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51

냇 킹 콜(Nat 'King'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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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 킹 콜의 노래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프리텐드'(Pretend), 투 영(Too Young) 같은 스위트하고 로맨틱한 히트송이었다. 그런 노래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당시의 최신 상품이다)에서 흘러나왔다. 1960년 전후의 일이다. 그 무렵 콜은 이미 본업인 재즈 피아노는 거의 휴업 상태였고, 현악기가 포함된 빅밴드의 반주를 배경으로 그 자랑스러운 황금의 목소리를 구사하여 캐피털 레코드를 위하여 열심히 파퓰러 송을 녹음하고 있었다. 냇 킹 콜이 노래하면 그 어떤 노래든 신기할 정도로 달콤하고, 애수를 띄었다. 예를 들어 '럼블링 로즈'(Rumbling Rose) 같은 곡조차도.

 

 '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도 그의 노래로 들은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란 소설을 썼는데, 나중에 냇 킹 콜은 '국경의 남쪽'을 부르지 않았다(적어도 레코드 녹음은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설마' 싶어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조사해 보고서야 놀랍게도 정말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틴 앨범을 몇 장이나 발표했음에도 무슨 까닭인가 '국경의 남쪽'만은 빠져 있었다.


 그러니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 결과적으로는 그 편이 오히려 낫지 않았나 싶은 기분도 든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어디에도 없는 세계의 공기를, 거기에 있다고 상정하고 들이마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LP<애프터 미드나이트>(After Midnight)가 녹음된 것은 1956년, 캐피털에서 스타 가수가 된 냇 킹콜치고는 가장 재즈적인 요소가 짙은 레코드다. 멤버가 좋다. 레귤러 리듬 섹션(물론 피아노는 콜이다)에 게스트 솔로이스트로 참가한 뮤지션이 해리 에디슨, 윌리 스미스, 팬 티졸, 스탭 스미스 등이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너무 수더분하지도 않고, 너무 튀지도 않고, 더구나 다른 사람과는 견줄 수 없는 재주를 지닌, 그야말로 좋은 시절의 프로페셔녈들의 작업이다.


 잼 세션이 아니라 한 곡마다 한 명씩 솔로를 연주한다. 일을 끝내고 재즈 바에 홀연히 들른 재즈 뮤지션이, 청중의 환호에 무대로 올라가 부담없는 마음으로 몇 곡 연주하며 '놀고 가는'그런 분위기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기획도 주도면밀하여 흥미롭다.


 그런 곡들 중에서도 내 생각에 가장 멋진 부분은, '섬타임즈 아임 해피'(Sometimes I'm Happy)에서 스탭 스미스의 연주이다. 지금까지 녹음된 재즈 바이올린 솔로 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연주 중의 하나다. '재즈 바이올린 따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들어보셨으면 한다. 스미스의 풍요로운 바이올린은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꼭꼭 깨물듯 정성스럽게, 또한 정성껏 노래하는 냇 킹 콜의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러나 윤택하고 깊이있게, 인간의 마음의 결을 노래한다. 이 곡을 들으면,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생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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