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3:50

Teddy Wilson

Teddy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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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젊었을 때 테디 윌슨의 연주를 꽤 열심히 들었다. 레코드도 모았다. 스무 살이 약간 넘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테디 윌슨의 피아노에 심취해 있는 광경을 생각한다면 예사롭게 보기 어렵겠지만, 마음에 또는 혈기에 묘하게 저미는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골가게에서 점차 발길이 멀어지듯이, 어느 순간 테디 윌슨의 음악을 더 이상 듣기 않게 되었다. 가끔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면, "아아, 테디 윌슨이군. 멋진 연주야" 하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서까지 레코드 선반에서 테디 윌슨의 옛 레코드를 꺼내 절실한 기분으로 듣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너무 들어 싫증이 난 것은 아니다. 요컨대 현실세계가 진행하는 속도와 윌슨의 음악이 진행하는 속도가 너무 크게 --- 마라톤 실황중계에 비유하면, 앞 마라토너의 '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 간극이 벌어지고만 탓일 것이다. 좀더 간단하게 말하면, 테디 윌슨이 연주하는 음악에 차분하게 귀를 기울이기에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너무나 분주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테디 윌슨의 음악이 고리타분하고 현대적인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와 동떨어져 오히려 마음에 스미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의 음악이 품고 있는 온기는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아직도 단단하게 남아 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테디 윌슨의 피아노에 열심히 귀기울이는 고독하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비록 그 수는 아주 적을지라도.
 
 윌슨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멋은 그 독특한 언어에 있다. 그의 연주에는 아트 테이텀과 같은 초인간적인 박력도 없고 버드 파우웰과 같은 첨예한 혁신성도 없다. 또 셀로니우스 몽크와 같은 강력한 문체도 없다. 그러나 테디 윌슨만큼 부드럽고도 친밀한 언어르 가진 피아니스트는 달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단순히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얘기를 잘 하는 사람은 동시에 듣기도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윌슨의 피아노야 말로 그렇다. 그의 피아노는 그저 무언가를 유창하게 얘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얘기하면서, 청중이 품고 있는 "얘기되지 않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집어냄으로써 따뜻하게 그들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거기에는 숨쉬는 가슴이 있고 성실한 영혼이 있고 말로는 무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주고받음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때로 그의 연주 스타일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특별한 장치를 감지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장치이다. 간혹 "테디 윌슨의 음악은 뭘 들으나 똑 같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때 나는 "테디 윌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테디 윌슨이 테디 윌슨처럼 연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까요?
  테디 윌슨의 피아노 트리오 레코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컬럼비아 판이다. 한 곡 한 곡 명쾌하게 이해되는 연주의 푸근함은 누가 무어라고 하든, 다른 피아니스트에게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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