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39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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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에 당대를 풍미한 비밥 재즈를 가장 강열하게 상징하는 뮤지션 하면 역시 디지 길레스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란 베레모, 화려한 검정테 안경, 염소 수염, 헐렁하게 축 늘어진 양복, 위를 향한 기묘한 트럼펫, 그리고 또 무대에서의 기괴한 언동 등은 그의 개인적인 트레이드 마크 선에 머물지 안고 당시의 음악 풍경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호의 하나였다.
 

 그러나 5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를 조감해보자면 자연인 찰리 파커가 남긴 탁월하고 창조적인 연주가 길레스피의 컬러풀하고 재기발랄한(때로 지적이기도 하면서) 연주를, 그 깊이에 있어서나 울림에 있어서나 능가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찰리 파커가 빛나는 신화라고 하면 디지 길레스피는 뛰어난 전설이었다 -- 는 표현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파커와 길레스피의 공연을 들으면 알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고 계발하면서 모자라는 부분을 보강하였다. 파커가 그 향기로운 멜로디와 이미지의 샘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녹아버릴 성싶으면 길레스피는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 틀을 다졌다. 안개가 끼면 예리한 나이프로 그것을 걷어냈다. 그런 점에서 길레스피는 손해를 감당하는 역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커, 파월, 몽크처럼 성깔있고 괴팍한 영웅들이 제멋대로 날뛰었던 당시 비교적 정상적인 균형 감각을 지니 그가 스포크맨 역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길레스피의 음악이 발산하는 와일드하면서도 오락적인 광란성은 다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혼의 깊은 곳에서 억제할 길없이 터져나오고 뿜어낸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길레스피 음악의 진정한 매력은 이러한 토착성과 쿨한 현실성의 상호배척적이면서 자연융화적인, 기묘한 동거 속에 있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파커의 음악에 무언가 결여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불합리하고 자기 모순적인 혼란이 아니었을까.
 

 파커가 죽은 후에는, 스몰 캄보에서 즉흥연주자로서 연주한 길레스피보다 그가 주재한 중편성 캄보나 빅밴드 사이즈의 연주를 나는 높이 평가한다. 당시의 이미 중편성이나 빅밴드가 주류가 아니었으므로 그 또한 길레스피의 불행인 셈인데, 연주 자체의 수준은 아주 높다. 그 힘차고 전투적인 음의 집합 속에서 우리들은 마술적인 혼의 깊은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거기에는 열려한 축제가 있고, 진혼이 있고 마음을 뒤흔드는 난숙이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이미 파커적인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뉴포트에서의 라이브 판에서 우리는 리 모건, 베니 골슨 같은 젊고 싱싱한 뮤지션들과 함께, 편곡자이며 솔로이스트로 연주하는 길레스피의 전투성과 저력을 -- 해체와 종합을 -- 한껏 만끽할 수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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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 <버드 앤 디즈>(Bird and Diz)의 연주 멤버는 신기한 인물들의 집단이다. 디지 길레스피와 베이스의 칼리 러셀 두 사람이 같이 연주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프로듀서인 노먼 그란츠가 드러머인 버디 리치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버드(파커)는 일거리가 없는 셀로니우스 몽크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각 통일성 없는 퀸텟(Quintet)이 구성되었다.

  리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공전의 테크닉으로 열심히 두드려댔기 때문에 개런티도 눈이 뛰어나올 정도로 높았다. 한편 몽크는 그 전위적인 스타일이 일반인에게 이해되지 않아, 인기는 물론이요 일거리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었다.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몽크와 리치는 전혀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피차가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지 원' 하는 식으로, 각자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날 스튜디오에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이건 나 개인의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이후,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처음 이 레코드를 들었을 때, 드럼을 맥스 로치나 케니 클라크가 연주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몽크의 피아노는 막 두드려 만든 쐐기처럼 날카롭게 다가오는데(솔로는 그다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그래도 유니크한 반주는 일품이다), '어때, 이래도'란 식으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전통적인 스윙 감각의 드럼에 김이 새고 만다.
   
  그런데 최근에 이 앨범을 새삼스럽게 들어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으음,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지만, 그래도 버디 리치의 드러밍은 굉장하군'이란 감탄사가 나오고 말았다. 화려하게 튄다는 인상은 변함없지만 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이 세션 특유의 드러밍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홀로 독자적인 길을 가는 몽크의 방향성을 부각시키는 것 역시 리치의 무모한 '두드려대기'였던 것이다. 이 두사람의 연주를 로치나 클라크가 대신하였다면 어쩌면 너무 틀이 꽉 잡혀 감동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파커의 연주 같으면. 그밖에도 휠씬 더 좋은 연주가 많은데'란 식으로 사정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리치의 드럼은 과연 시끄럽기는 하지만, 귀를 잘 기울이고 들으면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요소요소마다 어깨에 힘을 빼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할 만한 사람이다 싶다. 그러니 어쩌면 노먼 그란츠는 재능있는 뮤지션을 키우는 '재.배.자.' 로서 독자적이고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앨범 첫머리에 담겨 있는 <블루 무디드>(Blue Muddied)에서, 인트로를 연주하는 짜.릿.짜.릿한 심벌즈 소리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정말 좋습니다.
  찰리 파커에 대해 쓴다면서 버디 리치 얘기만 늘어놓고 말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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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 겟츠는 정서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껴안은 사람이었고, 그 인생 또한 평탄하고 행복하지는 않았다. 스팀 롤러처럼 거대한 에고를 부둥켜안고, 대량의 필로폰과 알코올에 혼을 침식당하면서, 철이 들어서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거의 모든 시기가 안정되고 평온한 생활과는 인연이 없었다. 주변의 여인들은 상처를 입었고, 친구들은 넌더리를 내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스탄 겟츠라는 한 인간이 아무리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활을 보냈다 해도, 그의 음악이 천사의 날개 같은 마술적인 부드러움을 잃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가 일단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서면, 그 무대에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렸다. 마치 불행한 미다스 왕의 손이 그에 닳은 모든 사물들을 빛나는 황금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처럼.
   그렇게 겟츠 음악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빛나는 황금의 멜로디였다. 열렬한 애드리브를 빠른 템포로 펼칠 때에도 거기에는 자연스럽고 윤택한 노래가 있었다. 그는 테너 색소폰을 마치 신의 뜻을 전수한 성대처럼 자유자재로 다루었고, 선명하고도 행복감에 가득한 무언의 노래를 자아내었다. 재즈의 역사에는 별들만큼이나 많은 숫자의 색소폰 연주자가 있다. 하지만 스탄 겟츠만큼 격렬하게 노래하고, 그러하면서도 안이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은 인간은 없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고, 다양한 재즈를 탐닉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스코트 피츠제랄드야말로 소설(the Novel) 이고, 스탄 겟츠야 말로 재즈(the Jazz)라고 생각하고 있다.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에게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 듯도 하다. 그들 두 사람이 창조한 예술에서 결점을 찾아내기 것 또한 가능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하자에 대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각인되지 못햇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들의 하자까지 유보없이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겟츠의 작품은 재즈 클럽 <스토리빌>에서 연주한 두 장의 라이브 앨범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온갖 표현을 초월할 만큼 경이롭다. 퍼내도 퍼내도 고갈되지 않은 자양분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무브'(Move>를 들어보라. 얼 헤이그, 지미 레이니, 테디 코틱, 타이니 캔의 리듬 섹션은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하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냉철하고 간소하며 동시에 땅속의 용암처럼 뜨거운 리듬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훌륭한 겟츠의 연주는 천마처럼 자유롭게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비상하여 눈이 시릴 만큼 초롱한 별하늘을 우리들 앞에 제시해준다. 그 선연한 움틀거림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왜냐하면 그의 노래는 사람이 그 혼 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굶주린 늑대떼를 가차없이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 속에서 짐승의 하얀 숨을 토한다. 손에 잡아 나이프로 도려낼 수 있을 정도로 하얗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숨을....... 그리하여 우리들은 조용히, 깊은 혼의 숲에 사는 숙명적인 잔혹함을 보게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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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Hol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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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다. 그 나름으로  감동도 하였다.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얼마나 멋진 가수인가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휠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한 그녀의 음반을 즐겨 들었다. 그녀가 아직 젊고 싱그러운 목소리로 열심히 노래한 시대의 노래들이다. 나중에 미국의 콜럼비아 레코드 사는 그 대부분을 재녹음하여 음반을 내놓았다. 그 음반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충만한 상상력으로 넘실거리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높이 비상한다. 그녀의 스윙에 맞추어 세계가 스윙하였다. 지구 그 자체가 흔들흔들 흔들렸다.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그녀를 제외하면 찰리 파커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마약에 절어 목소리가 망가진 이후, 버브 시대의 그녀의 녹음은 그다지 열심히 듣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1950년대 들어서부터는 너무 애처롭고 무겁고 감상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자 오히려 그 시대의 레코드를 즐겨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몸과 마음이 그 음악들을 바라게 된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퇴.락.했다고도 할 수 있는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에 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왜 나를 그렇게 강하게 흡인하는 것인지?
 
 어쩌면 그것은 '용서'같은 것이 아닐까--- 최근 들어 그런 느낌이 든다.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를 듣다보면, 내가 삶을 통하여 또는 쓰는 일을 통하여 지금까지 저질러온 많은 실수와 상처를 입힌 사람들의 마음을, 그녀가 두말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부 한꺼번에 용서해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 라고 그것은 '치유'가 아니다. 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용서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너무도 개인적이다. 나는 이 느낌을 일반적으로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내가 꼽고 싶은 빌리 홀리데이의 가장 멋진 음반은 역시 콜롬비아 판이다. 굳이 그 안에서 한 곡을 들라면 주저없이 '그대가 미소지으면'을 고를 것이다. 곡 중에 들어 있는 레스터 영의 솔로도 숨이 막힐 만큼 천재적이다. 그녀는 노래한다.
 
"그대가 미소지으면, 온 세상이 그대와 함께 미소짓는다.  When you are smiling, the whole world smile with you."  그리하여 세상은 미소 짓는다. 믿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정말 싱긋 미소짓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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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Young

Lester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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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와 벤 웹스터를 밥 이전의 3대 테너 색소폰 주자라 칭하는 데는 아무런 이의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호킨스의 예리하고 수직적이며 야심적인 연주, 웹스터의 균형미있고 직접적이며 스윙적인 시심,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혼의 비상을 꿈꾼 영의 부드럽고 대담한 리듬, 그 뛰어난 음악들은 지금 들어도 결코 세월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나 개인적으로는 세 사람 중에서 레스터 영의 연주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내가 레스터 영의 연주를 처음 의식한 것은 콜롬비아사에서 발매된 빌리 홀리데이의 30년대 후반 녹음을 들은 때이다. 간주로 들어 있는 테너 색소폰이 뭐라 할 수 없이 좋았다. 정말 마음을 쏙 빼앗겼다. 함께 연주한 멤버를 살펴보니 백밴드가 카운트 베이시 악단(아니면 실질적인 그 멤버)이었고, 테너 색소폰 주자는 레스터 영이었다.
  레스터의 솔로는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다. 테너 색소폰 주자면 너나할것없이 리드가 찢어져라 불어대던 빅밴드 시절에 그는 부드럽고 자비롭게 그 악기를 불었다. 자신에게 뭐라 말을 걸듯, 자연스러운 소리를 짜맞춰 갔다. 보다 큰 틀로 리듬을 파악하고 보다 넓은 세계관을 재즈 뮤직에 도입한 것이다. 그것은 보컬 세계에서 빌리 홀리데이가 하고자 했던 일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독창성은 두 삶에게 크나큰 부담을 주었고 그들 모두 유감스럽게도 그 현실적인 중압감을 견딜 만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부인인 빌리 홀리데이와 함께한 아름답고 따스한 합작의 기록을 레스터 영의 최고 연주로 꼽고 싶은데, 그에 대해서는 이미 빌리 홀리데이 항에서 얘기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휠씬 후기의 <프레스 앤드 테디>(Ptrss and Teddy)를 그에 버금가는 한 장의 앨범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함께 공연한 테디 윌슨도 빌리 홀리데이의 반주자로 오래도록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다. 아쉽게도 버브 시대의 레스터의 연주는 고르지 못한 면이 있는데, 1956년 1월에 있었던 테디 윌슨과의 두 세션(<프레스 앤드 테디>와 (재즈 자이언츠 56>)은 모든 곡이 완벽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발라드 '루이스'에서 연주하는 레스터의 그 따뜻한 음색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을 통과하여 체온을 채 잃기 전에 주변 공간으로 살며시 퍼져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레스터 영을 이렇게 회고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연주는 훌륭하지만 그 악기라니, 정말 봐줄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었어. 싸구려 악기를 고무줄이니 풀이니 껌 같은 것으로 덕지덕지 붙여놨더라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야말로 멋졌지."
  레스터 영에 대한 에피소드 중에서 나는 이 코멘트를 가장 좋아한다.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라고 생각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2008. 8. 27. 23:54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lla Fitzgerald(1918-1996)

Ella Fitzgerald(1918-1996)


© WAGUY, Newport Blues, Acrylic on Canvas, 20 x 30 inches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할렘의 <아폴로 시어터>가 주최한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노래 솜씨를 인정받아 칙 웹 악단의 전속 가수가 되었다. 이후 기교적인 스캣 창법으로 '밥 보컬'이란 이름을 낳았고 촉촉하고 정감 넘치는 발라드로 '재즈계의 퍼스트 레이디' '빌리 홀리데이 이후 최고의 가수'라고 칭송받았다. 데카와 버브 레코드에서 수많은 명창을 남겼다.

내가 개인적으로 새기고 있는 엘라의 가창은<Ella and Louis Again>에 수록되어 있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 'These Foolish Things'이다. 이 <엘라 앤드 루이 어게인>은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신나고 스윙감각이 돋보이는 스튜디오 공연 세션(의 속편)인데, 이 노래에서는 루이가 빠지고 엘라 혼자 노래하고 있다. 열창을 끝낸 루이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물러나자 엘라가 조용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조명이 어스름해지는 그런 식이다. 프로듀서인 노면 그란츠는 이렇게 작위적인 연출에 뛰어나다. 반주는 오스카 피터슨의 쿼텟, 레귤러 트리오 멤버로 루이 벨송이 드럼을 치는데 이 반주가 또 기가 막히다. 최고급 실크처럼 노래의 결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곡도 좋거니와 가수도 좋고 반주도 멋지다.

나는 이 레코드를 대학생 시절에 처음 들었는데 그때 '재즈란 한번 심취하면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인가'하고 감탄했다. 지금도 그때의 인상은 거의 변함이 없다. 꽤 여러번 들었는데도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싫증나지 않는다.

엘라나 피터슨이나 안정되고 수준 높은 실력을 지닌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지나치게 재주를 피운다 싶은 감도 있다. 연주도 굉장하고 어디 흠잡을 데 하나 없지만 그 시점에서 완결되고 말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그늘 같은 것이 듣는 이한테 어째 좀 덜 전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이 'These Foolish Things'에 한하여 나는 그 두사람이 지닌 진지하면서도 고급한 음악성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실은 피터슨은 1952년에 역시 쿼텟을 편성하여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하는 같은 노래의 반주를 맡은 적이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그야말로 예술품이다. 엘라를 앞설망정 절대로 뒤지지는 않는다. 가슴이 터져나갈 만큼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 피터슨의 반주가 좀 어설프다. 빌리 홀리데이가 만들어내려는 '어딘가 특별한 장소'를 혈기에 찬 피터슨의 다소 말 많고 과장된 피아노가 보기좋게 망가뜨리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그 언밸런스 때문에 침통해진 마음으로 엘라의 같은 곡을 들으면 '인간한테는 과연 맞는 짝이 있는 모양'이란 느낌이 새삼스러워진다. 그 후 내가 아는 한 빌리가 피터슨과 공연한 거은 한번도 없었으니 그녀 역시 '이거 안되겠어'라고 통감했던 모양이다. 동시에 피터슨이 엘라의 반주를 맡은 것은 홀리데이 판을 녹음한 몇 년 후의 일이므로 어쩌면 그 동안 나름의 성숙과 진보가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 들어보면 엘라와 피터슨의 이곡에는 몇 군데 결정적으로 감동적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옆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이쯤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노 페이지는 언제 들어도 '아 , 좋다'란 느낌이 든다.  예술이다. 소설 같으면 두말 않고 나오키 상(일본 최고의 대중문학상)을 주고 싶은 연주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Ella and Louis Again



Louie Bellson - Drums
Herb Ellis - Guitar
Ella Fitzgerald - Vocals
Oscar Peterson - Piano
Louis Armstrong - Trumpet, Vocals
Ray Brown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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