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55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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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에 스이도바시에 있는 <Swing>이란 재즈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1970년대 초엽이다. 그 찻집에서 트래디셔널 재즈만 전문적으로 틀어주었다. 비밥 이후에 탄생한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는 일절 무시하는 상당히 독특한 찻집이었다. 찰리 파커도 버드 파웰도 사양하였다.

 
 존 콜트레인과 에릭 돌피가 절대적으로 신성시되던 시대였으니 그런 찻집에 손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찻집은 충성을 맹세한 광신적인 단골 손님들로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라고 해야 할지, 음악적인 질은 상당히 높았다. 찻집 안의 오랜 골동품 스피커(좌우 크기가 달랐다)에서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타협이 없고 푸근하고 고색창연한 음악이 흘렀다. 다만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음악들은 거의 아무런 의미도 유효성도 지니지 않았다.
 
 그 찻집에서 일하는 사이에 옛 재즈를 듣는 즐거움을 기초부터 배웠다. 시드니 베쉐, 벙크 존슨, 피위 러셀, 벅 클레이튼......, 그리나 뭐니뭐니 해도 빅스 바이더벡을 만난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1920년대에 활약하였고 혼란 속에서 불과 스물여덟 살에 생애를 마친 그 전설적이고 자기 파멸적이고 술주정꾼인 백인 코넷 주자의 사운드는 순간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빅스의 음악은 그 동시대성 때문에 훌륭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음악 스타일 자체는 낡았다. 하지만 그가 빚어내는 진정으로 오리지널한 사운드와 연주는 낡아 사라지는 일이 없다. 그 음악이 찬미하는 기쁨과 슬픔은 너무도 생생하고,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촉촉함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주저없이, 아무런 가식없이 스며든다. 그것은 복고 취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빅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우선 '이 음악은 아무한테도 아첨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코넷의 울림은 기묘할 정로 자립적이고 성찰적이다. 빅스가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은 악보도 아니요 청중도 아니요, 생의 심연 속에 깃들어 있는 은밀한 음악의 심지 같은 것이다. 그의 그 같은 성실함은 시대의 따라 변하지 않았다.
 
 빅스의 위대한 재능을 알기 위해서라면 딱 두 곡만 들어도 충분하다. 'Singin' the Blues'와 'I'm Comin' Virginia'. 멋진 연주는 그 밖에도 많다. 그러나 이채로운 재능의 색소폰 주자 프랭키 트럼바우어와 함께 연주한 이 두 곡을 능가할 연주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죽음이나 세금, 혹은 밀물과 썰물처럼 명백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진실이다. 불과 3분의 연주 안에 우주가 있다.
 
 이 두 곡은 미국 콜럼비아 사의 <Bix Beiderbeck Story Vol.2>에 담겨 있다. 나는 <Swing>을 그만둘 때 이 레코드를 기념으로 받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몇 번 거듭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레코드 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Swing>역시 지금은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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