시대의 미신적인 믿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저 거기에 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맑게 개인 여름날 오후에, 90년대의 건강한 바람 속에서 그의 현재의 음악을 듣다보니, 나는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네트의 작품 중에서는 명곡 "Lonely Woman"이 들어있는 "The Shape of Jazz to Come"(Atlantic)이 지금 시점에서 보면 가장 모양새가 정돈되어 있고 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 개인적으로는 1962년에 녹음된 "Town Hall Concert"(ESP)를 좋아한다. 이 연주는 군데군데 다소 억지스럽고 텐션도 상당히 높게 잡혀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굵은 흐름 하나가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잇따라 흘러 넘치는 오네트 콜맨 특유의 음 덩어리 속에서, 나는 그 혁신적인 --- 동시에 내츄럴한 --- 찰리 파커의 영혼의 그림자 같은 것을 인식하고 흐뭇해한다. 그밖에도 파커 스타일을 신봉하는 연주가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들에게서는 별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