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26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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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GUY, Miles Davis, 1947, Oil on Canvas, 48 x 36 inches
 

그 어떤 인생에도  '잃어버린 하루'는 있다. '오늘을 경계로 자신 속의 무언가가 변해버리리라. 그리고 아마도 두 번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마음으로 느끼는 날 말이다.
  그 날은, 오래도록 거리를 걸어다녔다.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늘 다니던 친숙한 거리가 낯선 거리처럼 보였다.

  사방이 완전히 캄캄해진 후에야 어디 들어가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위스키 온 록을 마시고 싶었다. 조금 더 걷다가 재즈 바 비슷한 술집이 있길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와 테이블이 세 개쯤 있는 길쭉하고 협소한 가게였다. 손님은 없었다.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아 버번 위스키 더블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자신 속의 무언가가 변해버리리라. 그리고 두 번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위스키를 마시면서 그렇게 생각하였다.

  "듣고 싶은 곡이 있습니까?"
  잠시 후 젊은 바텐더가 내 앞에 와 물었다.
  얼굴을 들고, 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듣고 싶은 음악?  그리고 보니 정말 음악이라도 듣고 싶은 기분인 듯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단 말인가?  나는 당황하였다. 잠시 생각한 후 <포 앤드 모어>('Four'&More)라고 대답하였다. 그 레코드의 거뭇거뭇하고 음울한 재킷이, 맨 처음 --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텐더는 레코드 장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눈앞에 놓인 술잔과, 그 안의 얼음을 바라보면서, <포 앤드 모어>의 A면을 들었다. 그 음악은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음악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내가 들어 마땅한 곡은  <포 앤드 모어> 외에는 없지 않았을까 하고.

  <포 앤드 모어> 중에서 마일스의 연주는 깊고 통렬하다. 그가 설정한 템포는 어이없을 정도로 빨라 거의 시비조라 해도 좋을 정도다. 토니 월리엄스가 새기는 하얀 초승달처럼 예리한 리듬을 배경으로, 마일스는 눈에 띄는 모든 공간에그 마술의 쐐기를 박아넣는다. 그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추구되어야할 공감도 없고, 제공되어야할 치유도 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순순한 의미의 '행위'가 있을 뿐이다.
  'Walkin'을 들으면서(그것은 마일스가 녹음한 곡 중에서 가장 무겁고 공격적인 'Walkin'이다), 내 몸이 지금 아무런 아픔도 느끼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적어도 한동안, 마일스가 뭐에 홀린 것처럼 무언가를 짓찧고 있는 동안, 나는 무감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하였다.  꽤 오래 전 얘기지만.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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