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1:09

쟝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프렌치 키스"란 영화를 좋아한다. 케빈 클라인이 불어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얘기하는 수상한 프랑스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는 옥신각신 끝에 전형적인 미국 아가씨 맥 라이언과 맺어진다. 영화는 행복하게 끝이 나고 크레디트 타이틀이 죽 나열되면서 그 배경에 케빈 클라인이 코맹맹이 소리로 부르는 "La mer"가 흐른다(불어로). 침대에서 아마도 섹스를 한 후, 흠흠흠흠 하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거, "Beyond the Sea"이지. 가사가 프랑스어로도 번역됐네."  옆에서 맥 라이언이 놀랍다는 듯이 말한다. "있지, 이건 원래 프랑스 노래라구." 케빈 클라인이 항의한다. "거짓말. 그거, 보비 달린 노래라구. 내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맥 라이언은 물러서지 않는다.
미국의 극장에서 보았는데, 그 목소리뿐인 마지막 대화가 익살스럽고 멋스러워, 다른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고 없는데도 나 혼자 남아 엔딩 크레디트까지 보고 말았다. 그리고 장고 라인하르트가 연주하는 "라 메르"가 무지무지 듣고 싶어졌다.

 

 물론 케빈 클라인의 주장이 옳다. "라 메르"는 원래 프랑스 노래이고 1938년 샤를 트레네가 작곡했다. 보비 달린이 "Beyond the Sea"란 제목으로 노래하여 미국에서 대히트를 친 것은 1950년대 중반이고, 90년대에 들어서는 조지 벤슨도 노래하여 유행했다.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멋진 곡이라서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을 명콤비 장고 라인하르트와 스테판 그라펠리의 연주로 들으면 "이제는 아무 것도 필요없어"라는 기분이 든다. 그 정도로 차밍하고 인상적인 연주이다. 라인하르트와 그라펠리가 함께 연주한 곡들은 어느 것을 들어도 불평의 여지가 없지만, "라 메르"는 처음 들었을 때 --- 대학생이었다 ---부터 유독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앨범 "Djangology"는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녹음한 것이 아니라, 장고와 그라펠리가 1949년에 로마의 한 나이트 클럽에 출연할 당시, 어떤 이탈리아인 재즈 팬이 개인적으로 세션 자리를 마련하여 거기에서 녹음한 것이다. 그래서 음질은 그다지 칭찬 받을만한 것이 못 되지만, 그런 부정적 요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피커 저편에서 당시 유럽 땅에 깔려 있었던 공기 같은 것이 직접 연결되어 온 방을 가득 채운다. 이 박진감은 음의 좋고 나쁨과는 무관하다고 할까, 점차 "이 음악에는 이 정도의 음질이 마침 적당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라면?


 정말 오리지널한 음악만이 지니는, 곧바르고 뜨거운 기백에 덧붙여 "지금 여기에서 살면서 이렇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유의 기쁨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소리로 결정(結晶)을 이룬다. 라인하르트는 그밖에도 탁월한 연주를 많이 남겼지만, "장골로지"에서 장고와 그라펠리가 보여준 물 한방울 새지 않을 긴밀성과 적당히 남겨둔 컬래버레이션은 언제 들어도 황홀감에 젖기에 충분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