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1:14

오네트 콜맨(Ornette Co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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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90년 초였을 것이다. 오네트 콜맨이 자신의 아들도 멤버 중의 한 명인 밴드를 이끌고 일본에 와서 요미우리 랜드의 야외 콘서트에 출현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날 일요일 오후에 맥주를 마시면서 느긋한 기분으로 그 연주를 듣고, "오네트 콜맨의 음악이 이렇게도 순수하고 유머 감각에 충만했어군"하고 놀람과 동시에 다소 맥이 빠지고 말았다. 나는 (그리고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리라) 오네트 콜맨의 음악이 도전적이고 지적이고 기본적으로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이가 들었으니 모서리가 깎여나가 둥글둥글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그가 전위적인 연주가로 활약한 60년대 비하면 세상이 많이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은 그 근본이 확 바뀌는 법은 없다. 그러니까 오네트 콜맨의 음악은 옛날부터 "순수하고 유머 감각에 충만했다"(또는 원래 그러기를 원했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다시 옛 레코드를 꺼내 들어보니, 그 음악은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인상으로 내 귀를 울렸다.
 과거 베트남 전쟁이 한참 치열했을 때, 신주쿠 언저리의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 카페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숨을 죽이고 새카만 JBL 유니트에서 빵빵 쏟아져 나오는 오네트 콜맨의 음악을 들었다. 마치 암호와 같은 음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듯이, 당시 오네트 콜맨을 듣는 행위야말로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를 읽거나 파졸리니의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특수한 감촉이었다. 대상과의 접촉 그 자체에 이미 의미가 내포되어 잇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뜨겁고 첨단적인 시대는 지나갔고 재즈의 상황도 크게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더불어 사람들이 오네트 콜맨의 음악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차라리 그것은 내게나 오네트 콜맨에게나, 솔직하게 말해서,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들은 시대의 미신적인 믿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저 거기에 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맑게 개인 여름날 오후에, 90년대의 건강한 바람 속에서 그의 현재의 음악을 듣다보니, 나는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네트의 작품 중에서는 명곡 "Lonely Woman"이 들어있는 "The Shape of Jazz to Come"(Atlantic)이 지금 시점에서 보면 가장 모양새가 정돈되어 있고 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 개인적으로는 1962년에 녹음된 "Town Hall Concert"(ESP)를 좋아한다. 이 연주는 군데군데 다소 억지스럽고 텐션도 상당히 높게 잡혀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굵은 흐름 하나가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잇따라 흘러 넘치는 오네트 콜맨 특유의 음 덩어리 속에서, 나는 그 혁신적인 --- 동시에 내츄럴한 --- 찰리 파커의 영혼의 그림자 같은 것을 인식하고 흐뭇해한다. 그밖에도 파커 스타일을 신봉하는 연주가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들에게서는 별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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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