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2:51

Charles Mingus

Charles Min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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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2학년 때, 신주쿠 가부키초에 있는 별 신통치 않은 레스토랑에서 철야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밤 열 시에서 새벽 다섯 시까지, 환기도 잘 안되는 실내에서 일을 하다가 마지막 전철을 놓친 술주정뱅이와 함께 첫 전철을 타고 미타카에 있는 자취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초가을에 시작하여 초봄까지 일했다. 그래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늘 겨울 풍경이 떠오른다. 그 겨울은 춥고 고독하였으며, 신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 레스토랑 근처에 란 이름의 조그만 재즈 카페가 있었다. '직립 원인'. 물론 찰스 밍거스의 앨범 타이틀에서 따온 이름이다. 재즈 팬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긴 이름을 다 기억할리 없다. 그 카페는 비교적 밤늦게까지 문이 열려 있어서, 틈이 나면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재즈를 들었다. 1970년대 전후의 신주쿠는 그 거리 특유의 활기로 가득했다. 그것은 난잡하고 폭력적이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진취적인 활기였다. 자기 주변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가슴 설레는 공기가 충만했다.
  그 재즈 카페에서 찰스 밍거스의 <직립 원인> 레코드를 실제로 틀어주었는데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LP <직립 원인>을 들을 때마다 그 카페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 시절 신주쿠 가부키초의 풍경이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계절은 겨울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LP <직립 원인>을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때 곡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고 별다른 흥분도 느끼지 못했다. '대체 이게 뭐야?' 하고 당황했을 뿐이었다. 특히 '포기 데이'(A Foggy Day)란 곡의 집요하고 시끌시끌한 유머 감각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레코드가 알게 모르게 나의 마음을 파먹을 들어갔다. 이전에는 그저 깔끔하지 못한 소리, 또는 엉터리 같은 진행으로  들렸었는데 점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만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어떤 연주가자 연주하는 '포기 데이'를 들으면  반드시 밍거스 판의 '포기 데이'가 하나의 규범적인 형상으로 내 머리에 떠오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밍거스가 '포기 데이'란 곡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레스터 영은 옛날에 '그 곡을 불 때는 가사를 전부 외워서 노래하면서 불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노래가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다고, 하지만 밍거스가 그 곡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은 이를테면 레스터 영적 세계관의 완전한 전복이다. 밍거스가 제시하는 것은 원래의 '포기 데이'가 아니라 뒤바뀐 '포기 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밍거스가 연주하는 '포기 데이'는  레스터 영이 노래하는 노래와 똑같은 맥락에서 따스하고 시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와닿는다. 눈물도 피도 있다. 밍거스의 음악을 통하여 뒤바뀐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신인지도 모를 일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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