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0:16

Eric Dolphy(1928-1964)

Eric Dolphy(1928-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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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1958년 치코 해밀턴 밴드에 참가한 후 1960년부터 찰스 밍거스 그룹에 참가함과 동시에 오넷 콜맨과도 공연하였다. 그 후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였다. 존 콜트레인과도 공연하였다. 전통적인 조성의 세계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수법을 도입 찰리 파커 이후의 하드 밥과 모드나 프리등의 혁신적인 재즈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에릭 돌피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이 <Out There>란 프레스티지 사 초기의 LP가 내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음악적 내용도 뛰어나지만 그와 동시에(랄까, 그 이상으로) 오리지널 재킷의 그림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초 현실 주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살바도르 달리풍의 그림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색소폰을 부는 돌피가 공중에 떠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타고 있다. 돛은 첼로 지붕은 심벌즈, 벽으로는 호른이 튀어나와 있고 밑바닥에는 불길한 거머리처럼 플루트가 딱 달라 붙어 있다. 뱃길 뒤로는 악보가 떠다니고 언덕 위에는 등대 대신 메트로놈이 서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다. 마치 우주의 변경처럼(아니면 가물거리는 전등이 달려 있는 광처럼) 어둡다.

그림에는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기술의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한 독창적인 상상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화가의 이름조차 명기되어 있지 않다. 재킷 한 귀퉁이에 '예언자'라는 타이틀이 보일 뿐이다.  아마도 이 레코드를 위한 오리지널 그림을 의뢰 받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젊은 화가는 -당시 프레스티지 레코드는 재킷 디자인에 고액의 개런티를 지불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름도 내세우지 못하고 세월 너머로 잊혀졌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 재킷이 왠지 마음에 끌린다. 그리고 에릭 돌피하면 이 작가 불명의 '달리풍'그림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외람될 지도 모르겠지만 에릭 돌피란 사람의 시대를 앞서가는 독특함과 성실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또 다소는 미심쩍은(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악풍에 이 그림의 톤이 신기할 정도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만약 이 그림을 일류 화가가 그렸다면 또는 진짜 달리가 그린 그림이라면 나는 그다지 매료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참 모를 일이다.

또 이 재킷 뒷면에는 돌피 자신의 이런 발언도 인쇄되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새롭고 또 굉장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야말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인 이곳 뉴욕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 레코드가 녹음 된 것은 1960년 8월 전통을 강조하듯 보수적인 50년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조금 전의 일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여 오래도록 그늘에서 생활해야 했던 에릭 돌피한테도 이 무렵부터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음악적으로도 상당한 비약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는 1964년 6월 심장 발작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우리들은 모두 우주의 변경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에릭돌피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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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onious Monk

Thelonious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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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로니우스 몽크의 음악의 울림에 숙명적으로 이끌린 시기가 있었다. 몽크의 그 독특한 -- 딱딱한 얼음을 기묘한 각도로 유효하게 깎아내는 --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로 이게 재즈'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음악이 따스하게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짙은 블랙 커피와, 담배꽁초로 가득한 재털이와, 대형 JBL 스피커 유니트, 읽기 시작한 소설(예를 들면 조르주 바타이유나 윌리엄 포크너), 가을 초입의 스웨터, 그리고 도시의 한모퉁에서 감당하는 서늘한 고독 -- 그런 정경은 지금도 내 안에서 셀로니우스 몽크와 곧바로 연결된다. 멋진 정경이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은 잘 찍은 사진처럼 아름다운 균형으로 애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다.
  몽크의 음악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지적이면서도 괴팍스럽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소리들이 하나같이 옳았다. 그 음악은 우리들의 어떤 부분을 아주 강하게 설득하였다.
  그의 음악을 비유하자면, 어디선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 무언가 아주 굉장한 것을 테이블 위에 슬쩍 올려놓고 그대로 아무말없이 사라지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같다. 몽크를 주체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즉 하나의 미스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일스나 콜트레인은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하고 천재적인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수께끼의 사나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몽크의 음악이 언제부터 그 원래의 광휘를 잃게 되었는지, 수수께끼가 수수께끼이기를 그만 두었는지는 실은 나도 잘 기억하고 있지 않다. 후기의 곡 중에서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전후의 일이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몽크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희미해져 갔던 것처럼 그같은 정경의 신비성이나 균형감도 조금씩 상실되었다. 그리고 그 걷잡을 수 없는 비신화적인 시대(1970)가 도래하였다.
  나는 이 <5 by Monk by 5>란 대칭적인 제목의 LP를 신주쿠의 하나조노 신사 근처에 있는 <마루미 레코드점>에서 샀다. 수입판이라서 당시의 내 주머니 사정에 견주면 상당히 비쌌다. 내가 레드 갈랜드의 프레스티지 판을 사려고 하자, 가게 주인이 '젊은데 그렇게 시시한 것을 사다니. 이거 사다가 한번 들어보라구'라고 설교를 하기에 억지로 사고 말았다. 정말 이상한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옳았다. 이 LP는 닳아빠지도록 여러 번 들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모든 음, 소절 속에 짜내어도 짜내어도 다 짜낼 수 없을 정도의 자양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젊은 인간의 특권으로 나는 그 자양을 남김없이, 세포 깊숙이 빨아 들였다. 그 무렵에는 거리를 걸을 때에도 머릿속에서 몽크의 음악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몽크의 음악이 얼마나 멋진 지를 전하고 싶어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나는 그때, 그 또한 절실한 고독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였다. 나.쁘.지. 않.다.. 외롭지만 나쁘지 않다. 나는 그 무렵, 여러 가지 형태의 고독을 열심히 그러모으고 있었던 듯하다. 담배를 무수히 피우면서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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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Christian

Charlie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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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 크리스천 하면 일찍이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에서의 잼 세션인 <밥의 여명>으로 유명하지만, 베니 굿맨과 공연한 세션의 주요 레퍼토리를 모아놓은 세 장짜리 LP(일본에서 편집한 것이다)의 내용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하다.
  베니 굿맨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체제' 속에서, 몇 소절밖에 주어지지 않은 솔로를 연주하며 발산하는 그의 자연스러운 시심이 우리들의 귀를 사로잡고 마음에 호소한다. 벌써 50년이나 지난 옛날 녹음인데, 크리스천의 기타 솔로는 지금 들어도 고리타분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기적적으로 높은 영역에 도달해 있다. 모던이니 밥이니 스윙이니 하는 틀을 넘어 실로 지적이며 스릴이 있고, 스윙감 또한 뛰어나다.
  그러나 찰리 크리스천은 불행하게도 스물다섯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음악 경력은 아주 짧은데(정확하게 말하면 겨우 1년 8개월이다), 그가 남긴 연주는 후대의 기타리스트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크리스천의 연주를 듣다 보면, '어어 이건 바니 케슬이잖아. 이건 또 허브 엘리스고, 이건 케니 버렐인데' 하고 놀라는 일이 많다. 크리스천의 연주 속에서 후대의 기타리스트를 발견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50년대 말에 웨스 몽고메리가 옥타브 주법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 기타리스트들은 많든 적든 크리스천의 주술(그 참신하고 풍부한 아이디어와 테크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넷 콜맨 이전의 알토 섹소폰 주자들이 찰리 파커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그라드는 유성의 광휘라고 해야 할지, 이 <찰리 크리스천 메모리얼 앨범>(Charlie Christian Memorial Album)에 수록된 연주는 모두 한 번은 들어볼 가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1941년 1월 피아니스트 카운트 베이시를 맞이한 따끈따끈한 세션을 좋아한다. BG(베니 굿맨)가 이끄는 임시 편성 섹스텟의 멤버는 베이시, 쿠티 윌리암스(tp), 조지 올드(ts), 크리스천, 아티 번스타인(b), 조 존슨(ds) 등 아주 흥미로운 얼굴들 -- 당시 BG의 레귤러 캄보와 베이시의 리듬 섹션의 혼성 부대 -- 이다. 결과적으로 흑인 뮤지션의 수가 많았고 그런 만큼 음색도 검고 리듬도 끈적거린다.
  특히 심플하고 쾌활한 소절을 담고 있는 <브렉퍼스트 퓨드>(Breskfast Feud)에서 베이시와 크리스천의 솔로 응수는 매우 첨예하고 휼륭하다. 레귤러 BG 캄보에서 연주한 크리스천의 연주도 물론 들을 만하지만, 독특한 시간 감각으로 지축을 흔드는 베이시의 리듬 섹션과 , 크리스천의 솔리드한 노선의 결합은 정말이지 '뼈까지 스윙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스윙의 마그마가 끓어오른다. 재즈가 아직은 '영웅적' 이었던 시대의 귀중한 기록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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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8. 15:06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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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 사진으로 제리 멀리건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눈부심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반짝이는 금발을 짧게 깍은 키큰 청년 -- 아이비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 입고 하얀 버튼 다운 셔츠에 가느다란 검정색 니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고집스러워 보이는 모난 턱과 싱그럽고 연푸른 눈동자. 손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바리톤 색소폰이 들려 있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깔끔하고 청결하고 쿨(Cool)했다. 1960년대 초엽이었으니 제리 멀리건이 보여주는 미국적인 정서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진 별세계인 듯 느껴졌다.
  그래서 제리 멀리건 하면 나의 뇌리에는 그의 음악보다 먼저 모습(이미지)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을 받으면서 차분하게 재즈를 연주하는 영원한 청년. 그 모습에는 상처 하나, 얼룩 한 점 없었다. 그늘이라고 해봐야 그저 음악에서 풍기는 아름다운 수심뿐.......
 
 휠씬 나중에야 제리 멀리건이 실생활에서 꽤 오랜 기간 생활고와 마약과 정신적 좌절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형무소 신세를 지기도 하였고,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상처투성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재즈라는 음악이 그 유례없는 활력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문화의 '언더그라운드'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시대였다. 하지만 사진이나 음악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리들이 제리 멀리건의 음악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섬세하고 내성적인 혼의 숨결이다. 음악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등줄기를 꼿꼿하게 편 고결함이다. 같은 바리톤 색소폰 주자이면서도, 페퍼 아담스가 빚어내는 톡톡 끊어지는 상큼한 톤에 비하면 멀리건의 톤은 포용력이 있고 부드럽다. 때로 너무 진지한 측면도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설득력이 있다.
 
 내가 제리 멀리건의 실제 연주를 들은 것은 1980년대 후반, 그가 빅밴드를 이끌고 마다라오 고원에서 개최된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다. 자기 자신의 빅밴드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편곡자 출신인 그로서는 오랜 꿈이었다. 경영적인 면에서는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꿈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그는 사뭇 행복해 보였다. 한여름의 야외 콘서트장에서, 이미 젊지 않은 제리 멀리건은 그의 절반 나이밖에 되지 않는 젊은 뮤지션들을 마치 자신의 악기라도 되듯 섬세하게 다루었다.
 
  제리 멀리건이 남긴 앨범은 거의 군더더기가 없다. 유독 지치고 힘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면 나는 싱글 몰트를 조그만 잔에 따라, 이 <왓 이즈 데어 투 세이>(What is There to Say)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싶다. 아트 파머의 솜사탕 같은 트럼펫과 제리 멀리건의 깊은 밤처럼 부드러운 바리톤 색소폰의 사운드가 우리들의 혼을 웅덩이 같은 장소로 인도한다. 상처입은 혼만이 알고 있는, 그 은밀한 장소로.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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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8. 15:04

베니 굿맨(Benny Go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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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한테는 보수적이고 장사꾼 기질이 농후한 뮤지션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지만, 백인 뮤지션은 흑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주하지 않는다는 그때까지의 암묵적인 룰을 과감히 타파한 것이 실은 이 사람이다.  그는 비브라폰 주자 라이오넬 햄프턴을 기용하고 피아노에 테디 윌슨, 그리고 기타에 찰리 크리스천을 발탁하였다. 그 일로 주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굿맨은 뭐니뭐니 해도 그만큼 음악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악기에서 나오는소리만 훌륭하면, 그리고 그 소리가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는 반인반마라도 자신의 일에 가담시켰을 것이다. 베니 굿맨한테는 피부색보다 그 시대의 뛰어난 뮤지션을 기용하여 분위기를 쇄신하며서, 자신의 악단을 항상 자극적이고 첨단의 존재로 유지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먼 훗날 주트 심스와 필 우즈처럼 철저한 모더니스트를 멤버에 가담시켰을 때는 수완 좋은 그도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하여 일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옥.신.각.신 시.끄.러.웠.던. 사건의 전말은 베이시스인 빌 크로우가 쓴 <안녕 버드랜드>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절충적인 뒤죽박죽 밴드도 레코드에 한해서는 꽤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주므로, 굿맨의 의도가 전혀 빗나갔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베니 굿맨 하면 역시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된 무수한 병반이 우리들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이 황금 시대에 녹음된 굿맨의 연주는 한마디로 무엇이든 다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젊은 재주꾼 에디 소터(이때 겨우 20대 중반이었다)가 굿맨을 위해 쓴 어렌지먼트를 연주한 레코드에는 일종의 독특한 참신함이 있으며, 종래의 '스윙의 황제' 노선과는 다른 풋풋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즉 굿맨의 달콤하고 녹작지근한 자질과
소터의 다소 딱딱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융화되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오락성 풍부한 음악을 창조해낸 것이다.
 
 굿맨도 소터의 의욕적인 편곡에 자극을 받았으리라. 예를 들면 <문 라이트 온 더 갠지즈>(Moon light on the ganges)에서 굿맨의 클라리넷 솔로는 상당히 첨예하고 모던한 색채를 띠고 있으며, 거기에는 '그저 달콤한 오락적인 재즈'라고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기백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굿맨 역시 아직은 젊었고 그 나름대로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열기로 넘쳤던 저 유명한 <카네기 홀>에서의 라이브 연주도 멋지지만 듣다보면 싫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에는 이 앨범 를 들으면 좋다. 에디 소터가 편곡하여 베니 굿맨이 연주한 곡들은 유감스럽게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겠지만) 대중적인 호응은 얻지 못했지만 훗날 소터는 스탄 겟츠와 함께 조형미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포커스>(Focus)라는 탁월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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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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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암스트롱은 열세 살 때 사소한 장난질 때문에 경찰에 붙잡혀, 뉴올리언즈에 있는 '소년원'에 수용되었다. 소년원 생활은 엄격하고 힘들었지만 악기와의 만남이 그의 고독을 구원해 주었다. 그 이후 루이에게 음악이란 마치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 되었다.

 루이가 소년원 밴드에 들어가 맨 처음 손에 든 악기는 탬버린이었다. 그리고 탬버린은 마침내 드럼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에는 나팔이 되었다. 기상, 식사, 소등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 소년이 사정이 있어 소년원을 나가게 된 덕분에 루이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엉겁결에 나팔부는 방법을 배우고, 대역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 신기한 변화 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가 매일 아침 나팔을 불면서부터 모두들 즐거운 기분으로 눈을 뜨고, 또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째서일가? 그 까닭은 루이가 부는 나팔 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매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일화--스탯 터클이 《자이언츠 오브 재즈》(Giants of Jazz)란 책 속에서 소개한--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 하나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편안함, 자연스러움, 매끄러움--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마는 기적적인 '매직 터치'

 우리들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들으면서 늘 변함없이 '이 남자는 정말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느낌은 놀랄만큼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존경하면서도 무대에서 백인 청중을 향하여 이를 드러내고 싱긋싱긋 웃는 그의 연예인 근성을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하지만 나는 루이는 정말로 즐겁고 신이 나서 웃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자기가 이렇게 살아서 음악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귀기울인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여, 체면이니 염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싱긋싱긋 이를 드러내고 웃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즈 마칭 밴드와 함께 성장한 거의 마지막 뮤지션이었다. 그것은 장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그리고 장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의 한없는 환희를 복돋우기 위한 실용적인 음악이었다. 루이의 음악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음악이 가닿는 것이었다.

  트럼펫 주자는 자기 악기를 흔히 '챠퍼'(Chopper)라고 한다. 이는 고기를 자르는 부엌칼을 말한다. 1928년에 녹음된 <웨스트 엔드 블루스>(West End Blues)의 단호하고 굵직한 연주에 귀기울여 보라. 그가 얼마나 강인한 챠퍼를 쥐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으로 하여 그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도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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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블래키(Art Bla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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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던 재즈를 접했다.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재즈 콘서트였다. 장소는 코베, 나는 중학생이었고 재즈가 어떤 음악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호기심이 일어 티켓을 사가지고 들으러 갔다. 당시만 해도 외국의 유명한 뮤지션이 방일하여 연주하는 일이 극히 드문 데다 평판도 자자하여, 아무튼 들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추운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프레디 하버드, 웨인 쇼터, 커티스 플러 등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 전열을 장식하고 있었다. 새 편성에 따른 모드 진행의 삼관 섹스텟(Sextet)--- 지금 생각하면 시대에 획을 긋는 더할 나위없는 라인업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전혀 몰랐다. 리듬 섹션은 블래키, 시다 월튼, 레지 워크맨. 무대 앞으로 조금 나와 노래한 가수는 자니 하트만이었다.

과연 내가 그 밤에 들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너무 어려웠다. 당시의 내가 라디오나 레코드로 들었던 음악은 주로 로큰롤에 재즈는 냇 킹 콜 정도였으니 음악의 수준이 명백하게 다르다. 그 밤의 무대에서는 '잇츠 온리 페이퍼 문'(It's Only a Paper Moon)과 '스리 블라인드 마이스'(Three Blind Mice)가 연주 되었다. 나는 이 두 곡을 알고는 있었는데,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원곡의 멜로디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멜로디가 파괴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기준과 필연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애드리브(Adlib)라는 개념이 나의 지식 상자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무언가, 나의 마음을 관통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비추는 무엇'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역시 음악 그 자체가 충실하고, 미래 지향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흑인 특유의 정열적인 느낌이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때 나를 가장 강하게 압도하였던 것은 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섯 명의 의욕적인 뮤지션들이 자아내는 톤은 그야말로 힘차고 도발적이며, 신비하고, 그리고'''''' 검.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리를 검은 색상으로 느꼈다. 물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전부 흑인이라는 시각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은 아니다. 내가 그들의 톤에서 느끼는 색이, 정말 검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새카만 것이 아니라, 초콜릿 색이 약간 섞인 깊은 검정''''''. 나는 그 색으로 완전히 물들어, 망연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콘서트 후, 블래키의 초기 레코드를 구입하여 몇 번이나 들었다. '위험한 관계 블루스'(Les Liaisons Dangereuses)가 들어 있는 레코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내 한 시대의 어떤 상황이 알알이 되살아 난다. 그 배경은 색깔 역시 검정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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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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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에 스이도바시에 있는 <Swing>이란 재즈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1970년대 초엽이다. 그 찻집에서 트래디셔널 재즈만 전문적으로 틀어주었다. 비밥 이후에 탄생한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는 일절 무시하는 상당히 독특한 찻집이었다. 찰리 파커도 버드 파웰도 사양하였다.

 
 존 콜트레인과 에릭 돌피가 절대적으로 신성시되던 시대였으니 그런 찻집에 손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찻집은 충성을 맹세한 광신적인 단골 손님들로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라고 해야 할지, 음악적인 질은 상당히 높았다. 찻집 안의 오랜 골동품 스피커(좌우 크기가 달랐다)에서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타협이 없고 푸근하고 고색창연한 음악이 흘렀다. 다만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음악들은 거의 아무런 의미도 유효성도 지니지 않았다.
 
 그 찻집에서 일하는 사이에 옛 재즈를 듣는 즐거움을 기초부터 배웠다. 시드니 베쉐, 벙크 존슨, 피위 러셀, 벅 클레이튼......, 그리나 뭐니뭐니 해도 빅스 바이더벡을 만난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1920년대에 활약하였고 혼란 속에서 불과 스물여덟 살에 생애를 마친 그 전설적이고 자기 파멸적이고 술주정꾼인 백인 코넷 주자의 사운드는 순간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빅스의 음악은 그 동시대성 때문에 훌륭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음악 스타일 자체는 낡았다. 하지만 그가 빚어내는 진정으로 오리지널한 사운드와 연주는 낡아 사라지는 일이 없다. 그 음악이 찬미하는 기쁨과 슬픔은 너무도 생생하고,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촉촉함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주저없이, 아무런 가식없이 스며든다. 그것은 복고 취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빅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우선 '이 음악은 아무한테도 아첨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코넷의 울림은 기묘할 정로 자립적이고 성찰적이다. 빅스가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은 악보도 아니요 청중도 아니요, 생의 심연 속에 깃들어 있는 은밀한 음악의 심지 같은 것이다. 그의 그 같은 성실함은 시대의 따라 변하지 않았다.
 
 빅스의 위대한 재능을 알기 위해서라면 딱 두 곡만 들어도 충분하다. 'Singin' the Blues'와 'I'm Comin' Virginia'. 멋진 연주는 그 밖에도 많다. 그러나 이채로운 재능의 색소폰 주자 프랭키 트럼바우어와 함께 연주한 이 두 곡을 능가할 연주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죽음이나 세금, 혹은 밀물과 썰물처럼 명백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진실이다. 불과 3분의 연주 안에 우주가 있다.
 
 이 두 곡은 미국 콜럼비아 사의 <Bix Beiderbeck Story Vol.2>에 담겨 있다. 나는 <Swing>을 그만둘 때 이 레코드를 기념으로 받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몇 번 거듭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레코드 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Swing>역시 지금은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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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 킹 콜(Nat 'King'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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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 킹 콜의 노래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프리텐드'(Pretend), 투 영(Too Young) 같은 스위트하고 로맨틱한 히트송이었다. 그런 노래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당시의 최신 상품이다)에서 흘러나왔다. 1960년 전후의 일이다. 그 무렵 콜은 이미 본업인 재즈 피아노는 거의 휴업 상태였고, 현악기가 포함된 빅밴드의 반주를 배경으로 그 자랑스러운 황금의 목소리를 구사하여 캐피털 레코드를 위하여 열심히 파퓰러 송을 녹음하고 있었다. 냇 킹 콜이 노래하면 그 어떤 노래든 신기할 정도로 달콤하고, 애수를 띄었다. 예를 들어 '럼블링 로즈'(Rumbling Rose) 같은 곡조차도.

 

 '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도 그의 노래로 들은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란 소설을 썼는데, 나중에 냇 킹 콜은 '국경의 남쪽'을 부르지 않았다(적어도 레코드 녹음은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설마' 싶어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조사해 보고서야 놀랍게도 정말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틴 앨범을 몇 장이나 발표했음에도 무슨 까닭인가 '국경의 남쪽'만은 빠져 있었다.


 그러니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 결과적으로는 그 편이 오히려 낫지 않았나 싶은 기분도 든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어디에도 없는 세계의 공기를, 거기에 있다고 상정하고 들이마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LP<애프터 미드나이트>(After Midnight)가 녹음된 것은 1956년, 캐피털에서 스타 가수가 된 냇 킹콜치고는 가장 재즈적인 요소가 짙은 레코드다. 멤버가 좋다. 레귤러 리듬 섹션(물론 피아노는 콜이다)에 게스트 솔로이스트로 참가한 뮤지션이 해리 에디슨, 윌리 스미스, 팬 티졸, 스탭 스미스 등이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너무 수더분하지도 않고, 너무 튀지도 않고, 더구나 다른 사람과는 견줄 수 없는 재주를 지닌, 그야말로 좋은 시절의 프로페셔녈들의 작업이다.


 잼 세션이 아니라 한 곡마다 한 명씩 솔로를 연주한다. 일을 끝내고 재즈 바에 홀연히 들른 재즈 뮤지션이, 청중의 환호에 무대로 올라가 부담없는 마음으로 몇 곡 연주하며 '놀고 가는'그런 분위기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기획도 주도면밀하여 흥미롭다.


 그런 곡들 중에서도 내 생각에 가장 멋진 부분은, '섬타임즈 아임 해피'(Sometimes I'm Happy)에서 스탭 스미스의 연주이다. 지금까지 녹음된 재즈 바이올린 솔로 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연주 중의 하나다. '재즈 바이올린 따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들어보셨으면 한다. 스미스의 풍요로운 바이올린은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꼭꼭 깨물듯 정성스럽게, 또한 정성껏 노래하는 냇 킹 콜의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러나 윤택하고 깊이있게, 인간의 마음의 결을 노래한다. 이 곡을 들으면,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생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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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 Ell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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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GUY, "Duke" Ellington, Acrylic on Canvas, 16 x 20 inches 

  천재라는 사람들은 흔히 성미가 급하고 단명한다고들 하는데, 듀크 엘링턴은 그 재기에 넘치는 인생을 실로 우아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자신의 위상을 지키며 살았다. 정말 끝까지 멋들어지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적적일 만큼 풍부한 음악적 수맥은, 드넓은 들판의 구석구석을, 하나 남김없이 촉촉하게 적셨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이 재즈 역사에서는 경하할 일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거대한 인물이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활약하다 보면 골치 아픈 일도 따른다. 멋진 곡은 수도 없이 많고, 멋진 연주도 많이 남는다. 아니 멋진 곡이 너무 많다. 듀크 엘링턴이 남긴 방대한 레코드 중에서 어느 한 장을 고르려 할때, 우리들은 마치 만리장성 앞에 선 야만족처럼, 압도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감히 용기를 내어 한정하자면,
  1) 내가 좋아하는 엘링턴은 1939년 후반에서 40년대 전반에 걸쳐, 그렇게 '난해'하지도 않고 그렇게 와일드하지도 않은, 재미있고 세련된 엘링턴이다. 특히 지미 브랜튼과 함께 활동한 시대를 전후한 연주가 좋다.
  2) 그 중에서도 더 범위를 좁히면, 가장 좋아하는 LP는 RCA에서 나온 이다.
  3) 그것을 좀더 개인적으로 한정하면 B면을 좋아한다. 아무튼 이 레코드는 몇 번 들어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싫증나지 않는다. 물론 밴드 멤버도 불평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호지스, 웹스터, 쿠티, 비가드, 카네이....... 그야말로 엘링턴 악단의 황금시대다. 그 이상 뭘 요구할 것인가?
 
  LP 에는 유명한 표제곡 외에, '올 투 순' '침대 속의 돌' 같은, 내가 애호하는 수더분한 곡도 들어 있다. '솔리튜드'(Solitude), '새턴 돌'(Satin Doll) 등, 엘링턴이 작곡한 유명한 곡은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좋다. 그러나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곡 중에도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감동케 하는 명품이 얼마든지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비밀스런 명곡을 자신의 귀로 하나하나 발견하는 것도 엘링턴의 음악의 숲 -- 엄청나게 거대한 숲이다 -- 을 헤치고 들어가는 커다란 기쁨 중에 하나이다.
  '침대 속의 돌'에서 아이비 앤더슨의 노래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신기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그런데다 근원적으로 블루시한 그녀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공예품 같은 버니 비가드의 클라리넷 솔로와 얽혀드는 부분이 되면 그 조화의 묘가 정점에 달한다. 거기에는 듣는 이의 비위를 맞추는 아첨이 없다. 우리들이 느끼는 것은 진정 뛰어난 음악이 불현듯 내 몸에 다가왔을 때, 어디에선가 조용히 샘솟는 깊은 공감과 넉넉한 자비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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