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3:55

Fats Waller

 Fats Wa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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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팻츠 월러가 작곡한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 중에서도 특히 '지터벅 왈츠'(Jitterbug Waltz)를 좋아한다.
  먼 옛날, 1940년대 초엽에 작곡된 오래된 곡인데, 흐물흐물 올라 갔다 내려갔다,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색다른 음형의 멜로디에다가 어째 기묘한 코드 진행에, 음악으로서 새로운 것인지 낡아빠진 것인지, 단순한 것인지 복잡한 것인지, 성실한 것인지 불성실한 것인지, 들으면 들을수록 아리송해진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이상하게도 귀에 오래 남는 곡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부억에서 ' 띠, 라리라리라리라......' 하고 흥얼거리 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개인적이고 편협한 감상일 뿐 보편성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곡을 듣다 보면, 그 옛날 어디선가 본 아득한 광경이 불현듯 되살아날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느긋한 멜로디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만 같다.
  묘한 비교일지도 모르겠으나 도어스의 에서 레이 만자렉이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저 인상적인 인트로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문득문득 '지터벅 왈츠'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잘 들어보면 전혀 다른 음악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의뭉스럽고 유니크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푸근한 필링 때문에 원초적으로 서로 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으음, '원초적 풍경'이라고 하면 어떨까. 심각한 표정의 가면을 쓴 어릿광대성, 어릿광대 가면을 쓴 심각성. 좀더 확대시키면, 애거드 앨런 포우나 쿠르트 바일의 세계와 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기까지 비약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이 곡은 월러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 레코드도 열심히 들었지만, 다른 연주자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연주가 더러 있었다. 풍류객 미셀 르브랑의 <르브랑 재즈>에 들어 있는 냉철하고 깔끔한 해석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백인 알토 색소폰 주자인 허브 겔러의 수수한 명반 <파이어 인 더 웨스트>(Fire in the West) 쪽을 즐겨 들었다.
  서해안 단골 뮤지션들과 그때 마침 동해안에서 온 케니 도햄과 레이 브라운이 함게 연주하였는데, 이 앨범에서는 특히 도햄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언뜻 듣기에는 대단한 연주 같지도 않은데, 이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짜릿한 흑인 재주가 된다. 신기한 일이다. 도햄이란 사람한테는 원래 그런 음악적인 인덕이 있는 모양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2루수. 무심히 던지는 볼이 마니아들을 열광케 한다.
  느긋하고 푸근한 분위기면서도 재즈의 정신을 절감케 하는 멋들어진 셰션으로, '지터벅 왈츠' 원곡의 악상도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레코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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