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58

아트 블래키(Art Bla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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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던 재즈를 접했다.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재즈 콘서트였다. 장소는 코베, 나는 중학생이었고 재즈가 어떤 음악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호기심이 일어 티켓을 사가지고 들으러 갔다. 당시만 해도 외국의 유명한 뮤지션이 방일하여 연주하는 일이 극히 드문 데다 평판도 자자하여, 아무튼 들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추운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프레디 하버드, 웨인 쇼터, 커티스 플러 등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 전열을 장식하고 있었다. 새 편성에 따른 모드 진행의 삼관 섹스텟(Sextet)--- 지금 생각하면 시대에 획을 긋는 더할 나위없는 라인업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전혀 몰랐다. 리듬 섹션은 블래키, 시다 월튼, 레지 워크맨. 무대 앞으로 조금 나와 노래한 가수는 자니 하트만이었다.

과연 내가 그 밤에 들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너무 어려웠다. 당시의 내가 라디오나 레코드로 들었던 음악은 주로 로큰롤에 재즈는 냇 킹 콜 정도였으니 음악의 수준이 명백하게 다르다. 그 밤의 무대에서는 '잇츠 온리 페이퍼 문'(It's Only a Paper Moon)과 '스리 블라인드 마이스'(Three Blind Mice)가 연주 되었다. 나는 이 두 곡을 알고는 있었는데,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원곡의 멜로디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멜로디가 파괴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기준과 필연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애드리브(Adlib)라는 개념이 나의 지식 상자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무언가, 나의 마음을 관통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비추는 무엇'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역시 음악 그 자체가 충실하고, 미래 지향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흑인 특유의 정열적인 느낌이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때 나를 가장 강하게 압도하였던 것은 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섯 명의 의욕적인 뮤지션들이 자아내는 톤은 그야말로 힘차고 도발적이며, 신비하고, 그리고'''''' 검.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리를 검은 색상으로 느꼈다. 물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전부 흑인이라는 시각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은 아니다. 내가 그들의 톤에서 느끼는 색이, 정말 검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새카만 것이 아니라, 초콜릿 색이 약간 섞인 깊은 검정''''''. 나는 그 색으로 완전히 물들어, 망연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콘서트 후, 블래키의 초기 레코드를 구입하여 몇 번이나 들었다. '위험한 관계 블루스'(Les Liaisons Dangereuses)가 들어 있는 레코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내 한 시대의 어떤 상황이 알알이 되살아 난다. 그 배경은 색깔 역시 검정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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