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6. 00:33

터미널.... 그리고 재즈


터미널 (The Terminal, 2004)
미국 / 2004.08.27 / 드라마,로맨스(멜로),코메디 / 128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터미널>의 안과 밖
 신기주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터미널>에서 아름다운 미국과 삶에 대한 낙관을 함께 보여 주고자 애쓴다. 톰 행크스의 넉넉한 연기 역시 <터미널>의 풍요로움에 덧칠을 한다. <터미널>은 스필버그가 이야기하는 현대 미국의 동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책상 위에는 여러 편의 시나리오가 수북이 놓여 있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막 마무리한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해리슨 포드가 출연할 <인디아나 존스 4>와 톰 크루즈 주연의 <워 오브 월드>, 그리고 이스라엘 첩보 기관 모사드를 소재로 한 첩보물의 제작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스필버그는 무언가 다른 걸 찾고 있었다. <터미널> 제작 노트에서 스필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터미널>은 가장 마지막에 읽었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나자 이전 시나리오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뭔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터미널>이 미국이다

동유럽의 소국 크라코지아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미국의 관문인 JFK 공항에서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빅토르가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 크라코지아 정부가 쿠데타로 몰락해버렸다는 것이다. 정부가 없으니 여권이나 비자가 효력이 있을 리 없다. 빅토르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공항 관리 책임자 프랭크(스탠리 투치)에 의해 공항에 버려진다. 빅토르는 미국에 입국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미국 당국도 빅토르를 추방시킬 명분이 없다. 따라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JFK 공항의 환승장에 빅토르를 방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처음엔 길어야 며칠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크라코지아 내전은 지리하게 계속되고 빅토르의 기다림도 끝없이 지속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공항 노숙자' 빅토르의 생활에 이상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오갈 데 없는 그는 뜻밖에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낙관적인 표정으로 공항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우선 빅토르는 공항 한켠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꾸민다. 영어도 배운다. 돈 버는 법도 배우고 친구도 사귄다. 그는 터미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알뜰한 삶을 일구어 나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과 엇비슷한 처지의 동유럽 여행객을 도와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사랑도 찾아온다. 유부남과의 해답 없는 연애로 상처받은 스튜어디스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빅토르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따스함을 선물한다. 삶에 대한 낙천적인 태도로 공항을 따뜻한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빅토르에게 공항 사람들도 감화된다. 그동안 9개월이란 시간이 흐른다. 승급 심사를 앞두고 있는 프랭크는 빅토르를 어서 쫓아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내의 가치를 아는 빅토르는 끈질기게 정식 입국이 받아들여지길 기다린다.

스필버그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바로 공항 터미널 안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국제 공항 터미널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 서로 다른 삶의 태도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이다. 스필버그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서로를 이해하며 평화롭게 사는 공간이 바로 자신의 조국 미국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민자의 동화를 꿈꾸다

<터미널>의 이야기는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수년째 살고 있는 한 이란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다.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59)는 1970년대 영국 유학 시절 이란 왕정 반대 시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고국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영국과 독일, 벨기에 등지에 망명을 신청하지만 번번이 거부당한다. 나세리는 영국 정부로부터 가까스로 난민 확인증을 받는다. 하지만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난민 확인증을 분실하고 만다. 영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한 나세리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드골 공항으로 돌아온다. 프랑스 당국 역시 나세리의 입국을 거부한다. 그러나 더 이상 나세리를 공항 밖으로 내치지는 않는다. 1988년부터 나세리는 그곳에서 ‘알프레드’라고 불리며 거주하게 된다.

사실 <터미널>의 실화에는 난민의 고달픈 현실과 국제 관계의 복잡함, 정치적인 억압, 그리고 아랍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 등이 깔려 있다.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공항이라고 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높다란 벽 틈에 영원히 끼어버린 불쌍한 낙오자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터미널>의 시나리오를 차기작으로 선택하면서 나세리의 고난한 이방인의 실화를 ‘이민자의 동화’로 탈바꿈시키고 싶어 했다. 이민자의 동화는 곧 미국의 동화다. 스필버그는 “빅토르는 이민자의 표상이다. 난 빅토르의 이야기가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원했다. 빅토르는 이방인이다. 그는 비록 미국에 입국하는 데 실패했지만 터미널에서 미국의 모든 것을 경험한다. 그것은 미국이 왜 강해졌는지, 사람들이 왜 이 젖과 꿀의 땅에 꿈을 이루러 오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빅토르는 별 노력 없이 터미널에 적응한다. 그것이다. 거대한 단지에 모두가 녹아드는 게 이 나라의 모습이다.” 스필버그는 신예 시나리오 작가 사카 저바시와 의기투합한다. 저바시는 “실제로 미국 땅에 발을 밟지 못하는 한 남자가 터미널 안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경험하는 것은 심오하고도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한다. 스필버그 역시 “능력이 있으면 인정받는 곳,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9.11을 생각하다

스필버그는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의 전쟁 수행을 지지한다는 골자의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또 최근 자신이 준비하던 이스라엘 첩보 조직 모사드를 다루려던 프로젝트를 연기했다. 테러 위협 때문이었다. 그의 모사드 프로젝트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했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거대한 테러의 시대에 또 다른 테러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후 결정한 것이 <터미널>이다. 거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스필버그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줬던 2001년 9.11 테러를 생각했다. 그는 참사 이후 미국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자국민들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너무 포악한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만 했다. “<터미널>이야말로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미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다. <터미널>엔 다양한 사람들의 위대한 혼합물인 미국을 찬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은 좀 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할리우드영화들은 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스필버그에게 <터미널>은 아름다운 미국을 그리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아름다운 미국을 카메라에 포착하기 위해 거리 밖으로 나서는 대신 거대한 인공 세트 안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 스필버그는 시나리오와 세트 작업을 위해 최고의 스탭을 끌어들인다.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앤드루 니콜은 <트루먼쇼>에서 이미 한 차례 ‘인공 세트’를 경험했었다. 세트 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의 도움으로 스필버그는 거대한 JFK 공항을 모두 세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사실 9.11 테러 직후 실제 공항에서의 영화 촬영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스필버그는 실제 JFK 공항과 꼭 같이 생긴 거대한 세트를 지었다. 세트를 다 짓는 데만 20주가 걸렸다. 비행기가 오가는 거대한 활주로는 거대한 천 위에 페인트로 중앙선을 그려 만들어냈다. 스필버그는 공항 세트 안에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면세점들을 빠짐없이 들여놓았다. 서로 다른 업종의 가게만 35개나 됐다. 스타벅스와 휴고 보스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은 그렇게 재현됐다.

박제된 신화를 만들다

<터미널>은 최근에 만들어진 스필버그 영화 중에선 이례적으로 지금 현재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터미널>에 진짜 현실은 없다. 빅토르 역의 톰 행크스는 “빅토르는 공항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오히려 미국이라는 거대 사회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터미널>의 요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터미널> 안에는 완전무결한 스필버그식 미국 사회만이 존재할 뿐이다. 스필버그는 현재의 미국을 그리기 위해 미국을 터미널 안에, 터미널을 다시 세트 안에 몰아넣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트리뷴’의 평론가 믹 라셀은 <터미널>의 비현실성을 이렇게 꼬집었다. '스필버그는 빅토르가 실제로 왜 공항에 머물러야만 하는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단지 또 다른 를 만들고 싶어 했을 뿐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녔으며 결국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외계인의 이야기 말이다.'

<터미널>의 미국은 박제된 미국이다. 스필버그는 터미널 밖 거대한 미국과 마주하는 대신 작은 공간, 한정되고 짜 맞춰진 미국 사회를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스필버그는 9.11 테러 이후 잃어버린 미국 사회의 진짜 모습을 영화 속 터미널 안에서 재현하려 했다. 그런데 그 진짜 모습이란 현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스필버그가 생각하는 미국,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신화적 미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롱닷컴’의 찰스 테일러는 '<터미널>의 동화는 순수한 마음이 전쟁과 자본주의 따위의 굴종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들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정치를 사탕발림으로 바꿔놓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터미널>은 말하자면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영화를 대표해온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최신작 <갱스 오브 뉴욕>과 비견될 만하다. 미국의 창세기를 그리며 미국 사회의 비열한 본질을 꿰뚫으려는 마틴 스콜세지의 노력을 스필버그는 슬며시 회피한다. 그것은 빅토르가 뉴욕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뉴욕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신 그는 주인공 빅토르가 미국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미국에 대한 장밋빛 낙관론을 펼친다. 이민자들은 가족과 재회한다. 사랑은 이루어진다. 인도 출신의 괴팍한 청소부 굽타(쿠마 팔라나)는 결국 빅토르에게 감화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빅토르가 공항을 떠나게 됐을 때 공항 직원은 모두 나와 빅토르에게 애정과 존경의 표시를 한다. 그것 자체가 스필버그가 꿈꾸는 미국의 신화인 셈이다.

논란에 휩싸이다

<터미널>은 미국 개봉 당시부터 찬반이 명확하게 갈린 작품이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터미널>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많은 평론가들이 톰 행크스와 스필버그가 <터미널>에서 녹여낸 넉넉한 낙관주의와 웃음에는 찬사를 보냈다. <터미널>은 미국의 신화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삶은 기다림’이라는 철학적 사색의 영화이기도 하다. <터미널>은 빅토르와 아멜리아의 만남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철학을 이야기한다. 스필버그는 “우리 모두가 잠시 동안 빅토르처럼 기다려야만 하는 시기를 거친다”며 “이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시카고 선 타임스'의 로저 에버트를 비롯해 많은 평론가들은 '<터미널>은 사랑스러운 영화'라며 '<터미널>은 고전 감독 프랭크 카프라의 낙천성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격찬했다. 하지만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데이비드 스트릿은 '스필버그는 <터미널>을 인간적인 코미디나 관료 사회에 대한 풍자 등으로 만들고 싶었겠지만 능력 부족으로 인해 결국 우스운 멜로드라마에 머물게 만든다'며 '스필버그는 다음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쥬라기 공원>으로 떠나야 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사실 <터미널>을 감싸고 있는 풍요로움은 <포레스트 검프>에 이어 다시 한번 톰 행크스가 보여 주는 넉넉한 연기 덕이 크다.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보다도 훨씬 더 먼저 <터미널>에 합류했다. “누구나 공항에 처음 갔을 때 억압되고 답답한 분위기를 느껴봤을 것이다. 요즘처럼 살벌한 공항 분위기만 봐도 그렇다. 빅토르는 공항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섰을 때 자신의 존재가 이곳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빅토르 같은 사람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거대한 무엇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에겐 너무 큰 장벽인 탓이다. 대신 빅토르는 기다린다. 여기 이곳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최선의 삶을 찾는다.” 빅토르의 기다림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빅토르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을지언정 단 한순간도 멈춰 서 있지 않는다. 그는 늘 움직인다. 기다림이란 쉼 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이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역동적인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야박한 현실을 가리다

<터미널>은 미국 개봉 직전까지 결말을 놓고 설왕설래에 휘말려야만 했다. <터미널>의 엔딩에서 빅토르와 아멜리아의 사랑은 이루어진 것도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닌, 열려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터미널>의 이런 결말을 놓고 미국에서조차 여러 차례 의견이 분분했다. 당초 빅토르에게는 할리우드식 엔딩의 로맨스가 허락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1991년 <후크> 이후 처음으로 <터미널>의 개봉을 앞두고 테스트 스크리닝을 했다. 테스트 스크리닝 직후 할리우드에서는 스필버그가 <터미널>의 엔딩을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낙관의 영화 <터미널>은 시종일관 긍정적이었던 분위기와 달리 마지막에서는 모든 것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묘한 영화가 됐다. 일부 스필버그 마니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테스트 관객들이 영화를 망쳤다'고 일갈했다.

<터미널>은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이어 세 번째로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터미널>은 오는 9월 1일 개막하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는 “<터미널>이 현대 미국 사회가 잊고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통한 갈등 해소를 일깨울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터미널>에서 미국이 넉넉한 낙관과 풍요로움, 그리고 세상을 적시는 재즈의 나라라고 말한다. 기다림의 미덕은 삶을 긍정하게 해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터미널 안, 미국 안에서는 꿈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터미널 밖에서도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터미널>의 실제 주인공 나세리는 아직도 프랑스 드골 공항에 살고 있다. 그는 빅토르와 달리 공항을 떠나지 않으며 공항 모두의 환영을 받는 존재 역시 아니다. 나세리에게 기다림은 무의미한 삶의 소진일 뿐이다. 그는 공항 한켠 지하 상가의 약국과 옷 가게 사이의 작은 틈새 집에서 생활한다. 올해로 16년째다.

 

 이 영화 너무 감명깊게 봤습니다.

 웃다 울다가  감탄하다가.....


 왜 재즈인가?   왜 베니골슨인가는 보시면 압니다. ㅎㅎ

 재즈의 매력 .....   저도 베니골슨이  다시한 번 듣고 싶어진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톰 행크스가 베니골슨에게 사인을 받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 재즈의 살아있는 전설  베니골슨"


Benny Golson
California Message


Date of Release Oct 1, 1995 (recording) inprint

Curtis Fuller - Trombone
Bill Mays - Piano
Oscar Brashear - Trumpet
Benny Golson - Arranger, Sax (Soprano), Sax (Tenor)
Thurman Green - Trombone
Roy McCurdy - Drums
Bob Magnusson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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