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4:16

Jimmy Rushing

Jimmy Ru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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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사스 시티 시대부터 오랜 세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간판 스타(중 한명)로 일한 지미 러싱이 독립하자 카운트 베이시는 전속 가수를 몇 명 고용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조 윌리엄스가 가장 실력 있고 유명했지만, 그런 그조차 '젊은 가수의 대역"같은 인상을 오래도록 떨치지 못했다. 안된 얘기지만, 그 정도로 지미 러싱의 존재의 비중이 컷던 것이다. 나는 오히려 매트 데니스나 보비 툴프와 같은 '상큼형' 남성 가수를 좋아하여 러싱 같은 '끈적끈적형'을 별로 열심히 듣지 않는데, 그래도 러싱의 가창에는 취향을 넘어선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어서 들을 때마다 "아, 좋다"하고 순순히 감탄하고 수긍한다.
  그에 관한 글들을 이리저리 들추어보니, 인간적으로는 개성이 너무 강해 문제성이 있는 아저씨였던 것 같은데, 하기야 그 정도 박력이 없으면 이만큼 파워풀한 노래는 부르지 못할 것이다. 앰프의 성능이 아직 불안정했던 시대에 거의 폭력적일 만큼 강력한 음을 쏟아내는 빅밴드와 한 무대에서 음량을 겨루어야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근성이 아니고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같은 블루스 오리엔티드 싱어이지만, 스마트하고 도회적인 감성의 신세대 가수 조 윌리웜스에게는 그런 '캔사스 아저씨, 뽕짝 파워' 같은 박력은 없었으니(대체로 없는 것이 보통이다), 내기를 하자면 이길 가망이 없다.
 러싱은 어떤 시기의 레코드를 틀어도 러싱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는 기운차고 유일무이한 노래를 들려주는데, 역시 속내를 서로 아는 베이시 악단의 토박이 연주에 맞춰 노래할 때가 가장 마음 편히 스윙하는 때인 것 같다. 시작부터 "이 악단이야 내가 속속 다 알고 있지" 하는 식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깊이가 있다. 그리고 싫든 좋든 거기에는 저 그리운 캔사스 시티의 메마른 기풍이 배어 있다.
  베이시 악단에서 독립한 후의 앨범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Jazz Odyssey"와 "Little Jimmy Rushing and Big Brass"와 같은 컬럼비아 판인데, 특히 후자는 여느 때의 베이시의 동창생에다가 콜맨 호킨스, 빅 디킨슨 등의 호화로운 손님이 합세하여, 부드러운 스윙감을 만끽하게 한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러싱의 목소리에서 전성기의 신축성을 기대하기는 과연 어려워지지만, 반대로 차분하게 집중하여 설득력있는 노래를 부른다. 나이가 들어 이야기의 속도나 감칠맛은 다소 쇠퇴했으나, 인정미 넘치는 이야기는 능숙한 이야기꾼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러싱은 죽을 때까지 늘 부지런한 현역이었으며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키가 작기로도 유명했으나, 오기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타인에게 약점을 잡히느니 차라리 분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급사했을지도 모른다. 옛날 이야기가 나오는 어떤 난쟁이처럼.
 내트 피어스가 편곡한 "June Night"나 벅 클레이튼이 편곡한 "Jimmy's Blues"를 들으면, 일일이 까다로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재즈가 충분히 스릴 있고 영웅적이었던 시대의 공기가 절절하게 되살아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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