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4:23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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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가게는 큰 길에서 두어 골목 안으로 들어간, 허름한 상점가의 한가운데쯤 있었다.
출입구에는 유리문 두짝만한 간판이 나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문패 옆에 '만년필 맞춤'이라고 조그만 글씨로 씌어 있을 뿐이다.
유리문은 끔직하게도 아귀가 뒤틀려 있어 열었다가 반 듯하게 닫기까지
일주일은 걸릴 상 싶은 낡은 것이었다.
물론 소개장이 없어서는 안된다.
시간도 걸리고, 돈도 든다.
'하지만 말야, 꿈처럼 제 맘에 쏙 드는 만년필을 만들어 준다구'하고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온 것이다.

주인은 예순 살 정도, 숲 속 깊은 곳에 사는 거대한 새 같은 풍채이다.
"손을 내놔봐요."하고 그 새는 말했다.
그는 내 손가락 하나하나 그 길이와 굵기를 재고, 피부에 껴있는 기름기를 확인하고,
바늘 끝으로 손톱이 얼마나 딱딱한지도 살폈다.
그러고는 내 손에 남아 있는 갖가지 상처 자국을 공책에 메모한다.
그러고 보니 내 손에는 알지 못할 여러 가지 상처 자국이 얽혀 있었다.
"옷을 벗으시죠."하고 그는 짤막하게 말한다.
나는 뭐가 뭔지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셔츠를 벗는다.
바지를 벗으려고 하는 찰나에, 주인은 당황하여 만류한다.
"아니, 윗도리만 벗으면 돼요."
그는 내 등 뒤로 돌아, 척추뼈를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손가락으로 더듬어 간다.
"인간이란 말씀이에요, 척추뼈 하나하나로 사물을 생각하고,

글자를 쓰는 법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척추에 딱 맞는 만년필 밖에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월급이 얼마인지를 묻는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이 만년필로 대체 무얼 쓸 작정이죠, 하고 묻는다.
석달 후, 만년필은 완성되어 내게로 왔다.
꿈처럼 몸으로 쏙 스며드는 만년필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 만년필로 꿈 같은 문장을 술술 쓸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꿈처럼 몸에 배어드는 문장을 파는 가게에서라면,
나는 바지를 벗으라 한들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만년필..

만년필을 다시금 쓰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면 그 유명한 파카부터 시작해서 몽블랑까지 써본 적이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만년필을  사용해 보지 못한 것 같다.

워낙 펜 종류에 욕심이 많았던 나는

요즘들어 다시금 만년필을 써보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연습용으로 한자루 사기로 했다. 펠리칸....

 연습이 제대로 되면 용돈을 모아서 한자루 제대로 된 놈을 장만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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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9. 14:18

잭 티가든(Jack Tea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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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티가든은 수많은 리더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루이 암스트롱의 올스터즈 사이드 맨으로 연주한 앨범은 특히 유명하다. 한편 코넷 주자 보비 해킷과 함께 녹음한 몇 장의 공연 음반 역시 모두 완성도가 높아 나는 옛날부터 즐겨 애청하고 있다. 한 시대에 획을 그을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해킷의 아름답고 기품있고 매끄럽고 스윙감 넘치는 선율과 티가든의 넉넉한 인품이 배어 나오는 연주가 조화롭게 섞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음질을 자아내고 있다.

 

 나는 이야말로 음악의 참다운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데, 오늘날에는 이런 종류의 재즈에 열심히 귀기울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는지, 화젯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뭐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키스 자렛 따위를 그렇게 애지중지 듣느니 차라리......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티가든과 보비 해킷이라고 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LP<코스트 콘서트>(Coast Concert)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발라드 '계획을 바꿔야겠어'를 떠올린다. 1955년에 녹음된 이 앨범의 리더는 해킷이지만 이 곡에서는 티가든이 서주부에 크게 부각되어 있고, 당연한 일이지만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유려한 솔로를 들려준다. 우선은 인트로를 해킷이 불고 그리고 티가든이 세터로 한 소절, 이 부분이 심금을 울린다. 다음 해킷이 질소냐 하고 분발한 아름다운 코넷 한 소절, 그리고 이어 또 한명의 베테랑 트롬본 주자 에이브 링컨이 직설적으로 단호하게 한 소절, 각기 원곡의 멜로디를 지켜 소박하게 노래하는 한편 온갖 솜씨를 다 부려 즉흥 연주를 한다. 이부분이 '세상 쓴맛 단맛 다 알아버렸다'는 식으로 아주 좋습니다. 허둥지둥 아등바등하는 구석이 전혀 없다.


 이 시대의 이런 류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매력저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연주가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어떤 뮤지션이든 각자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점은 어떤 시대든 기본적으로 똑같다. 스타일이 없는 훌륭한 음악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킷이나 티가든의 연주는 단순히 개인의 스타일이란 수준을 넘어, '개인적인 삶의 양식'으로 가능하고 큰 역할을 한다. 티가든의 노래하듯 속삭이는 독특한 음색과 연주에 귀기울여보라. 오늘날 이렇듯 다정다감한 재즈는 그 모습을 철저하게 감춰버리고 만 듯하다.

 

 이 레코드는 캐피털 사가 <딕시랜드 재즈 페스티벌> 때문에 서해안을 방문한 해킷을 스튜디오에 초대하여, 그 자리에서 모인 뮤지션 중에서 마음에 드는 멤버와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을 마음껏 연주하도록 한 배려 속에서 밤을 새워가며 녹음한 것이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모이면 아무리 개성이 강한 '개인주의자' 들이라도, 정말이지 멋지게, 그리고 조화롭게 일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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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9. 14:16

Jimmy Rushing

Jimmy Ru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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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사스 시티 시대부터 오랜 세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간판 스타(중 한명)로 일한 지미 러싱이 독립하자 카운트 베이시는 전속 가수를 몇 명 고용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조 윌리엄스가 가장 실력 있고 유명했지만, 그런 그조차 '젊은 가수의 대역"같은 인상을 오래도록 떨치지 못했다. 안된 얘기지만, 그 정도로 지미 러싱의 존재의 비중이 컷던 것이다. 나는 오히려 매트 데니스나 보비 툴프와 같은 '상큼형' 남성 가수를 좋아하여 러싱 같은 '끈적끈적형'을 별로 열심히 듣지 않는데, 그래도 러싱의 가창에는 취향을 넘어선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어서 들을 때마다 "아, 좋다"하고 순순히 감탄하고 수긍한다.
  그에 관한 글들을 이리저리 들추어보니, 인간적으로는 개성이 너무 강해 문제성이 있는 아저씨였던 것 같은데, 하기야 그 정도 박력이 없으면 이만큼 파워풀한 노래는 부르지 못할 것이다. 앰프의 성능이 아직 불안정했던 시대에 거의 폭력적일 만큼 강력한 음을 쏟아내는 빅밴드와 한 무대에서 음량을 겨루어야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근성이 아니고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같은 블루스 오리엔티드 싱어이지만, 스마트하고 도회적인 감성의 신세대 가수 조 윌리웜스에게는 그런 '캔사스 아저씨, 뽕짝 파워' 같은 박력은 없었으니(대체로 없는 것이 보통이다), 내기를 하자면 이길 가망이 없다.
 러싱은 어떤 시기의 레코드를 틀어도 러싱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는 기운차고 유일무이한 노래를 들려주는데, 역시 속내를 서로 아는 베이시 악단의 토박이 연주에 맞춰 노래할 때가 가장 마음 편히 스윙하는 때인 것 같다. 시작부터 "이 악단이야 내가 속속 다 알고 있지" 하는 식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깊이가 있다. 그리고 싫든 좋든 거기에는 저 그리운 캔사스 시티의 메마른 기풍이 배어 있다.
  베이시 악단에서 독립한 후의 앨범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Jazz Odyssey"와 "Little Jimmy Rushing and Big Brass"와 같은 컬럼비아 판인데, 특히 후자는 여느 때의 베이시의 동창생에다가 콜맨 호킨스, 빅 디킨슨 등의 호화로운 손님이 합세하여, 부드러운 스윙감을 만끽하게 한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러싱의 목소리에서 전성기의 신축성을 기대하기는 과연 어려워지지만, 반대로 차분하게 집중하여 설득력있는 노래를 부른다. 나이가 들어 이야기의 속도나 감칠맛은 다소 쇠퇴했으나, 인정미 넘치는 이야기는 능숙한 이야기꾼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러싱은 죽을 때까지 늘 부지런한 현역이었으며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키가 작기로도 유명했으나, 오기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타인에게 약점을 잡히느니 차라리 분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급사했을지도 모른다. 옛날 이야기가 나오는 어떤 난쟁이처럼.
 내트 피어스가 편곡한 "June Night"나 벅 클레이튼이 편곡한 "Jimmy's Blues"를 들으면, 일일이 까다로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재즈가 충분히 스릴 있고 영웅적이었던 시대의 공기가 절절하게 되살아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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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y Manne

Shelly M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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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셸리 맨은 어느 모로 보나 드럼의 달변가이다. 그러나 절대로 수다쟁이는 아니다. 언변이 좋으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 미묘한 구분을 분명하게 하는 데에 그의 음악가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가게에 비유하면, 맛깔난 안주를 조그만 접시에 담아 차례차례 내놓는 술집과 같다. 안주는 어느 것이나 보기 좋고 세련되고 나름의 철학이 있다. 술집 아저씨도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고 성가시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일이 없고, 손님의 안색을 살피면서 임기웅변적으로 안주를 안배한다. 가격은 결코 비싸지 않지만, 내용을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건너편 '맥스 로치'의 가게처럼 아저씨가 무뚝뚝하고 가게 안의 조명은 어두컴컴하고, "맛만 좋으면 돼. 잠자코 먹고 마시고, 다 먹었으면 잽싸게 꺼지라구. 구질구질한 공사치는 필요없으니까"라는 식의 하드한 부분이 없다. 그러니 유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재즈를 듣기 시작하면서, 셸리 맨의 "My Fair Lady"에 푹 빠져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 곡만 들었다. 애드립까지 송두리째 외웠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셸리 맨만큼은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감히 말하건대, 컨템퍼러리에서 나온 그의 리더 앨범은 어느 것이든지 다 신난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라이브 녹음이 좋다.
  이런 말을 하면, 드럼에 관한 한, 흑인지상주의자가 대부분인 일본의 팬들이 눈살을 찌푸릴 듯한데, 그렇다고 세상의 술집이 모두 '맥스 로치 가게' 같다면 좀 피곤해지지 않을까. 나는 로치도 블래키도 좋아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나는 셸리 맨의 세련된 취향과 달변이면서도 간결하고 멜로디컬한 드러밍에 자극을 받은 미국 서해안의 뮤지션들이 평소보다 한결 더 뜨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듣는)것이 좋다. 그 온도치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웬만한 기쁨이다.
  로스 맥도널드는 이렇게 썼다. "캘리포니아의 사계절이 없어서 재미없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계절이 분명하게 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과연 명언이다.
  셸리 맨의 앨범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Shelly Manna & Hits Men at the Black Hawk"이다(네 장짜리 세트인데, 미발표곡을 모은 5집이 최근 CD로 나왔다). 이 라이브 음반의 열기는 무척이나 스릴 있고 듣는 보람이 있다. 앞줄에 배치된 드럼펫의 조 고든과 테너 색소폰의 리치 카뮤카가 미소가 절로 감돌게 하는 수수하고도 견실한 솔로를 들려주고, 피아노의 빅터 펠드맨도 (때로는 시끄럽기만 하지만) 곳곳에서 세련된 맛을 낸다. 리더인 셸리 맨은 철저하게 뒤에서, 열심히 온갖 '안주'를 내놓으면서 등뒤에서 모두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후려친다. 같은 시대의 동해안에서 활동한 흑인 밴드의 육중한 음향에 비하면 "정념이 희박하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만약 여기에 있는 것이 재즈란 음악이 준 기쁨의 하나가 아니라면, 나는 재즈 따위는 듣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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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9. 14:09

Gene Krupa

 Gene Kr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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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크루파란 이름은 베니 굿맨 악단에서 연주한 "Sing Sing Sing"의 솔로를 머리에 떠오르게 하고 자칫 "좀 참아주시지"하는 기분을 들게 하지만, 굿맨이 남긴 전성기의 레코드를 찬찬히 들어보면 그렇게 화려한 드러밍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이며 평소의 크루파는 리듬섹션의 일원으로 성실하고 장인 기질의 연주로 일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테니 윌슨, 굿맨과 함께 한 트리오와 거기에 라이오넬 햄프턴이 가세한 오중주단에서의 크루파의 역할은 베이스 주자가 없는 그룹을 위하여 부드럽고 견실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그의 드럼은 그 직무를 충분히 다했다. 그가 두드리는 '싱글벙글 비트'에서 뼈속까지 뒤흔드는 듯한 밀도 높은 신명감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당시 흑인 드러머들의 소박한 스윙을 백인 청중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번역한' 그의 컨셉은 프랙티컬하고 진취적 기상이 넘쳤으며 지적이기도 했다. 특히 뛰어난 청력, 예민한 신경 등의 그의 각별한 특질은 그의 뒤를 이은 백인 드러머들의 스타일을 기본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윌슨, 햄프턴 같은 흑인 뮤지션과 스몰 밴드에서 그저 무심하게 자유로운 즉흥연주를 즐기는 굿맨 어르신 사이에서, 백인 밴드--- 기본적으로는 시카고 재즈이다 ---의 닻을 정해진 장소에 던지고 위치가 어긋나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던 것은 역시 크루파의 흐트러짐없는 비트였으며, 그것은 음악적인 급소라고 해도 지장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화려한 드럼 솔로를 일약 유명해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듬 메이커인 크루파의 값어치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크루파는 그런 굿맨 시대의 화려한 이미지로 낙인이 찍혀 독립을 하고서는 긴긴 세월 고생을 해야 했다.
  물론 크루파의 대표적 드럼 연주를 들으려고 한다면, 1930년대 굿맨 시대의 레코드를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가 굿맨 악단을 떠난 후에 조직한 빅 밴드도 상당히 신선하고 들을 만한 보람이 있다. 특히 1946년에서 57년 사이에, 당시 열아홉 살 제리 멀리건의 편곡으로 녹음한 "How High the Moon"과 "Disc Jockey Jump"와 같은 히트 곡에는 희미하게나마 팝의 내음마저 풍겨 지금 들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드럼도 적확하게 밴드를 떠받치고 있다. 그리고 12년 후에 크루파는 멀리건이 남긴 악보를 그대로 사용하여 버브에서 다시 음반을 내게 되었는데, 그런 종류의 기획치고는 의외로 재미가 있다. 오리지널 연주의 거친 면은 사라졌지만, 에디 버트, 카이 윈딩, 필 우주 등의 신세대 뮤지션의 옛 악보에 새로운 사운드로 솜씨 좋게 숨을 불어넣고 쏠쏠하다. 멀리건 자신도 "나의 스타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옛날 곡이라서, 기획 얘기를 듣고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상당히 좋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약관 열아홉 살에 무명인 멀리건의 재능을 간파하고 등용하여 밴드의 어렌지를 송두리째 맡긴 밴드 리더 크루파의 도량이랄까 모험 정신에도 재삼 경의 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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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el Hampton

 Lionel Hamp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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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한 지 오래지 않아 게리 버턴은 당시 비브라폰 주자로 절정에 있었던 밀트 잭슨을 비판했다가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그는 훗날 씁쓸하게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그때 절감했다. 주류를 가볍게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밀트 잭슨이 데뷔할 당시, 비브라폰 주자로서 재즈계에서 군림했던 뮤지션은 라이오넬 햄프턴이었다. 아니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를 재즈에 도입하여 기본적인 주법을 확립한 사람이 바로 햄프턴이었고 이미 그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밀트 잭슨은 그 거대한 선구자의 스타일을 파괴하고 자신의 새로운 이디엄을 명료하게 제시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밥 무브먼트 그리고 MJQ는 그의 유효한 무기가 되었다.
  그렇게 보면 햄프턴에서 잭슨으로 그리고 버턴으로 이어지는 비브라폰 주자의 역사적 추이는 다른 악기의 완만하고 집단적이며 대하적(大河的)인 계승성에 비해 개인간의 개성의 대비와 갈등이 보다 더 선연하다. 연주자의 절대수가 적은 마이너 악기인 만큼 일인일당(一人一堂)의 요소가 짙고 늘 고독한 긴장감이 강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옛날부터 비브라폰이란 악기를 좋아했다.
  헴프턴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스윙 밴드 시대의 발랄한 연주는 높이 평가받았으나, 전후에는 "그저 멋들어지게 노래할 뿐 아닌가", "지나치게 CM으로 흘렀다"는 이유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홀대를 받았다. 내 개인적으로는 노만 그랜츠 Clef-Norgran 레이블로 녹음한 일연의 스몰 캄보 연주(백은 오스카 피터슨, 레이 브라운, 버디 리치 등 예의 그랜츠 악단의 "무엇이든 좋아요'의 리듬 섹션)가 마음에 들어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일이 많은데, 이 레코드들도 세상 사람들의 입에는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다.
  하기야 이 무렵의 햄프턴의 음악에서는 혁신성이 거의 사라져서 어떤 곡을 들어도 대개 비슷하다. "뜨뜻미지근하다"고 표현한다면 반박할 말도 없었지만...... 그러나 타악기 비브라폰의 본질적인 특성으르 낙천적이고도 명쾌하게 전면에 부각시킨 햄프턴의 연주 스타일은 나름대로 바람직하고 들어서 기분이 좋다. 뜨뜻미진근할지도 모르겠으나, 회고에 물들지 않고 또 시류에 휩싸이는 일도 없다. 늘 하나의 완결된 언어가 있고, 그것은 보수나 혁신과는 다른 차원이므로 좀더 평가받아도 좋지 않을까? 오늘날에, 시대와 함께 비참하게 바람처럼 사라져간 무수한 '혁신성'의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닐까?
  주안점을 '신난다'는 데에 둔다면, 나는 임펄스의 "You Better Know It!!!"를 좋아한다. 1964년에 녹음한 앨범인데, 클라크 테리, 벤 웹스터, 같은 베테랑이 전열에 진을 치고 오랜만에 마음껏 스윙한다. 행크 존스도 좋다. 연주의 질도 높고 의욕도 충분하고, 신기하게도 퇴보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요즘은 이렇게 "저력있는 어른들의 놀이" 같은 앨범을 별로 볼 수 없다. 신나고 아주 좋은데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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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 Callo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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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r Cab Calloway at the Cotton Club on New Year's Eve.
 
 

Cab Calloway

 
  캡 캘러웨이 하면 존 랜디스가 감독한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1980)에서의, 저 기괴한 노래 '하이 디 호'가 저절로 떠오른다.<블루스 브라더스>는 존 랜디스가 흑인 음악 문화에 바친 컬러풀하고 와일드한 오마주인데, 그 영화의 수줍음 많고 몽상적인 소년의 상념 같은 것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 나는 그 점을 상당히 좋아하였다. 특히 레이 찰스와 캡 캘러웨이가 화면 가득 어필하는 음악 신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들이 발산하는 소름끼칠 정도로 원초적이고 고유한 에너지는 이 영화에 담겨 있는 메시지의 차원을 두 단계 정도 끌어 올려놓고 있다.
  또 작곡가 조지 거쉰 그의 포크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에서 캡 캘러웨이를 모델로 한 '스포팅 라이프'란 유니크한 등장 인물을 설정하여 그 역을 캡 캘러웨이 자신이 연기하도록 하였다. 이쯤 되면 캡 캘러웨이란 인물이 지니고 있는 특이함은 시대를 초월하고 음악 스타일을 초월하여 일종의 전설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가 실체이고 어디까지가 반복된 이미지인지 그것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재즈 음악의 역사 속에서 캡 캘러웨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가 1930년대에서 40년대 초엽이라는 점에 대해서 세인들은 대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수준 높은 빅 밴드를 이끌고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수많은 음반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팬들 사이에 <고양이 추 베리>라 불리고 있는 에픽 사의 LP다(이 레코드는 일본에서 편집된 것인데 내용이 오리지널보다 훨씬 좋다)
  이 앨범은 1940년을 전후하여 테너 색소폰 주자 레온 추 베리가 연주한 곡들을 모아 놓은 것은데, A면은 추 베리 자신의 밴드 연주 B면은 그가 솔로이스트로 연주한 캡 캘러웨이 악단의 연주이다. 당시의 캡 캘로웨이 악단에는 추 베리 외에도 디지 길레스피, 타일리 글렌, 밀트 힌턴 등 젊고 활기찬 뮤지션들이 있었고, 그들은 부드럽고 발랄한 음악성을 지닌 리더와는 달리 무대 위에서 과격한 솔로를 펼쳐주었다. 캘러웨이 자신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범하게, '나머지는 젊은 사람들이 기량껏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되지'하고 대처하는 구석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원숙한 스윙에서 비밥의 발아기로 서서히 이행하는 시대의 숨결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추 베리는 그야말로 기름기가 잘잘 흐를 만큼 원숙하고 신선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 역시 캘러웨이란 사람의 넉넉한 됨됨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래만 들어봐도 그의 그런 인간성이 은연중에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넉넉한 성품의 캘러웨이조차도 '신세대' 뮤지션인 길레스피하고만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비비꼬일 대로 꼬여, 결국에는 길레스피가 나이프를 들고 캘러웨이에게 달려드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블루스 브라더스>를 보고 잇으면 세월의 흐름 같은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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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s Waller

 Fats Wa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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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팻츠 월러가 작곡한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 중에서도 특히 '지터벅 왈츠'(Jitterbug Waltz)를 좋아한다.
  먼 옛날, 1940년대 초엽에 작곡된 오래된 곡인데, 흐물흐물 올라 갔다 내려갔다,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색다른 음형의 멜로디에다가 어째 기묘한 코드 진행에, 음악으로서 새로운 것인지 낡아빠진 것인지, 단순한 것인지 복잡한 것인지, 성실한 것인지 불성실한 것인지, 들으면 들을수록 아리송해진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이상하게도 귀에 오래 남는 곡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부억에서 ' 띠, 라리라리라리라......' 하고 흥얼거리 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개인적이고 편협한 감상일 뿐 보편성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곡을 듣다 보면, 그 옛날 어디선가 본 아득한 광경이 불현듯 되살아날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느긋한 멜로디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만 같다.
  묘한 비교일지도 모르겠으나 도어스의 에서 레이 만자렉이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저 인상적인 인트로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문득문득 '지터벅 왈츠'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잘 들어보면 전혀 다른 음악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의뭉스럽고 유니크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푸근한 필링 때문에 원초적으로 서로 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으음, '원초적 풍경'이라고 하면 어떨까. 심각한 표정의 가면을 쓴 어릿광대성, 어릿광대 가면을 쓴 심각성. 좀더 확대시키면, 애거드 앨런 포우나 쿠르트 바일의 세계와 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기까지 비약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이 곡은 월러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 레코드도 열심히 들었지만, 다른 연주자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연주가 더러 있었다. 풍류객 미셀 르브랑의 <르브랑 재즈>에 들어 있는 냉철하고 깔끔한 해석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백인 알토 색소폰 주자인 허브 겔러의 수수한 명반 <파이어 인 더 웨스트>(Fire in the West) 쪽을 즐겨 들었다.
  서해안 단골 뮤지션들과 그때 마침 동해안에서 온 케니 도햄과 레이 브라운이 함게 연주하였는데, 이 앨범에서는 특히 도햄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언뜻 듣기에는 대단한 연주 같지도 않은데, 이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짜릿한 흑인 재주가 된다. 신기한 일이다. 도햄이란 사람한테는 원래 그런 음악적인 인덕이 있는 모양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2루수. 무심히 던지는 볼이 마니아들을 열광케 한다.
  느긋하고 푸근한 분위기면서도 재즈의 정신을 절감케 하는 멋들어진 셰션으로, '지터벅 왈츠' 원곡의 악상도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레코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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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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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부터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는 싱어 송 라이터를 좋아해서, 매트 데니스, 보비 툴프, 조니 머서, 호기 카마이클 등의 곡을 즐겨 들어왔다. 그렇다고 결코 미성도 아니고 테크닉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공통성이 있다. "뭐 그렇게 잘 부르지 않으면 어떠냐?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으면 되는 거지" 하는 여유와 자연스러움이 내게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적당한 수줍음 같은 것이 엿보이는 점도 역시 호감이 간다. 봅 딜런과 폴 사이먼이 데몬스트레이트용으로 기타를 퉁기며 노래한 테이프를 들었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카마이클은 1920년대에 인디애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한편, 대학 재즈 밴드를 주재했는데, 대학에 연주하러 온 빅스 바이더벡을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하여 공부도 집어치우고 그대로 프로 뮤지션이 되었다. 천재 빅스는 몸이 부서져라 파멸적인(그리고 매력적인) 인생을 살고 있던 터라,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책상 물림 호기는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삶을 두 눈으로 보고는 흠빡 빠져들고 말았다. 흔히 있는 얘기이다. 하기야 안 그렇겠습니까? 그렇게 굉장한 삶을 보았으니 대학 공부 따위는 답답하고 따분해서 견디겠느냐구요. 그 덕분에 미국 음악은 "Stardust"와 "내 마음의 조지아Georgia on My Mind"같은 눈부신 명곡을 거머쥐게 되었다.


 목소리를 들어 알 수 있듯이 호기 카마이클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영원한 은둔자'같은 분위기가 있다. 아마도 곡의 인세가 정기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테지만, 젊은 나이에 일선에서 물러나 헐리우드에서 살면서 가끔 영화에 출현하거나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두권의 자서전을 쓰면서 아등바등 일하지 않고 "스타더스트"의 카마이클로 유유자적하게 개인적인 인생을 보낸 듯 하다. 좋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성격적으로도 "남을 밀어 넘어뜨리면서까지" 앞서려는 타입은 아니었던 탓이리라. 말하자면 빅스와는 대조적인 인생을 보낸 셈인데, 그렇게 사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60년대 초반에는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 "라라미 목장"에 할아버지 역으로 출연하여 일본에서도 유명했졌다. 한번 일본을 찾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텔레비전에서 "스타더스트"를 노래하는 The Pinuts를 보고는, 두 조그만 소녀가 자기 노래를 부르는 앙증맞음에 감동하여 일부러 분장실까지 찾아가서 만난 일은 전설이 되었다.


  카마이클은 자작곡을 노래한 앨범이 몇 장이나 있는데, 나는 V디스크 판에 들어 있는 "6월의 멤피스"를 좋아한다. 스스로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깊은 맛이 우러나는 목소리로 아련하게 흥얼흥얼 노래한다(휘파람도 분다)성품이 그대로 노래에서 배어나온다. "스타더스트"는 피아노 연주뿐이지만(노래가 없다) 그래도 상당히 멋이 있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Georgia, Georgia
The whole day through
Just a little song
Keeps Georgia on my mind.
Georgia on my mind

Georgia, Georgia
Just this song of you
Comes as sweet and clear
As moonlight through the pines.

Other arms reach out to me
Other eyes smile tenderly
Still in peaceful dreams I see
The road leads back to you.

My Georgia, My Georgia
No peace I find
Just a little song
Keeps Georgia on m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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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dy Wilson

Teddy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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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젊었을 때 테디 윌슨의 연주를 꽤 열심히 들었다. 레코드도 모았다. 스무 살이 약간 넘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테디 윌슨의 피아노에 심취해 있는 광경을 생각한다면 예사롭게 보기 어렵겠지만, 마음에 또는 혈기에 묘하게 저미는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골가게에서 점차 발길이 멀어지듯이, 어느 순간 테디 윌슨의 음악을 더 이상 듣기 않게 되었다. 가끔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면, "아아, 테디 윌슨이군. 멋진 연주야" 하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서까지 레코드 선반에서 테디 윌슨의 옛 레코드를 꺼내 절실한 기분으로 듣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너무 들어 싫증이 난 것은 아니다. 요컨대 현실세계가 진행하는 속도와 윌슨의 음악이 진행하는 속도가 너무 크게 --- 마라톤 실황중계에 비유하면, 앞 마라토너의 '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 간극이 벌어지고만 탓일 것이다. 좀더 간단하게 말하면, 테디 윌슨이 연주하는 음악에 차분하게 귀를 기울이기에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너무나 분주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테디 윌슨의 음악이 고리타분하고 현대적인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와 동떨어져 오히려 마음에 스미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의 음악이 품고 있는 온기는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아직도 단단하게 남아 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테디 윌슨의 피아노에 열심히 귀기울이는 고독하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비록 그 수는 아주 적을지라도.
 
 윌슨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멋은 그 독특한 언어에 있다. 그의 연주에는 아트 테이텀과 같은 초인간적인 박력도 없고 버드 파우웰과 같은 첨예한 혁신성도 없다. 또 셀로니우스 몽크와 같은 강력한 문체도 없다. 그러나 테디 윌슨만큼 부드럽고도 친밀한 언어르 가진 피아니스트는 달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단순히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얘기를 잘 하는 사람은 동시에 듣기도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윌슨의 피아노야 말로 그렇다. 그의 피아노는 그저 무언가를 유창하게 얘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얘기하면서, 청중이 품고 있는 "얘기되지 않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집어냄으로써 따뜻하게 그들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거기에는 숨쉬는 가슴이 있고 성실한 영혼이 있고 말로는 무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주고받음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때로 그의 연주 스타일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특별한 장치를 감지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장치이다. 간혹 "테디 윌슨의 음악은 뭘 들으나 똑 같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때 나는 "테디 윌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테디 윌슨이 테디 윌슨처럼 연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까요?
  테디 윌슨의 피아노 트리오 레코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컬럼비아 판이다. 한 곡 한 곡 명쾌하게 이해되는 연주의 푸근함은 누가 무어라고 하든, 다른 피아니스트에게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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