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1:09

쟝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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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렌치 키스"란 영화를 좋아한다. 케빈 클라인이 불어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얘기하는 수상한 프랑스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는 옥신각신 끝에 전형적인 미국 아가씨 맥 라이언과 맺어진다. 영화는 행복하게 끝이 나고 크레디트 타이틀이 죽 나열되면서 그 배경에 케빈 클라인이 코맹맹이 소리로 부르는 "La mer"가 흐른다(불어로). 침대에서 아마도 섹스를 한 후, 흠흠흠흠 하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거, "Beyond the Sea"이지. 가사가 프랑스어로도 번역됐네."  옆에서 맥 라이언이 놀랍다는 듯이 말한다. "있지, 이건 원래 프랑스 노래라구." 케빈 클라인이 항의한다. "거짓말. 그거, 보비 달린 노래라구. 내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맥 라이언은 물러서지 않는다.
미국의 극장에서 보았는데, 그 목소리뿐인 마지막 대화가 익살스럽고 멋스러워, 다른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고 없는데도 나 혼자 남아 엔딩 크레디트까지 보고 말았다. 그리고 장고 라인하르트가 연주하는 "라 메르"가 무지무지 듣고 싶어졌다.

 

 물론 케빈 클라인의 주장이 옳다. "라 메르"는 원래 프랑스 노래이고 1938년 샤를 트레네가 작곡했다. 보비 달린이 "Beyond the Sea"란 제목으로 노래하여 미국에서 대히트를 친 것은 1950년대 중반이고, 90년대에 들어서는 조지 벤슨도 노래하여 유행했다.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멋진 곡이라서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을 명콤비 장고 라인하르트와 스테판 그라펠리의 연주로 들으면 "이제는 아무 것도 필요없어"라는 기분이 든다. 그 정도로 차밍하고 인상적인 연주이다. 라인하르트와 그라펠리가 함께 연주한 곡들은 어느 것을 들어도 불평의 여지가 없지만, "라 메르"는 처음 들었을 때 --- 대학생이었다 ---부터 유독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앨범 "Djangology"는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녹음한 것이 아니라, 장고와 그라펠리가 1949년에 로마의 한 나이트 클럽에 출연할 당시, 어떤 이탈리아인 재즈 팬이 개인적으로 세션 자리를 마련하여 거기에서 녹음한 것이다. 그래서 음질은 그다지 칭찬 받을만한 것이 못 되지만, 그런 부정적 요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피커 저편에서 당시 유럽 땅에 깔려 있었던 공기 같은 것이 직접 연결되어 온 방을 가득 채운다. 이 박진감은 음의 좋고 나쁨과는 무관하다고 할까, 점차 "이 음악에는 이 정도의 음질이 마침 적당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라면?


 정말 오리지널한 음악만이 지니는, 곧바르고 뜨거운 기백에 덧붙여 "지금 여기에서 살면서 이렇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유의 기쁨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소리로 결정(結晶)을 이룬다. 라인하르트는 그밖에도 탁월한 연주를 많이 남겼지만, "장골로지"에서 장고와 그라펠리가 보여준 물 한방울 새지 않을 긴밀성과 적당히 남겨둔 컬래버레이션은 언제 들어도 황홀감에 젖기에 충분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2008. 8. 29. 10:45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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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다. 고등학교 때 돈을 모아서 앨범 "Song For My Farther"를 샀다. 여자 친구와 같이 코베(神戶) 모토마치(元町)에 있었던 일본 악기 가게에 들러서 샀다. 제작사의 띠를 두른 묵직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 수입판이었다. 레코드에 인쇄되어 있는 블루 레코드의 주소는 아직도 뉴욕 61번가 41번지였다.


  그녀는 딱히 재즈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재킷이 멋지네"라고 말했다. 계절은 가을이었고,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눈을 잔뜩 부릅떠야 보일 만큼 높이 떠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런 것들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그 레코드를 산 일이 인상에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당시 블루 노트 레코드는 일본에서의 레코드 복제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입 음반밖에 입수할 수 없었다. 가격은 2800엔(1달러는 360엔이었다)이었는데, 커피 한 잔을 60엔에 마실 수 있는 시대였으니 상당한 금액이었다. 고등학생으로서는 분수에 넘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정성껏 들었다. 축음기 나팔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빅터 레코드사의 개처럼, 말 그대로 음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 친구보다 더 소중하게, 그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하게 다뤘다. 손으로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요리조리 바라보기도 하면서. 내게 한 장의 레코드는 보물이었으며 다른 세계로 가는 귀중한 입장권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음악의 내용이 훌륭해도 요즘 사람들은 CD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껴안지는 않을 것이다(껴안을려나?)
 
 타이틀 넘버인 "Song For My Farther"는 불사가의한 존재감을 지닌 곡이다. 리듬의 바탕은 보사노바인데, 묵직하고 끈적하고 어두운 색 필터가 끼여 있어, 당시 유행했던 스탄 게츠의 세련되고 도회적인 보사노바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버지는 포르투칼 출신의 흑인이었다. 호레이스가 어렸을 때, 곧잘 동네 사람들은 악기를 들고 자기들끼리 모여 세션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정겨운 뒷골목 냄새가 음악 구서구석에 푸근하게 배어 있다. 하드 밥도 아니고 펑키도 아닌 호레이스 실버의 개인적인 세계가 선명하게, 다소는 마술적으로 전개된다. 멜로디는 뚝뚝 끊어지지만, 속은 꽤 깊다.
 
  젊은 날의 조 헨더슨이 연주하는 테너 색소폰의 톤도 찬찬히 귀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배가 고플 때 들으면 뱃속이 꽉 차오를 듯한 사운드이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하게 이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울려놓았는데(지금은 미발표곡을 포함한 CD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푸근한 소리에 나는 LP를 선택하고 만다), 그런데도 질리지가 않으니 참 대단하다. 지금도 레코드 위에 바늘을 내려놓고, "송 포 마이 파더"의 저 독특한 인트로가 시작되면 나는 가슴이 춤을 춘다. 스틸리 댄은 "Rikki Don't Lose That Number"란 곡에 이 인트로를 인용했는데, 그 쪽을 들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진실로.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2008. 8. 29. 10:43

토니 베네트(Tony Ben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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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포스트 프랭크 시나트라'의 자리에 오를 것인가?

많은 남성 가수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패권을 다투었다.

보비 달린, 페리 코모, 버디 그레코, 빅 데이먼, 조니 마티스 --- 그러나 모두들 어중간하여, 대형 정통파 남자가수로는 대성하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고, 토니 베네트만 거센 파도에 떠밀려 내려가지 않은 튼튼한 창고처럼 혼자 남았다. 시나트라와는 개성이나 맛이 상당히 달랐지만, 아무튼 이 사람만큼 실력있는 사내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기야 시나트라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고 죽기 직전까지 현역으로 노래를 불렀으니, 포스트 시나트라란 자리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었고, 거인이 죽은 후에는 시나트라적인 것의 수요 자체도 소멸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토니 베네트는 '최후의 대형 정통파 남자가수'라는 귀중한 존재가 된 셈이다.
 

 베네트는 재즈에 조예가 깊었고, 시나트라가 거의 빅 밴드하고만 일한데 반해, 소편성의 재즈 캄보와 일하기를 즐겼다. 고상하고 상큼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국 출신의 랄프 샤론이 마음에 쏙 들어, 1954년부터 마지막까지 피아노 반주자겸 편곡자로 같이 일했다(일시적인 중단은 있었지만). 그밖에도 탁월한 뮤지션들과 함께 무수히 공연했고, 재즈향이 넘치는 앨범도 다수 남겼다. 시나트라가 빅 밴드 시대의 총아였다면, 베네트는 밥의 세례를 받은 캄보 세대의 가수였다.


  그러나 시나트라는 베네트보다 한결 더 재즈의 진수에 가까웠다. 베네트의 노래에서 광기나 자기 모순, 좌절, 악의, 집착, 붕괴의 그림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아름답고 성량은 풍부하고, 프레이징은 지나칠 정도로 명료하고, 있는 그대로의 정감을 담아 노래한다. 그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따진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뭐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니까. 애당초 그가 재즈 가수인지 아닌지 따위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로 상관없는 일일 테니까.
 

 클럽에서 토니 베네트의 라이브를 직접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입을 모아 멋진 체험이었다고 말한다. 인품이며 무대 매너며 노래며 모두 정말 멋 있었다고. 아마 사실이 그랬을 것이다. 베네트의 자연아적이며 탄력 있는 노래는 그가 아니면 인도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온기 어린 목소리는 그가 아니면 녹여줄 수 없는 온도로 우리를 녹여준다. 그것은 가수로서 실로 행복한 재능이며 성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을 택하라면, 나는 시나트라가 지닌 어떤 종류의 질곡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토니 베네트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질곡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굳이 베네트의 노래를 배제하고, 피아노 반주자인 랄프 샤론이 토니 베니트의 노래를 정규 트리오로 연주한 앨범을 추천했다. 이 앨범을 들으면, 클럽에서 베네트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막간에 샤론이 들려주는 피아노의 산뜻함과 함께 푸근한 분위기가 느껴져 나는 상당히 기분이 좋다. 베네트가 없어도 베네트성(性)이 꽤 높다. 물론 "I Left My Heart In San Freancisco" 도 들어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Bill Evans and Tony Bennett
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


Date of Release Jun 10, 1975 - Jun 13, 1975 (recording) in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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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캐논볼 애들리(Julian Cannonball Adder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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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캐논볼 애들리는 자연스럽고 위대한 재능을 지닌 불세출의 뮤지션이었다. 자유분방한 이미지네이션, 쾌락적인 테크닉, 아름답고 온기가 배어 있는 독특한 톤...... .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의 존재 기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치명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아니었다.

  인간적으로도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음악을 틀어보면 대충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 뛰어난 음악이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즉 죽음의 구현이다. 그리고 대개 우리들로 하여금 암흑으로의 추락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악의 과실에서 짜낸 농밀한 독이다. 그 독을 마실 때의 감미로운 경련, 시간의 흐름을 엉클어버리는 강렬한 뒤틀림이다.
 
  그러나 1964년에 로스앤젤레스의 <쉐리즈 맨 홀>에서 있었던 라이브 콘서트를 녹음한 이 음반은, 실로 오랜 세월 나의 은밀한 애청판의 하나였다. 특히 B면에 들어 있는 찰스 로이드의 오리지널 발라드 'The Song My Lady'에서 캐논볼이 들려주는 긴 솔로는 모든 이성을 제압하고 가슴으로 파고든다. 이 한 곡을 위하여 나는 레코드를 수도 없이 여러 번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렇다고 이 솔로가 그가 남긴 최고의 솔로라고 단언할 생각은 없다. 주의깊게 들으면 군데군데 매끄럽지 못하여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하늘을 나는 말 같은 젊은 날의 광휘도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 이 음악의 표면에서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인간적인 무언가가 밖으로 흘러넘친다. 소리없이, 그러나 풍요롭게.  
 

 그 세계는 어딘가 먼 도시에 있는 가고 싶고 그리운 방처럼, 그저 조용하다. 캐논볼이 색소폰을 연주하면 그 하나하나의 음표가 들쭉날쭉하게 일어나, 살며시 바닥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온다. 그리고 마음의 결로, 조그맣고 보드라운 손을 내민다. 한밤에 혼자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그 레코드에 귀기울이고 있으면 음악과 함께 있다는 황홀감이 몸 속에서 샘솟는 느낌이다. 사이에 끼여 있는 조 자비눌의, 숨을 죽이고 정제된 인내로 변화를 자제하듯 연주하는 피아노 솔로도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캐논볼이라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광기어린 음악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그는 자연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 그리고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느긋하게 사라져갔다. 반성이나 성찰, 배신과 해체와 자기 은폐와 잠 못 이루는 밤은, 이 사람의 음악이 내세우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필경은 그 때문에, 그 아폴론적으로 광대한 슬픔이 때로, 다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특별한 방식을,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울린다. 부드럽게 용서하고, 그리고 소리없이 감동시킨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Mercy, Mercy, Mercy! Live at 'Th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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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terson

 Oscar Pe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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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 끝까지 에너지로 충만하달까, 아무튼 오스카 피터슨은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다. 다작이지만, 평균점이 높고 실패작이라고 할만한 곡이 거의 없다. 나는 오스카 피터슨의 레코드를 유독 열심히 모은 것도 아닌데, 우리 집에 있는 그의 레코드를 세어보았더니 무려 50장이 넘었다. 80년대에 파블로로 옮긴 이후의 레코드는 거의 사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내가 재즈를 듣기 시작했을 무렵, 재즈 카페에서 인기가 있었던 피터슨의 레코드는 "The Trio", "Night Train", "West Side Story"였다. 1960년대 전반의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연주는 한 곡 한 곡이 모두 들을 만한 가치가 있었고, 지금 들어도 역시 상투적인 교양주의를 배제한 흥쾌한 기백이 넘친다. 내가 가장 열심히 들은 레코드는 "더 트리오"와 같은 런던 하우스에서 라이브를 녹음한 "Something Warm"인데, 마디마디를 죄다 외워버렸다. 불똥이 튀기는 것처럼 빠른 패시지, 숨도 못 쉴 정도의 압도적인 공세, 뒤로 죽 잡아당겨 공간을 넓힌 슬로 발라드 등 어느 면에서 보아도 대인의 품격이 있고 완성된 '피터스니즘'의 진열대라고 해도 좋을 완벽한 앨범이었다.
  다만 이 시기 이후의 연주는 완성도가 지나쳐 듣기에 피곤한 것도 있다. 60년대 후반에 MPS로 옮긴 후로는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해져서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투덜거리고 싶은 때도 내게는 종종 있었다. 날마다 냄비 우동만 먹다보면 식욕이 감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예풍(藝風)이 스러져가는데, 피터슨에 한해서는 날마다 한결같은 냄비 우동이다.
  나는 JAPT 시대의 기타가 있는 피터슨 트리오의 연주를 비교적 즐겨 듣는다. 이 시대의 사운드는 후기의 연주에 비하면 두터움이 다소 떨어지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직 스윙하는" 젊은 날의 한결같은 열정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순수함이 있다. 유니트의 리듬감도 드럼 트리오 시대와는 약간 달라서 허리쯤에서 슬렁슬렁 흘리는 듯한 감이 있으며, 그런 특유의 정묘함은 에드 시그펜이 합세한 후의 드럼 트리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얻는 것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피터슨은 라이브로 들어야 제맛이라는 관점에서도 JAPT에서 녹음한 그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전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유니트 연주는 물론이고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반주를 담당했을 때의 잠재력도 대단하다. JAPT의 솔로이스트들 중에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연주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솔로를 고무하고 자극하는 피터슨의 인간 다이나마이트적인 아낌없는 열연은 때로 헛수고로 끝나는 일도 있었지만, 수많은 제일선의 연주자들에 유익하고 자극적인 불꽃을 선사했다.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재즈 팬들의 취향이야 어떻든, 그의 그런 초인적인 공로는 좀더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안 그렇습니까? 이렇게 기운찬 연주는 달리 없을 걸요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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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 Montgomery

 Wes Montgom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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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 몽고메리의 기타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 사람의 연주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고 느꼈다. 톤이며 주법이며 정말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것도 고생고생 머리로 생각하여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어딘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샘솟는 듯한 넉넉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야, 이거 굉장하군"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감탄할 만한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그의 이와 같은 자연아적(自然兒的) 매력은 역시 라이브 판인 "Full House"에 가장 좋은 형태로 담겨 있다. 자니 그리핀의 뜨겁고 군더더기 없는 테너 색소폰의 도움 덕에 실로 그 매력이 흘러 넘칠 정도이다. 윈튼 켈리 트리오와 같이 작업한 "Smokin' at the Half Note"도 스윙기한 뛰어난 앨범이지만, 오래 듣다보면 켈리와 웨스의 얽힘에 귀가 거슬리기도 한다. 두 사람 각자의 특징적인 스타일이 군데군데에서 중첩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점, 그리핀과 웨스의 합작에는 좋은 의미에서의 '나눔'이 있다. 단단하게 주무른 주먹밥처럼 하드보일드한 그리핀의 테너 톤과, 적당히 달콤하며 깊고 풍부한 웨스의 사운드가 마침 알맞게 뒤얽히고 퉁겨내고 서로를 자극한다. 여기에서도 켈리가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그가 사이드 맨의 역할에 충실한 때에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그 분위기가 황홀하다.
  그러나 웨스는 독자적인 연주 스타일을 확립하여 간판을 내걸 수 있는 스타 플레이어가 되고부터는 혼 주자와 함께 연주한 일이 거의 없다. 데뷔후 한동안은 애덜리 형제나 해롤드 랜드와 같이 연주한 앨범을 몇 장 내놓았는데, 자신의 캄보 밴드와 연주한 앨범에서 혼 주자를 내세우기는 이 "풀 하우스" 한 장뿐이다. 오히려 오르간 주자를 영입하거나 빅 밴드를 백에 배치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마도 음의 구사 방식이 점차 두텁고 대범해져서 타인의 솔로에서 백을 담당하기가 다소 부자연스러워졌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핀과의 연주에서 볼 수 있는 혼과 기타의 멋진 하모니나 여유만만하고 조심스러운 반주는 듣다보면 가슴이 뛴다. 가능하다면 이런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싶었다.
  지미 스미스와 함께 한 호화로운 연주도 즐겁고, CTI 노선도 완성도가 뛰어나다 나는 그런 앨범을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배제할 마음이 없고 실제로 즐겨 듣기도 한다. 그러나 경력이 후반으로 접어들면 들수록 웨스의 연주 역시 과연 예정 조화적인 색채가 짙어지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 정도로 그릇이 크고 품이 넓은 연주가이니, 연주 인생의 어딘가에서 스릴이 넘치는 재즈 앨범을 녹음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고 나는 생각한다. 하기야, 뭐, 그런 자잘한 부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소위 자연아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에 따르면, 그는 1961년경 미국 서해안에서 존 콜트레인과 몇 번 연주한 적이 있다는데, 그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 안타깝다. 과연 어떤 연주를 했을까? 꼭 듣고 싶군요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Full House
  Wes Montgom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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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재즈 퀘텟(Modern Jazz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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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남성 패션 하면 아이비
스타일이 최고였다. 아니 그것말고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아메리칸 트렌트이다. 그런 시대에 모던 재즈 사중주단(MJQ) 네 명의 스타일은 우리들 눈에 무척 쿨하게 비쳤다.


 당시 재즈 뮤지션 하면 모두들 지저분한 차림에 마약을 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한다는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는데, MJQ 네 명은 부루스 브러더스 풍의 검정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하얀 버튼 다운 셔츠에 실크 넥타이를 맸다. 수염도 단정하게 길러 핸섬하고 인텔리전트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대 매너는 대학 교수처럼 차분하고 억제되어 있었다. 아마도 존 루이스가 그런 전략을 구사했을 테지만, 아무튼 참 멋이 있었다. 동경했다. 지금은 윈튼 마샬리스 일파가 그 흐름을 이어받아 값비싼 이탈리아제 양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그들보다는 당시의 MJQ 네 명이 음악적으로나 패션적으로나 영향력이 더 컷다. 거기에는 "흑인 뮤지션도 이렇게 지성이 있다.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걸 맞는 경의를 요구한다"는 단호하고도 절실한 그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MJQ 유니트의 강력함은 그 유니트의 파탄성(破綻性) 속에 있었다. 이 점은 그들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정경을 직접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른 세 사람은 설정된 집단적인 사운드를 반듯하게 유지하는데, 비브라폰 주자인 밀트 잭슨은 솔로 도중에 그 형식적인 스타일을 견디지 못하고, 윗도리를 획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 물론 비유적인 의미로 --- 개인적으로 유유히 스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어도 나머지 세 사람은 "나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담담하고(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무표정하게 MJQ적인 리듬을 유지한다. 하고 싶은 연주를 다 하고 나면 잭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윗도리를 반듯하게 입고 넥타이를 조인다. 그 반복이다. 그 '일탈'과 통일의 융통성이 거침없이 이루어지는데, 그 전환이 결과적으로 상당히 스릴 있고 또 상당히 재즈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20년이란 오랜 세월에도 딱 한 번 멤버를 바꿨을 뿐, 상업적으도 팀을 존속시켜왔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음악성을 견지해올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 MJQ는 어느 시점을 지나자 과거의 오리지널한 창조력을 잃었고, 틀에 박힌 일을 싫증을 내게 되었으며, 그 결과 네 사람은 가자 자기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60년대의 옛 영화를 보다가 MJQ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면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 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것이 바로 재즈였다고 새삼 나는 생각한다.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말해야 할 것은 실로 웅변을 하듯이 말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Django The Modern Jazz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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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organ

Lee M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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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위있고 꿈을 꾸듯이 신축성이 있는 톤과, 나중 일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타고난 생기발랄함 덕분에 리 모건은 늘 재즈 카페의 인기 연주가였다. 그는 재즈의 판도를 뒤집은 거인적 재능의 연주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리 모건이란 트럼펫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재즈의 풍경이 지금보다 차 스푼 하나만큼은 색채감을 잃고 밋밋해졌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리 모건은 클리포드 브라운이란 거성이 사라진 직후, 재즈 역사의 공백을 메우듯이 열여덟 나이의 천재 소년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서른 네 살이란 젊은 나이에 애인이 쏜 총에 맞아 불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데들리 퀵(deadly quick) 생애였다. 그런 탓도 있을 테지만, 리 모건이 남긴 연주에는 늘 '영원한 보이 원더' 같은 청신함이 떠다닌다.
  어떤 곡을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차밍하고 자연스러운 유락(愉樂)에 충만하고, 그리고 놀랄 만한 속도감이 관철되어 있는 것이 리 모건의 음악이다. 그렇기에 많은 재즈 팬들이 어찌 되었든 그의 연주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음에 다소의 혼란이 나타났던 시기도 있었지만, 리 모건은 거의 완성된 트럼페터로 등장하여 늘 시대를 앞서 가며 바람을 가르고, 새로운 종류의 선열함을 자진하여 체득했다. 그가 그리샨 몽커나 빌리 하퍼, 베니 모핀과 같은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죽기 직전의 레코드는 신기하게도 절충적인 전위성마저 띠고 있다. 그럼에도 최후에 이르도록 그의 음악이 성숙했다는 인상을 주는 일은 없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처음에는 속도감과 유려한 컨트롤에 넋을 잃는데, 집중하고 듣다보면 언젠가는 "어 뭐야, 잠깐"하는 부분이 반드시 생긴다. 구질(球質)의 가벼움이 귀에 거슬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듣는 이는 리 모건이란 연주가에게 나름의 선을 긋고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음악은 마일스 데이비스나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처럼, 아무리 오래 들어도 그 깊은 맛이 희석되지 않는 음악이 아닌 것이다 --- 안타깝게도.
  그러나 앨범 "Sidewinder"가 당대에 얼마나 래디컬하고 멋있었는지, 1960년대의 공기를 숨쉬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이드와인더"는 그 시대의 뜨겁고 가칠한 공기 속에서 거꾸로 선 태아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음악이었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그 흑백 재킷을 손에 들 때마다 당시의 공기가 정면으로 충돌해오듯이 되살아난다. 따끔따끔 뜨겁다. 연주의 밀도에 대해서는 돋보기를 들이대고 흠집을 잡자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악함이 일직선으로 가져오는 것은 다른 어느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말하자면 리 모건은 재즈계의 빌리 더 키드였다. 그는 적어도 하나의 전설을 남겼다. 그 누구도 그보다는 더 빨리 쏘지 못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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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Chet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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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다. 거기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조작할 필요도 없이 그 자신이 '뭔가 매우 특별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광휘는 한여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소리없이 어둠에 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약 남용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추락이 변제의 시간을 넘겨버린 빚처럼 그를 덮친다.
  베이커는 제임스 딘을 닮았다.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그
존재의 카리스마나 면모나 파멸성도 아주 유사하다.  그들은 시대의 편린을 탐식하여 얻은 자양분을 온 세계를  향하여 기분 좋게, 거의 하나도 남기지 않고 되뿌렸다. 그러나 제임스 딘과 달리 베이커는 그 시대를 살아남았다. 그것이 쳇 베이커의 비극이었다. 좀 심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70년대에 쳇 베이커가 부활하여 재평가 받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베이커와 그 시대가 정면으로 충돌하듯 격렬하고 선연한 불꽃을 피웠던 50년대 중기, 미국 서해안에서 그의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연주를 가능한한 오래 뇌리에 담아두고 싶다.

  쳇 베이커의 초기 명연은 제리 멀리건의 오리지널 쿼텟(Quartet)으로 들을 수 있는데, 그 자신의 쿼텟 연주도 아주 훌륭하다. 이 퍼시픽 레코드사의 10인치 판은 리더작 중에서도 제일 초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 가칠가칠하고 어설플 정도로 청신한 음색과 연주에는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인 러 프리맨의 긴장감 어리면서도 말끔하고 독특한 터치가 베이커의 혼이 자아내는 '올곧음'에 선명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펫 쿼텟에서 그의 연주는 시원스럽고 밝은 표층 아래로 침잠한 고독의 여운을 남긴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 소리는 똑바로 공기를 찌르고,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미련없이 사라진다. 노래는 미처 노래가 되기도 전에, 우리들을 둘러싼 벽에 삼켜진다.
  기술적으로 세련된 것은 아니다. 온갖 재주를 피우지도 않는다. 연주는 놀랄만큼 탁 틔여 있다. '저렇게 연주하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소리가 똑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감마저 품게 된다. 소리는 끝없이 청렬하고 감상적이다. 그런 소리에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깊이를 찾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 깊이 없음이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은 우리들이 언젠가 경험한 무엇을 닮았다. 아.주.많.이. 닮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Chet Baker
Chet



Pepper Adams - Sax (Baritone)
Chet Baker - Trumpet
Bill Evans - Piano
Philly Joe Jones - Drums
Herbie Mann - Flute
Connie Kay - Drums
Kenny Burrell - Guitar
Paul Chambers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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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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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허망한 영위일지라도 궁극을 따져보면 그 나름의 고유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머셋 몸이 말했듯,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는' 것이다.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에도 물론 철학이 부수된다. 그것은 바로,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큰 소리로 듣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철학은 아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진실이다. 왜냐하면 카운트 베이시가 빚어내는 음악에 담겨 있는 가장 훌륭한 특질은 그 음악적 '풍압'에 있기 때문이다. 스피커 앞에 앉아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음악을 듣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날아갈 뼌했다면(불과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당신은 이미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풍압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소리를 크게 하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소리가 큰 악단'이란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보다 음향적으로 박력있는 물리적으로 큰소리를 내는 빅 밴드는 그밖에도 많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 탁월한 부분은 그 소.리.의. 작.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정성스럽고 조그만 소리를 쌓아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작은 음을 사용하여 듣는 이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스윙을 들려주는, 마치 쾌할한 고문자처럼......, 가만히 앉아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 놀라운 솜씨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정이 동으로 전환되어, 브라스 밴드가 거침없이 와일드하게 포효할 때 우리들은 낙차의 다이너미즘에 뒤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튕겨나가는 것이다. 작은 소리든 큰소리든 진지하고 대담하게 스윙하는 재주만큼은 다른 어떤 밴드도 흉내내지 못한다. 그 밴드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해도, 캔자스 시티에서 온 윌리엄 베이시(카운트 베이시의 본명) 씨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버브 사에서 나온 '베이시 인 런던'(Baise in London)이다. 카운트 베이시는 라이브를 녹음한 멋진 앨범이 몇 장 있는데, 아무튼 신나고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이 레코드 한 장이면 그만이다. 그 옛날의 재즈 뮤지션의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나쁠 정도'로 스윙하는 연주다. 너무 여러 번 말해서 집요하다 싶은 감이 있지만, 볼륨을 가능한  한 크게 올리고 듣는 편이 좋다. 연주는 첫 시작부터 끝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 특히 LP A면에 들어 있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여섯 곡의 박력은 압권이다.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다. 곡은 '샤이닝 스타킹'(Shiny Stocking)에서 '하우 하이 더 문'(How High the Moon)으로 옮겨 간다. 이리니저리니 골치 아픈 말 떠들 필요없이, 캔 맥주 하나 손에 들고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스테레오의 볼륨을 한 껏 올려 소리의 홍수 속에 몸을 맡기면, 세상은 이미 천국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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