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0:45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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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다. 고등학교 때 돈을 모아서 앨범 "Song For My Farther"를 샀다. 여자 친구와 같이 코베(神戶) 모토마치(元町)에 있었던 일본 악기 가게에 들러서 샀다. 제작사의 띠를 두른 묵직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 수입판이었다. 레코드에 인쇄되어 있는 블루 레코드의 주소는 아직도 뉴욕 61번가 41번지였다.


  그녀는 딱히 재즈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재킷이 멋지네"라고 말했다. 계절은 가을이었고,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눈을 잔뜩 부릅떠야 보일 만큼 높이 떠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런 것들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그 레코드를 산 일이 인상에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당시 블루 노트 레코드는 일본에서의 레코드 복제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입 음반밖에 입수할 수 없었다. 가격은 2800엔(1달러는 360엔이었다)이었는데, 커피 한 잔을 60엔에 마실 수 있는 시대였으니 상당한 금액이었다. 고등학생으로서는 분수에 넘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정성껏 들었다. 축음기 나팔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빅터 레코드사의 개처럼, 말 그대로 음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 친구보다 더 소중하게, 그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하게 다뤘다. 손으로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요리조리 바라보기도 하면서. 내게 한 장의 레코드는 보물이었으며 다른 세계로 가는 귀중한 입장권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음악의 내용이 훌륭해도 요즘 사람들은 CD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껴안지는 않을 것이다(껴안을려나?)
 
 타이틀 넘버인 "Song For My Farther"는 불사가의한 존재감을 지닌 곡이다. 리듬의 바탕은 보사노바인데, 묵직하고 끈적하고 어두운 색 필터가 끼여 있어, 당시 유행했던 스탄 게츠의 세련되고 도회적인 보사노바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버지는 포르투칼 출신의 흑인이었다. 호레이스가 어렸을 때, 곧잘 동네 사람들은 악기를 들고 자기들끼리 모여 세션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정겨운 뒷골목 냄새가 음악 구서구석에 푸근하게 배어 있다. 하드 밥도 아니고 펑키도 아닌 호레이스 실버의 개인적인 세계가 선명하게, 다소는 마술적으로 전개된다. 멜로디는 뚝뚝 끊어지지만, 속은 꽤 깊다.
 
  젊은 날의 조 헨더슨이 연주하는 테너 색소폰의 톤도 찬찬히 귀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배가 고플 때 들으면 뱃속이 꽉 차오를 듯한 사운드이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하게 이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울려놓았는데(지금은 미발표곡을 포함한 CD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푸근한 소리에 나는 LP를 선택하고 만다), 그런데도 질리지가 않으니 참 대단하다. 지금도 레코드 위에 바늘을 내려놓고, "송 포 마이 파더"의 저 독특한 인트로가 시작되면 나는 가슴이 춤을 춘다. 스틸리 댄은 "Rikki Don't Lose That Number"란 곡에 이 인트로를 인용했는데, 그 쪽을 들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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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