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5:06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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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 사진으로 제리 멀리건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눈부심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반짝이는 금발을 짧게 깍은 키큰 청년 -- 아이비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 입고 하얀 버튼 다운 셔츠에 가느다란 검정색 니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고집스러워 보이는 모난 턱과 싱그럽고 연푸른 눈동자. 손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바리톤 색소폰이 들려 있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깔끔하고 청결하고 쿨(Cool)했다. 1960년대 초엽이었으니 제리 멀리건이 보여주는 미국적인 정서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진 별세계인 듯 느껴졌다.
  그래서 제리 멀리건 하면 나의 뇌리에는 그의 음악보다 먼저 모습(이미지)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을 받으면서 차분하게 재즈를 연주하는 영원한 청년. 그 모습에는 상처 하나, 얼룩 한 점 없었다. 그늘이라고 해봐야 그저 음악에서 풍기는 아름다운 수심뿐.......
 
 휠씬 나중에야 제리 멀리건이 실생활에서 꽤 오랜 기간 생활고와 마약과 정신적 좌절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형무소 신세를 지기도 하였고,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상처투성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재즈라는 음악이 그 유례없는 활력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문화의 '언더그라운드'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시대였다. 하지만 사진이나 음악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리들이 제리 멀리건의 음악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섬세하고 내성적인 혼의 숨결이다. 음악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등줄기를 꼿꼿하게 편 고결함이다. 같은 바리톤 색소폰 주자이면서도, 페퍼 아담스가 빚어내는 톡톡 끊어지는 상큼한 톤에 비하면 멀리건의 톤은 포용력이 있고 부드럽다. 때로 너무 진지한 측면도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설득력이 있다.
 
 내가 제리 멀리건의 실제 연주를 들은 것은 1980년대 후반, 그가 빅밴드를 이끌고 마다라오 고원에서 개최된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다. 자기 자신의 빅밴드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편곡자 출신인 그로서는 오랜 꿈이었다. 경영적인 면에서는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꿈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그는 사뭇 행복해 보였다. 한여름의 야외 콘서트장에서, 이미 젊지 않은 제리 멀리건은 그의 절반 나이밖에 되지 않는 젊은 뮤지션들을 마치 자신의 악기라도 되듯 섬세하게 다루었다.
 
  제리 멀리건이 남긴 앨범은 거의 군더더기가 없다. 유독 지치고 힘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면 나는 싱글 몰트를 조그만 잔에 따라, 이 <왓 이즈 데어 투 세이>(What is There to Say)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싶다. 아트 파머의 솜사탕 같은 트럼펫과 제리 멀리건의 깊은 밤처럼 부드러운 바리톤 색소폰의 사운드가 우리들의 혼을 웅덩이 같은 장소로 인도한다. 상처입은 혼만이 알고 있는, 그 은밀한 장소로.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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