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26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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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GUY, Miles Davis, 1947, Oil on Canvas, 48 x 36 inches
 

그 어떤 인생에도  '잃어버린 하루'는 있다. '오늘을 경계로 자신 속의 무언가가 변해버리리라. 그리고 아마도 두 번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마음으로 느끼는 날 말이다.
  그 날은, 오래도록 거리를 걸어다녔다.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늘 다니던 친숙한 거리가 낯선 거리처럼 보였다.

  사방이 완전히 캄캄해진 후에야 어디 들어가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위스키 온 록을 마시고 싶었다. 조금 더 걷다가 재즈 바 비슷한 술집이 있길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와 테이블이 세 개쯤 있는 길쭉하고 협소한 가게였다. 손님은 없었다.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아 버번 위스키 더블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자신 속의 무언가가 변해버리리라. 그리고 두 번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위스키를 마시면서 그렇게 생각하였다.

  "듣고 싶은 곡이 있습니까?"
  잠시 후 젊은 바텐더가 내 앞에 와 물었다.
  얼굴을 들고, 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듣고 싶은 음악?  그리고 보니 정말 음악이라도 듣고 싶은 기분인 듯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단 말인가?  나는 당황하였다. 잠시 생각한 후 <포 앤드 모어>('Four'&More)라고 대답하였다. 그 레코드의 거뭇거뭇하고 음울한 재킷이, 맨 처음 --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텐더는 레코드 장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눈앞에 놓인 술잔과, 그 안의 얼음을 바라보면서, <포 앤드 모어>의 A면을 들었다. 그 음악은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음악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내가 들어 마땅한 곡은  <포 앤드 모어> 외에는 없지 않았을까 하고.

  <포 앤드 모어> 중에서 마일스의 연주는 깊고 통렬하다. 그가 설정한 템포는 어이없을 정도로 빨라 거의 시비조라 해도 좋을 정도다. 토니 월리엄스가 새기는 하얀 초승달처럼 예리한 리듬을 배경으로, 마일스는 눈에 띄는 모든 공간에그 마술의 쐐기를 박아넣는다. 그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추구되어야할 공감도 없고, 제공되어야할 치유도 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순순한 의미의 '행위'가 있을 뿐이다.
  'Walkin'을 들으면서(그것은 마일스가 녹음한 곡 중에서 가장 무겁고 공격적인 'Walkin'이다), 내 몸이 지금 아무런 아픔도 느끼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적어도 한동안, 마일스가 뭐에 홀린 것처럼 무언가를 짓찧고 있는 동안, 나는 무감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하였다.  꽤 오래 전 얘기지만.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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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8. 14:22

Billie Hol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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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다. 그 나름으로  감동도 하였다.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얼마나 멋진 가수인가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휠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한 그녀의 음반을 즐겨 들었다. 그녀가 아직 젊고 싱그러운 목소리로 열심히 노래한 시대의 노래들이다. 나중에 미국의 콜럼비아 레코드 사는 그 대부분을 재녹음하여 음반을 내놓았다. 그 음반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충만한 상상력으로 넘실거리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높이 비상한다. 그녀의 스윙에 맞추어 세계가 스윙하였다. 지구 그 자체가 흔들흔들 흔들렸다.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그녀를 제외하면 찰리 파커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마약에 절어 목소리가 망가진 이후, 버브 시대의 그녀의 녹음은 그다지 열심히 듣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1950년대 들어서부터는 너무 애처롭고 무겁고 감상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자 오히려 그 시대의 레코드를 즐겨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몸과 마음이 그 음악들을 바라게 된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퇴.락.했다고도 할 수 있는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에 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왜 나를 그렇게 강하게 흡인하는 것인지?
 
 어쩌면 그것은 '용서'같은 것이 아닐까--- 최근 들어 그런 느낌이 든다.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를 듣다보면, 내가 삶을 통하여 또는 쓰는 일을 통하여 지금까지 저질러온 많은 실수와 상처를 입힌 사람들의 마음을, 그녀가 두말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부 한꺼번에 용서해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 라고 그것은 '치유'가 아니다. 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용서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너무도 개인적이다. 나는 이 느낌을 일반적으로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내가 꼽고 싶은 빌리 홀리데이의 가장 멋진 음반은 역시 콜롬비아 판이다. 굳이 그 안에서 한 곡을 들라면 주저없이 '그대가 미소지으면'을 고를 것이다. 곡 중에 들어 있는 레스터 영의 솔로도 숨이 막힐 만큼 천재적이다. 그녀는 노래한다.
 
"그대가 미소지으면, 온 세상이 그대와 함께 미소짓는다.  When you are smiling, the whole world smile with you."  그리하여 세상은 미소 짓는다. 믿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정말 싱긋 미소짓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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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8. 14:18

Lester Young

Lester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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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와 벤 웹스터를 밥 이전의 3대 테너 색소폰 주자라 칭하는 데는 아무런 이의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호킨스의 예리하고 수직적이며 야심적인 연주, 웹스터의 균형미있고 직접적이며 스윙적인 시심,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혼의 비상을 꿈꾼 영의 부드럽고 대담한 리듬, 그 뛰어난 음악들은 지금 들어도 결코 세월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나 개인적으로는 세 사람 중에서 레스터 영의 연주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내가 레스터 영의 연주를 처음 의식한 것은 콜롬비아사에서 발매된 빌리 홀리데이의 30년대 후반 녹음을 들은 때이다. 간주로 들어 있는 테너 색소폰이 뭐라 할 수 없이 좋았다. 정말 마음을 쏙 빼앗겼다. 함께 연주한 멤버를 살펴보니 백밴드가 카운트 베이시 악단(아니면 실질적인 그 멤버)이었고, 테너 색소폰 주자는 레스터 영이었다.
  레스터의 솔로는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다. 테너 색소폰 주자면 너나할것없이 리드가 찢어져라 불어대던 빅밴드 시절에 그는 부드럽고 자비롭게 그 악기를 불었다. 자신에게 뭐라 말을 걸듯, 자연스러운 소리를 짜맞춰 갔다. 보다 큰 틀로 리듬을 파악하고 보다 넓은 세계관을 재즈 뮤직에 도입한 것이다. 그것은 보컬 세계에서 빌리 홀리데이가 하고자 했던 일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독창성은 두 삶에게 크나큰 부담을 주었고 그들 모두 유감스럽게도 그 현실적인 중압감을 견딜 만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부인인 빌리 홀리데이와 함께한 아름답고 따스한 합작의 기록을 레스터 영의 최고 연주로 꼽고 싶은데, 그에 대해서는 이미 빌리 홀리데이 항에서 얘기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휠씬 후기의 <프레스 앤드 테디>(Ptrss and Teddy)를 그에 버금가는 한 장의 앨범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함께 공연한 테디 윌슨도 빌리 홀리데이의 반주자로 오래도록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다. 아쉽게도 버브 시대의 레스터의 연주는 고르지 못한 면이 있는데, 1956년 1월에 있었던 테디 윌슨과의 두 세션(<프레스 앤드 테디>와 (재즈 자이언츠 56>)은 모든 곡이 완벽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발라드 '루이스'에서 연주하는 레스터의 그 따뜻한 음색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을 통과하여 체온을 채 잃기 전에 주변 공간으로 살며시 퍼져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레스터 영을 이렇게 회고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연주는 훌륭하지만 그 악기라니, 정말 봐줄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었어. 싸구려 악기를 고무줄이니 풀이니 껌 같은 것으로 덕지덕지 붙여놨더라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야말로 멋졌지."
  레스터 영에 대한 에피소드 중에서 나는 이 코멘트를 가장 좋아한다.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라고 생각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2008. 8. 28. 14:13

빌 에반스(Bill 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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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가 지닌 자질 중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 피아노 트리오란 포맷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은 세인의 공통된 의견이다. 범위를 좀더 한정한다면, 스코트 라파로가 베이스를 연주한 피아노 트리오가 될 것이다. 앨범으로 하면 <포트레이트 인 재즈>(Portrait in Jazz),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선데이 앳 빌리지 뱅가드>(Sunday at Village vanguard), <익스플로레이션>(Exploration). 이렇게 네장이다. 이런 앨범을 녹음하고 제작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리버 사이드라는 레코드 회사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 앨범들 속에서 에반스의 연주는 너무나 훌륭하다. 우리들은 인간의 자아가 (그것도 상당한 문제를 껴안고 있는 자아가) 재능이란 여과 장치를 통과하면서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땅으로 톡톡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그 복잡하고 정교하며 치밀한 여과 장치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또 그 내향성을 상대화하고 활성화하고 있는 것이 스코트 라파로의 봄날처럼 싱그럽고 숲처럼 깊은 베이스 연주다.

 

 그 신선한 숨결은 우리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세속적인 영역을 소리없이 해제하고 그 깊은 곳에 잠겨 있는 혼을 일깨운다. 이 시점에서 에반스 없는 라파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라파로 없는 에반스 또한 존재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기적적인 해후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에반스를 정의하는 기본적인 틀이었던 밥 이디엄이 실로 어이없이 해체되고, 새로운 지평선이 그 앞에 -- 그리고 우리들 앞에 -- 출현한다. 낡은 옷을 벗고 우리들은 해방된다. 우리들의 피부는 새로운 색을 획득하고 우리들의 의식은 새로운 세포를 획득한다. 거기에는 불합리할 정도로 뜨거운 열의 발산이 있다. 세계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세계를 날카롭게 도려내는 마음이 있다.  
 
 스코트 라파로의 너무 이른 죽음(1961)으로 두 사람의 그 멋진 인터 플레이는 유감스럽게도 몇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에반스의 완벽주의로 인하여 결국 남겨진 녹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라파로가 죽은 후, 에반스는 레귤러 베이시스트를 몇 명 맞이하였지만 라파로와 함께 빚어냈던 자발적인 독창성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물론 에반스는 그 후에도 몇몇 탁월한 연주를 남겼지만, 라파로 이후 '자아의 상대화'를 통한 보다 새로운 지평을 재즈 팬 앞에 제시하지는 못했다. 섬세하고 내향적인 자질은 변함없이 유지되었지만, 과거 그의 음악을 뜨겁게 해주었던 열의 발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잃어버린 단 한 번의 숙명적인 사랑처럼.
 
 앨범 <왈츠 포 데비>는 CD말고, 옛날처럼 몸을 사용하여 LP로 듣는 것이 좋다. 이 앨범은 한면에 세 곡이 들어 있는데, 한 면이 끝나면 일단 바늘을 들고 물리적으로 한숨을 돌려야 비로소 본래의 <왈츠 포 데비>라는 작품이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모든 트랙이 다 멋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마이 풀리시 하트'(My Foolish Heart). 달콤한 곡이다. 이렇게까지 몸에 파고들면 더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Bill Evans
Waltz for Debby


Date of Release Jun 25, 1961 (recording) inprint

Bill Evans - Piano
Scott LaFaro - Bass
Paul Motian - Drums
2008. 8. 27. 23:54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lla Fitzgerald(1918-1996)

Ella Fitzgerald(1918-1996)


© WAGUY, Newport Blues, Acrylic on Canvas, 20 x 30 inches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할렘의 <아폴로 시어터>가 주최한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노래 솜씨를 인정받아 칙 웹 악단의 전속 가수가 되었다. 이후 기교적인 스캣 창법으로 '밥 보컬'이란 이름을 낳았고 촉촉하고 정감 넘치는 발라드로 '재즈계의 퍼스트 레이디' '빌리 홀리데이 이후 최고의 가수'라고 칭송받았다. 데카와 버브 레코드에서 수많은 명창을 남겼다.

내가 개인적으로 새기고 있는 엘라의 가창은<Ella and Louis Again>에 수록되어 있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 'These Foolish Things'이다. 이 <엘라 앤드 루이 어게인>은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신나고 스윙감각이 돋보이는 스튜디오 공연 세션(의 속편)인데, 이 노래에서는 루이가 빠지고 엘라 혼자 노래하고 있다. 열창을 끝낸 루이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물러나자 엘라가 조용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조명이 어스름해지는 그런 식이다. 프로듀서인 노면 그란츠는 이렇게 작위적인 연출에 뛰어나다. 반주는 오스카 피터슨의 쿼텟, 레귤러 트리오 멤버로 루이 벨송이 드럼을 치는데 이 반주가 또 기가 막히다. 최고급 실크처럼 노래의 결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곡도 좋거니와 가수도 좋고 반주도 멋지다.

나는 이 레코드를 대학생 시절에 처음 들었는데 그때 '재즈란 한번 심취하면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인가'하고 감탄했다. 지금도 그때의 인상은 거의 변함이 없다. 꽤 여러번 들었는데도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싫증나지 않는다.

엘라나 피터슨이나 안정되고 수준 높은 실력을 지닌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지나치게 재주를 피운다 싶은 감도 있다. 연주도 굉장하고 어디 흠잡을 데 하나 없지만 그 시점에서 완결되고 말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그늘 같은 것이 듣는 이한테 어째 좀 덜 전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이 'These Foolish Things'에 한하여 나는 그 두사람이 지닌 진지하면서도 고급한 음악성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실은 피터슨은 1952년에 역시 쿼텟을 편성하여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하는 같은 노래의 반주를 맡은 적이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그야말로 예술품이다. 엘라를 앞설망정 절대로 뒤지지는 않는다. 가슴이 터져나갈 만큼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 피터슨의 반주가 좀 어설프다. 빌리 홀리데이가 만들어내려는 '어딘가 특별한 장소'를 혈기에 찬 피터슨의 다소 말 많고 과장된 피아노가 보기좋게 망가뜨리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그 언밸런스 때문에 침통해진 마음으로 엘라의 같은 곡을 들으면 '인간한테는 과연 맞는 짝이 있는 모양'이란 느낌이 새삼스러워진다. 그 후 내가 아는 한 빌리가 피터슨과 공연한 거은 한번도 없었으니 그녀 역시 '이거 안되겠어'라고 통감했던 모양이다. 동시에 피터슨이 엘라의 반주를 맡은 것은 홀리데이 판을 녹음한 몇 년 후의 일이므로 어쩌면 그 동안 나름의 성숙과 진보가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 들어보면 엘라와 피터슨의 이곡에는 몇 군데 결정적으로 감동적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옆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이쯤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노 페이지는 언제 들어도 '아 , 좋다'란 느낌이 든다.  예술이다. 소설 같으면 두말 않고 나오키 상(일본 최고의 대중문학상)을 주고 싶은 연주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Ella and Louis Again



Louie Bellson - Drums
Herb Ellis - Guitar
Ella Fitzgerald - Vocals
Oscar Peterson - Piano
Louis Armstrong - Trumpet, Vocals
Ray Brown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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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Foolish Things -Ella Fitzgerald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Ella and Louis Again



Louie Bellson - Drums
Herb Ellis - Guitar
Ella Fitzgerald - Vocals
Oscar Peterson - Piano
Louis Armstrong - Trumpet, Vocals
Ray Brown - Bass



무라카미 하루키의 Portrait in Jazz(번역명:재즈에세이)에 소개되어 있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곡입니다.

잠깐 원문을 소개하면...

내가 개인적으로 새기고 있는 엘라의 가창은 "엘라 앤 루이 어게인"(Ella and Louis Again)에 수록되어
있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These Foolish Things' 이다. 이 "엘라 앤 루이 어게인"은 타이틀이 말해주듯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신나고 스윙 감각이 돋보이는 스튜디오 공연 세션(의 속편)인데, 이 노래에서는 루이가 빠지고 엘라 혼자 노래하고 있다.
....(중략)
반주는 오스카 피터슨의 쿼텟, 레귤러 트리오 멤버로 루이 벨송이 드럼을 치는데, 이 반주가 또 기가 막히다.최고급 실크처럼, 노래의 곁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곡도 좋거니와 가수도 좋고 반주도 멋지다...(중략)

잘 들어보면 엘라와 피터슨의 이곡에는 몇군데 결정적으로 감동적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옆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피아노소리...", 이쯤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노 페시지는 언제 들어도 '아,좋다'란 느낌이 든다. 예술이다. 소설같으면 두말않고 나오키상(일본 최고의 대중문학상)을 주고 싶은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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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7. 23:46

Mack The Knife

흥겨우면서도 재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Mack The Knife'는 재즈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듣다보면 저절로 발 장단을 맞추며 어깨춤을 추며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을 듣다보면 빅밴드 시절의 스윙을 제외하곤 약간 심각해졌던 재즈가 우리에게 "아니야, 사실 재즈의 본령은 이런 거야. 즐겁고 흥겹고 들어서 기쁜 것이 바로 재즈 아니겠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재즈의 명 스탠다드 넘버입니다.
이 곡은 '상어 같은 이빨을 진주색으로 번쩍거리는 남자 맥은 마치 재크 나이프를 숨기고 있는 것 다'라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칼잡이 맥'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곡입니다.
처음 1928년 독일에서 초연된 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에 삽입하기 위하여 커트 웨일 Kurt Weill이라는 사람이 작곡을 하였구요, 나중에 1954년 경 마크 블릿츠테인 Marc Blitzstein과 버톨트 브렛쳐 Bertolt Brecht 가 뉴욕 공연에 쓰기 위하여 영어로 된 가사를 붙이게 되었는데요, 그후 1956년 경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이 불러 빅 히트를 했구요, 1959년에는 바비 다린 Bobby Darlin이라는 팝과 재즈를 왔다갔다한 가수가 불러서 마침내 빌보드 1위까지 기록하기도 했었습니다. 한 마디로 여러번의 대박을 터뜨린 곡이었죠.
또 천진난만한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그래미상 수상에 빛나는 1960년 엘라 피츠제랄드 Ella Fitzgerald의 독일 라이브 명 앨범 'In Berlin'에 수록된 버전은 엘라가 예전에 자신에게 스캣 창법을 전수해준 루이 암스트롱 의 흉내를 내며 부르고 있어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와인뮤직에서 검색을 해보면 자그마치 스무 곡이 넘는 버전이 주루룩 나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으니 시간 있으시면 다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듣다보면 저절로 재즈에 있어서 즐거움과 흥겨움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니까요.
와인 뮤직에 없는 곡 중, 제가 아주 좋아하는 블루지한 올갠 연주의 명인 지미 스미쓰 Jimmy Smith의 명반 'Crazy Baby'에 수록된 버전과 현재 활동중인 섹소폰 주자 중 가장 따뜻한 톤과 밀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고 평가받는 휴스턴 퍼슨 Houston Person과 베이스의 거장 론 카터 Ron Carter가 협연한 앨범 'Something In Common'에 수록된 버전은 재즈 애호가에게 권하는 넘버입니다.
그리고 1956년 소니 롤린스 Sonny Rollins의 명작 'Saxophone Colossus'에서의 수준 높은 즉흥 연주가 담긴 버전 또한 일품인데요, 거기서는 또 섹소폰을 쫒아 활발하게 전개되는 토미 플래너갠 Tommy Flanagan의 멋진 피아노 연주도 들을 수 있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곡은 특유의 볼멘 허스키 보이스가 흡사 인생을 달관한 듯한 여유와 유머로 가득차있는 루이 암스트롱의 버전이 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이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아 이것이 어쩌면 잡힐듯 하면서 잘 안잡히는 인생의 행복일런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찰나의 느낌을 안겨준답니다. 촌철살인의 경지이죠.

가사 내용이 재미 있는데요. 한 소절만 소개해볼까요?

Oh, the shark has pretty teeth dear
And he shows them pearly white
Just a jack-knife has Mac-heath dear
And ge keeps it out of sight
When the shark bites with his teeth dear
Scarlet billows start to spread
Fancy gloves through, wears Mac-health dear
So there's not a Trace of red

상어는 진주와 같이 하얀 이를 지니고 있지만
맥은 나이프를 가지고 있어요
상어가 물어뜯으면 금방 선홍빛으로 물들지만
맥이 할 때는 장갑을 끼기 때문에
더럽혀지는 법이 없어요,

흡사 조폭 칼잡이를 미화하는 듯한 뜻밖의 내용이죠?
조금 더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 이어집니다.

일요일 아침 길바닥에 굴러 있는 시체
거리 모퉁이에 흘낏 나타났던 누군가의 그림자
그것은 맥의 짓이었을 거에요
강을 내려가는 작은 배에서
시체를 담은 시멘트 주머니가 강으로 던져졌대요
돌아온 맥 덕분에 거리에는 점점 더 시체가 늘어가는군요....

가사 내용을 심각하게 들을 거는 없구요,
뮤지컬에 쓰였던 곡이라 악당을 재미 있게 표현하기 위해 그런 것 같습니다.
거 왜 악당중에도 겉모습만 흉악할 뿐 하는 짓은 푼수에다 좀 덜 떨어진 존재 있지 않습니까?
바로 칼잡이 맥은 그런 인물입니다.
빡빡한 세상살이에서 파격의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임 셈이죠.^^
마치 이 곡의 흥겨운 멜로디처럼요...

와인 생각 (8) - Mack The Knif

Ella Fitzgerald
Mack The Knife, Ella I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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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7. 23:38

블로그 다시 시작하기

블로그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때가 2004년이었다.
그 때 난 네이버에 불로그를 개설하고 거의 매일같이 포스트를 올렸다.
당시에는 마음대로 음악을 올려도 규제를 받지 않았던 시절이라 (저작권의)
거의 1000개의 포스트가 넘는 내가 생각해도 음악이 가득한 블로그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음악을 함께 나누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저작권 규제가 강화되면서 차츰 내 이웃들의 음악 포스트들이 사라지고
어느날 나도 작심하고 내 블로그에서 모든 음악을 제거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앙꼬빠진 앙꼬빵마냥 블로그의 포스트가 빛을 바랬고 그 수많았던 포스트들을
난 눈물을 머금고 삭제시켜버렸다.  그러다보니 다시 블로그를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세월은 흘러 벌써 4년이 지났다. 이제 음악만이 아닌 나만의 공간에서 하우스토리를
시작해 보련다.

Since 2004.03.09
        'hownext님의 블로그' 시작
        블로그 설명 : 음악은 추억이다 





2008. 8. 27. 23:10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강의 - 10점
신영복 지음/돌베개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계신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책 이름 그대로 오랜만에 좋은 강의를 들은 느낌이다. 이런 류의 책은 일본에서는 상당히 많이 읽히고 쓰여지는 장르인데 문득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꿈은 이루어 진다고 했으니 도전해 봐야겠다.
http://hownext.tistory.com2008-08-27T14:10:01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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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6. 15:54

나의 일본사람 탐험기

나의 일본사람 탐험기나의 일본사람 탐험기 - 6점
박종현 지음/시공사
'일본은 없다' 책이 엄청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일본 없는가? 아니라는 건 이제 우리 모두가 다 안다. 하지만 일본은 있지도 없지도 않으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척 잘 알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하며 지내온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일본여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계기로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15년 동안 좌충우돌 일본사회에에서 살아온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본을 잘아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의문이 나는 구석도 있고 너무 편협적인 생각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일단 재미있다. 이런 류의 책들은 지금까지는 아주 딱딱하게 논문처럼 글을 쓰거나 3류 소설 같은 잡기가 많았지만 이 책은 일본 혹은 일본인은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시각을 갖게 해준다. 이쉬운 점은 말 그대로 탐험에서 끝이 났기 때문에 비지니스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점이 있다.
http://hownext.tistory.com2008-08-26T06:54:28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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