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0:43

토니 베네트(Tony Ben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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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포스트 프랭크 시나트라'의 자리에 오를 것인가?

많은 남성 가수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패권을 다투었다.

보비 달린, 페리 코모, 버디 그레코, 빅 데이먼, 조니 마티스 --- 그러나 모두들 어중간하여, 대형 정통파 남자가수로는 대성하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고, 토니 베네트만 거센 파도에 떠밀려 내려가지 않은 튼튼한 창고처럼 혼자 남았다. 시나트라와는 개성이나 맛이 상당히 달랐지만, 아무튼 이 사람만큼 실력있는 사내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기야 시나트라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고 죽기 직전까지 현역으로 노래를 불렀으니, 포스트 시나트라란 자리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었고, 거인이 죽은 후에는 시나트라적인 것의 수요 자체도 소멸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토니 베네트는 '최후의 대형 정통파 남자가수'라는 귀중한 존재가 된 셈이다.
 

 베네트는 재즈에 조예가 깊었고, 시나트라가 거의 빅 밴드하고만 일한데 반해, 소편성의 재즈 캄보와 일하기를 즐겼다. 고상하고 상큼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국 출신의 랄프 샤론이 마음에 쏙 들어, 1954년부터 마지막까지 피아노 반주자겸 편곡자로 같이 일했다(일시적인 중단은 있었지만). 그밖에도 탁월한 뮤지션들과 함께 무수히 공연했고, 재즈향이 넘치는 앨범도 다수 남겼다. 시나트라가 빅 밴드 시대의 총아였다면, 베네트는 밥의 세례를 받은 캄보 세대의 가수였다.


  그러나 시나트라는 베네트보다 한결 더 재즈의 진수에 가까웠다. 베네트의 노래에서 광기나 자기 모순, 좌절, 악의, 집착, 붕괴의 그림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아름답고 성량은 풍부하고, 프레이징은 지나칠 정도로 명료하고, 있는 그대로의 정감을 담아 노래한다. 그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따진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뭐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니까. 애당초 그가 재즈 가수인지 아닌지 따위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로 상관없는 일일 테니까.
 

 클럽에서 토니 베네트의 라이브를 직접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입을 모아 멋진 체험이었다고 말한다. 인품이며 무대 매너며 노래며 모두 정말 멋 있었다고. 아마 사실이 그랬을 것이다. 베네트의 자연아적이며 탄력 있는 노래는 그가 아니면 인도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온기 어린 목소리는 그가 아니면 녹여줄 수 없는 온도로 우리를 녹여준다. 그것은 가수로서 실로 행복한 재능이며 성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을 택하라면, 나는 시나트라가 지닌 어떤 종류의 질곡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토니 베네트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질곡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굳이 베네트의 노래를 배제하고, 피아노 반주자인 랄프 샤론이 토니 베니트의 노래를 정규 트리오로 연주한 앨범을 추천했다. 이 앨범을 들으면, 클럽에서 베네트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막간에 샤론이 들려주는 피아노의 산뜻함과 함께 푸근한 분위기가 느껴져 나는 상당히 기분이 좋다. 베네트가 없어도 베네트성(性)이 꽤 높다. 물론 "I Left My Heart In San Freancisco" 도 들어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Bill Evans and Tony Bennett
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


Date of Release Jun 10, 1975 - Jun 13, 1975 (recording) in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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