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0:31

모던 재즈 퀘텟(Modern Jazz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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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남성 패션 하면 아이비
스타일이 최고였다. 아니 그것말고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아메리칸 트렌트이다. 그런 시대에 모던 재즈 사중주단(MJQ) 네 명의 스타일은 우리들 눈에 무척 쿨하게 비쳤다.


 당시 재즈 뮤지션 하면 모두들 지저분한 차림에 마약을 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한다는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는데, MJQ 네 명은 부루스 브러더스 풍의 검정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하얀 버튼 다운 셔츠에 실크 넥타이를 맸다. 수염도 단정하게 길러 핸섬하고 인텔리전트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대 매너는 대학 교수처럼 차분하고 억제되어 있었다. 아마도 존 루이스가 그런 전략을 구사했을 테지만, 아무튼 참 멋이 있었다. 동경했다. 지금은 윈튼 마샬리스 일파가 그 흐름을 이어받아 값비싼 이탈리아제 양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그들보다는 당시의 MJQ 네 명이 음악적으로나 패션적으로나 영향력이 더 컷다. 거기에는 "흑인 뮤지션도 이렇게 지성이 있다.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걸 맞는 경의를 요구한다"는 단호하고도 절실한 그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MJQ 유니트의 강력함은 그 유니트의 파탄성(破綻性) 속에 있었다. 이 점은 그들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정경을 직접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른 세 사람은 설정된 집단적인 사운드를 반듯하게 유지하는데, 비브라폰 주자인 밀트 잭슨은 솔로 도중에 그 형식적인 스타일을 견디지 못하고, 윗도리를 획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 물론 비유적인 의미로 --- 개인적으로 유유히 스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어도 나머지 세 사람은 "나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담담하고(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무표정하게 MJQ적인 리듬을 유지한다. 하고 싶은 연주를 다 하고 나면 잭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윗도리를 반듯하게 입고 넥타이를 조인다. 그 반복이다. 그 '일탈'과 통일의 융통성이 거침없이 이루어지는데, 그 전환이 결과적으로 상당히 스릴 있고 또 상당히 재즈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20년이란 오랜 세월에도 딱 한 번 멤버를 바꿨을 뿐, 상업적으도 팀을 존속시켜왔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음악성을 견지해올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 MJQ는 어느 시점을 지나자 과거의 오리지널한 창조력을 잃었고, 틀에 박힌 일을 싫증을 내게 되었으며, 그 결과 네 사람은 가자 자기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60년대의 옛 영화를 보다가 MJQ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면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 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것이 바로 재즈였다고 새삼 나는 생각한다.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말해야 할 것은 실로 웅변을 하듯이 말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Django The Modern Jazz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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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organ

Lee M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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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위있고 꿈을 꾸듯이 신축성이 있는 톤과, 나중 일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타고난 생기발랄함 덕분에 리 모건은 늘 재즈 카페의 인기 연주가였다. 그는 재즈의 판도를 뒤집은 거인적 재능의 연주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리 모건이란 트럼펫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재즈의 풍경이 지금보다 차 스푼 하나만큼은 색채감을 잃고 밋밋해졌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리 모건은 클리포드 브라운이란 거성이 사라진 직후, 재즈 역사의 공백을 메우듯이 열여덟 나이의 천재 소년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서른 네 살이란 젊은 나이에 애인이 쏜 총에 맞아 불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데들리 퀵(deadly quick) 생애였다. 그런 탓도 있을 테지만, 리 모건이 남긴 연주에는 늘 '영원한 보이 원더' 같은 청신함이 떠다닌다.
  어떤 곡을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차밍하고 자연스러운 유락(愉樂)에 충만하고, 그리고 놀랄 만한 속도감이 관철되어 있는 것이 리 모건의 음악이다. 그렇기에 많은 재즈 팬들이 어찌 되었든 그의 연주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음에 다소의 혼란이 나타났던 시기도 있었지만, 리 모건은 거의 완성된 트럼페터로 등장하여 늘 시대를 앞서 가며 바람을 가르고, 새로운 종류의 선열함을 자진하여 체득했다. 그가 그리샨 몽커나 빌리 하퍼, 베니 모핀과 같은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죽기 직전의 레코드는 신기하게도 절충적인 전위성마저 띠고 있다. 그럼에도 최후에 이르도록 그의 음악이 성숙했다는 인상을 주는 일은 없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처음에는 속도감과 유려한 컨트롤에 넋을 잃는데, 집중하고 듣다보면 언젠가는 "어 뭐야, 잠깐"하는 부분이 반드시 생긴다. 구질(球質)의 가벼움이 귀에 거슬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듣는 이는 리 모건이란 연주가에게 나름의 선을 긋고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음악은 마일스 데이비스나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처럼, 아무리 오래 들어도 그 깊은 맛이 희석되지 않는 음악이 아닌 것이다 --- 안타깝게도.
  그러나 앨범 "Sidewinder"가 당대에 얼마나 래디컬하고 멋있었는지, 1960년대의 공기를 숨쉬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이드와인더"는 그 시대의 뜨겁고 가칠한 공기 속에서 거꾸로 선 태아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음악이었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그 흑백 재킷을 손에 들 때마다 당시의 공기가 정면으로 충돌해오듯이 되살아난다. 따끔따끔 뜨겁다. 연주의 밀도에 대해서는 돋보기를 들이대고 흠집을 잡자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악함이 일직선으로 가져오는 것은 다른 어느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말하자면 리 모건은 재즈계의 빌리 더 키드였다. 그는 적어도 하나의 전설을 남겼다. 그 누구도 그보다는 더 빨리 쏘지 못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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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Chet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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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다. 거기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조작할 필요도 없이 그 자신이 '뭔가 매우 특별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광휘는 한여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소리없이 어둠에 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약 남용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추락이 변제의 시간을 넘겨버린 빚처럼 그를 덮친다.
  베이커는 제임스 딘을 닮았다.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그
존재의 카리스마나 면모나 파멸성도 아주 유사하다.  그들은 시대의 편린을 탐식하여 얻은 자양분을 온 세계를  향하여 기분 좋게, 거의 하나도 남기지 않고 되뿌렸다. 그러나 제임스 딘과 달리 베이커는 그 시대를 살아남았다. 그것이 쳇 베이커의 비극이었다. 좀 심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70년대에 쳇 베이커가 부활하여 재평가 받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베이커와 그 시대가 정면으로 충돌하듯 격렬하고 선연한 불꽃을 피웠던 50년대 중기, 미국 서해안에서 그의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연주를 가능한한 오래 뇌리에 담아두고 싶다.

  쳇 베이커의 초기 명연은 제리 멀리건의 오리지널 쿼텟(Quartet)으로 들을 수 있는데, 그 자신의 쿼텟 연주도 아주 훌륭하다. 이 퍼시픽 레코드사의 10인치 판은 리더작 중에서도 제일 초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 가칠가칠하고 어설플 정도로 청신한 음색과 연주에는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인 러 프리맨의 긴장감 어리면서도 말끔하고 독특한 터치가 베이커의 혼이 자아내는 '올곧음'에 선명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펫 쿼텟에서 그의 연주는 시원스럽고 밝은 표층 아래로 침잠한 고독의 여운을 남긴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 소리는 똑바로 공기를 찌르고,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미련없이 사라진다. 노래는 미처 노래가 되기도 전에, 우리들을 둘러싼 벽에 삼켜진다.
  기술적으로 세련된 것은 아니다. 온갖 재주를 피우지도 않는다. 연주는 놀랄만큼 탁 틔여 있다. '저렇게 연주하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소리가 똑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감마저 품게 된다. 소리는 끝없이 청렬하고 감상적이다. 그런 소리에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깊이를 찾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 깊이 없음이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은 우리들이 언젠가 경험한 무엇을 닮았다. 아.주.많.이. 닮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Chet Baker
Chet



Pepper Adams - Sax (Baritone)
Chet Baker - Trumpet
Bill Evans - Piano
Philly Joe Jones - Drums
Herbie Mann - Flute
Connie Kay - Drums
Kenny Burrell - Guitar
Paul Chambers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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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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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허망한 영위일지라도 궁극을 따져보면 그 나름의 고유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머셋 몸이 말했듯,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는' 것이다.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에도 물론 철학이 부수된다. 그것은 바로,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큰 소리로 듣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철학은 아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진실이다. 왜냐하면 카운트 베이시가 빚어내는 음악에 담겨 있는 가장 훌륭한 특질은 그 음악적 '풍압'에 있기 때문이다. 스피커 앞에 앉아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음악을 듣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날아갈 뼌했다면(불과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당신은 이미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풍압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소리를 크게 하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소리가 큰 악단'이란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보다 음향적으로 박력있는 물리적으로 큰소리를 내는 빅 밴드는 그밖에도 많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 탁월한 부분은 그 소.리.의. 작.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정성스럽고 조그만 소리를 쌓아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작은 음을 사용하여 듣는 이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스윙을 들려주는, 마치 쾌할한 고문자처럼......, 가만히 앉아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 놀라운 솜씨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정이 동으로 전환되어, 브라스 밴드가 거침없이 와일드하게 포효할 때 우리들은 낙차의 다이너미즘에 뒤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튕겨나가는 것이다. 작은 소리든 큰소리든 진지하고 대담하게 스윙하는 재주만큼은 다른 어떤 밴드도 흉내내지 못한다. 그 밴드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해도, 캔자스 시티에서 온 윌리엄 베이시(카운트 베이시의 본명) 씨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버브 사에서 나온 '베이시 인 런던'(Baise in London)이다. 카운트 베이시는 라이브를 녹음한 멋진 앨범이 몇 장 있는데, 아무튼 신나고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이 레코드 한 장이면 그만이다. 그 옛날의 재즈 뮤지션의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나쁠 정도'로 스윙하는 연주다. 너무 여러 번 말해서 집요하다 싶은 감이 있지만, 볼륨을 가능한  한 크게 올리고 듣는 편이 좋다. 연주는 첫 시작부터 끝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 특히 LP A면에 들어 있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여섯 곡의 박력은 압권이다.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다. 곡은 '샤이닝 스타킹'(Shiny Stocking)에서 '하우 하이 더 문'(How High the Moon)으로 옮겨 간다. 이리니저리니 골치 아픈 말 떠들 필요없이, 캔 맥주 하나 손에 들고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스테레오의 볼륨을 한 껏 올려 소리의 홍수 속에 몸을 맡기면, 세상은 이미 천국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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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Dolphy(1928-1964)

Eric Dolphy(1928-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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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1958년 치코 해밀턴 밴드에 참가한 후 1960년부터 찰스 밍거스 그룹에 참가함과 동시에 오넷 콜맨과도 공연하였다. 그 후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였다. 존 콜트레인과도 공연하였다. 전통적인 조성의 세계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수법을 도입 찰리 파커 이후의 하드 밥과 모드나 프리등의 혁신적인 재즈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에릭 돌피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이 <Out There>란 프레스티지 사 초기의 LP가 내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음악적 내용도 뛰어나지만 그와 동시에(랄까, 그 이상으로) 오리지널 재킷의 그림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초 현실 주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살바도르 달리풍의 그림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색소폰을 부는 돌피가 공중에 떠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타고 있다. 돛은 첼로 지붕은 심벌즈, 벽으로는 호른이 튀어나와 있고 밑바닥에는 불길한 거머리처럼 플루트가 딱 달라 붙어 있다. 뱃길 뒤로는 악보가 떠다니고 언덕 위에는 등대 대신 메트로놈이 서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다. 마치 우주의 변경처럼(아니면 가물거리는 전등이 달려 있는 광처럼) 어둡다.

그림에는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기술의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한 독창적인 상상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화가의 이름조차 명기되어 있지 않다. 재킷 한 귀퉁이에 '예언자'라는 타이틀이 보일 뿐이다.  아마도 이 레코드를 위한 오리지널 그림을 의뢰 받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젊은 화가는 -당시 프레스티지 레코드는 재킷 디자인에 고액의 개런티를 지불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름도 내세우지 못하고 세월 너머로 잊혀졌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 재킷이 왠지 마음에 끌린다. 그리고 에릭 돌피하면 이 작가 불명의 '달리풍'그림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외람될 지도 모르겠지만 에릭 돌피란 사람의 시대를 앞서가는 독특함과 성실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또 다소는 미심쩍은(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악풍에 이 그림의 톤이 신기할 정도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만약 이 그림을 일류 화가가 그렸다면 또는 진짜 달리가 그린 그림이라면 나는 그다지 매료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참 모를 일이다.

또 이 재킷 뒷면에는 돌피 자신의 이런 발언도 인쇄되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새롭고 또 굉장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야말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인 이곳 뉴욕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 레코드가 녹음 된 것은 1960년 8월 전통을 강조하듯 보수적인 50년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조금 전의 일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여 오래도록 그늘에서 생활해야 했던 에릭 돌피한테도 이 무렵부터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음악적으로도 상당한 비약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는 1964년 6월 심장 발작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우리들은 모두 우주의 변경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에릭돌피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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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onious Monk

Thelonious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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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로니우스 몽크의 음악의 울림에 숙명적으로 이끌린 시기가 있었다. 몽크의 그 독특한 -- 딱딱한 얼음을 기묘한 각도로 유효하게 깎아내는 --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로 이게 재즈'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음악이 따스하게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짙은 블랙 커피와, 담배꽁초로 가득한 재털이와, 대형 JBL 스피커 유니트, 읽기 시작한 소설(예를 들면 조르주 바타이유나 윌리엄 포크너), 가을 초입의 스웨터, 그리고 도시의 한모퉁에서 감당하는 서늘한 고독 -- 그런 정경은 지금도 내 안에서 셀로니우스 몽크와 곧바로 연결된다. 멋진 정경이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은 잘 찍은 사진처럼 아름다운 균형으로 애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다.
  몽크의 음악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지적이면서도 괴팍스럽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소리들이 하나같이 옳았다. 그 음악은 우리들의 어떤 부분을 아주 강하게 설득하였다.
  그의 음악을 비유하자면, 어디선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 무언가 아주 굉장한 것을 테이블 위에 슬쩍 올려놓고 그대로 아무말없이 사라지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같다. 몽크를 주체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즉 하나의 미스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일스나 콜트레인은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하고 천재적인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수께끼의 사나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몽크의 음악이 언제부터 그 원래의 광휘를 잃게 되었는지, 수수께끼가 수수께끼이기를 그만 두었는지는 실은 나도 잘 기억하고 있지 않다. 후기의 곡 중에서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전후의 일이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몽크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희미해져 갔던 것처럼 그같은 정경의 신비성이나 균형감도 조금씩 상실되었다. 그리고 그 걷잡을 수 없는 비신화적인 시대(1970)가 도래하였다.
  나는 이 <5 by Monk by 5>란 대칭적인 제목의 LP를 신주쿠의 하나조노 신사 근처에 있는 <마루미 레코드점>에서 샀다. 수입판이라서 당시의 내 주머니 사정에 견주면 상당히 비쌌다. 내가 레드 갈랜드의 프레스티지 판을 사려고 하자, 가게 주인이 '젊은데 그렇게 시시한 것을 사다니. 이거 사다가 한번 들어보라구'라고 설교를 하기에 억지로 사고 말았다. 정말 이상한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옳았다. 이 LP는 닳아빠지도록 여러 번 들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모든 음, 소절 속에 짜내어도 짜내어도 다 짜낼 수 없을 정도의 자양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젊은 인간의 특권으로 나는 그 자양을 남김없이, 세포 깊숙이 빨아 들였다. 그 무렵에는 거리를 걸을 때에도 머릿속에서 몽크의 음악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몽크의 음악이 얼마나 멋진 지를 전하고 싶어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나는 그때, 그 또한 절실한 고독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였다. 나.쁘.지. 않.다.. 외롭지만 나쁘지 않다. 나는 그 무렵, 여러 가지 형태의 고독을 열심히 그러모으고 있었던 듯하다. 담배를 무수히 피우면서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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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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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 크리스천 하면 일찍이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에서의 잼 세션인 <밥의 여명>으로 유명하지만, 베니 굿맨과 공연한 세션의 주요 레퍼토리를 모아놓은 세 장짜리 LP(일본에서 편집한 것이다)의 내용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하다.
  베니 굿맨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체제' 속에서, 몇 소절밖에 주어지지 않은 솔로를 연주하며 발산하는 그의 자연스러운 시심이 우리들의 귀를 사로잡고 마음에 호소한다. 벌써 50년이나 지난 옛날 녹음인데, 크리스천의 기타 솔로는 지금 들어도 고리타분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기적적으로 높은 영역에 도달해 있다. 모던이니 밥이니 스윙이니 하는 틀을 넘어 실로 지적이며 스릴이 있고, 스윙감 또한 뛰어나다.
  그러나 찰리 크리스천은 불행하게도 스물다섯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음악 경력은 아주 짧은데(정확하게 말하면 겨우 1년 8개월이다), 그가 남긴 연주는 후대의 기타리스트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크리스천의 연주를 듣다 보면, '어어 이건 바니 케슬이잖아. 이건 또 허브 엘리스고, 이건 케니 버렐인데' 하고 놀라는 일이 많다. 크리스천의 연주 속에서 후대의 기타리스트를 발견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50년대 말에 웨스 몽고메리가 옥타브 주법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 기타리스트들은 많든 적든 크리스천의 주술(그 참신하고 풍부한 아이디어와 테크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넷 콜맨 이전의 알토 섹소폰 주자들이 찰리 파커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그라드는 유성의 광휘라고 해야 할지, 이 <찰리 크리스천 메모리얼 앨범>(Charlie Christian Memorial Album)에 수록된 연주는 모두 한 번은 들어볼 가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1941년 1월 피아니스트 카운트 베이시를 맞이한 따끈따끈한 세션을 좋아한다. BG(베니 굿맨)가 이끄는 임시 편성 섹스텟의 멤버는 베이시, 쿠티 윌리암스(tp), 조지 올드(ts), 크리스천, 아티 번스타인(b), 조 존슨(ds) 등 아주 흥미로운 얼굴들 -- 당시 BG의 레귤러 캄보와 베이시의 리듬 섹션의 혼성 부대 -- 이다. 결과적으로 흑인 뮤지션의 수가 많았고 그런 만큼 음색도 검고 리듬도 끈적거린다.
  특히 심플하고 쾌활한 소절을 담고 있는 <브렉퍼스트 퓨드>(Breskfast Feud)에서 베이시와 크리스천의 솔로 응수는 매우 첨예하고 휼륭하다. 레귤러 BG 캄보에서 연주한 크리스천의 연주도 물론 들을 만하지만, 독특한 시간 감각으로 지축을 흔드는 베이시의 리듬 섹션과 , 크리스천의 솔리드한 노선의 결합은 정말이지 '뼈까지 스윙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스윙의 마그마가 끓어오른다. 재즈가 아직은 '영웅적' 이었던 시대의 귀중한 기록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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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8. 15:06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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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 사진으로 제리 멀리건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눈부심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반짝이는 금발을 짧게 깍은 키큰 청년 -- 아이비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 입고 하얀 버튼 다운 셔츠에 가느다란 검정색 니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고집스러워 보이는 모난 턱과 싱그럽고 연푸른 눈동자. 손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바리톤 색소폰이 들려 있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깔끔하고 청결하고 쿨(Cool)했다. 1960년대 초엽이었으니 제리 멀리건이 보여주는 미국적인 정서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진 별세계인 듯 느껴졌다.
  그래서 제리 멀리건 하면 나의 뇌리에는 그의 음악보다 먼저 모습(이미지)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을 받으면서 차분하게 재즈를 연주하는 영원한 청년. 그 모습에는 상처 하나, 얼룩 한 점 없었다. 그늘이라고 해봐야 그저 음악에서 풍기는 아름다운 수심뿐.......
 
 휠씬 나중에야 제리 멀리건이 실생활에서 꽤 오랜 기간 생활고와 마약과 정신적 좌절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형무소 신세를 지기도 하였고,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상처투성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재즈라는 음악이 그 유례없는 활력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문화의 '언더그라운드'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시대였다. 하지만 사진이나 음악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리들이 제리 멀리건의 음악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섬세하고 내성적인 혼의 숨결이다. 음악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등줄기를 꼿꼿하게 편 고결함이다. 같은 바리톤 색소폰 주자이면서도, 페퍼 아담스가 빚어내는 톡톡 끊어지는 상큼한 톤에 비하면 멀리건의 톤은 포용력이 있고 부드럽다. 때로 너무 진지한 측면도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설득력이 있다.
 
 내가 제리 멀리건의 실제 연주를 들은 것은 1980년대 후반, 그가 빅밴드를 이끌고 마다라오 고원에서 개최된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다. 자기 자신의 빅밴드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편곡자 출신인 그로서는 오랜 꿈이었다. 경영적인 면에서는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꿈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그는 사뭇 행복해 보였다. 한여름의 야외 콘서트장에서, 이미 젊지 않은 제리 멀리건은 그의 절반 나이밖에 되지 않는 젊은 뮤지션들을 마치 자신의 악기라도 되듯 섬세하게 다루었다.
 
  제리 멀리건이 남긴 앨범은 거의 군더더기가 없다. 유독 지치고 힘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면 나는 싱글 몰트를 조그만 잔에 따라, 이 <왓 이즈 데어 투 세이>(What is There to Say)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싶다. 아트 파머의 솜사탕 같은 트럼펫과 제리 멀리건의 깊은 밤처럼 부드러운 바리톤 색소폰의 사운드가 우리들의 혼을 웅덩이 같은 장소로 인도한다. 상처입은 혼만이 알고 있는, 그 은밀한 장소로.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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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굿맨(Benny Go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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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한테는 보수적이고 장사꾼 기질이 농후한 뮤지션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지만, 백인 뮤지션은 흑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주하지 않는다는 그때까지의 암묵적인 룰을 과감히 타파한 것이 실은 이 사람이다.  그는 비브라폰 주자 라이오넬 햄프턴을 기용하고 피아노에 테디 윌슨, 그리고 기타에 찰리 크리스천을 발탁하였다. 그 일로 주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굿맨은 뭐니뭐니 해도 그만큼 음악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악기에서 나오는소리만 훌륭하면, 그리고 그 소리가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는 반인반마라도 자신의 일에 가담시켰을 것이다. 베니 굿맨한테는 피부색보다 그 시대의 뛰어난 뮤지션을 기용하여 분위기를 쇄신하며서, 자신의 악단을 항상 자극적이고 첨단의 존재로 유지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먼 훗날 주트 심스와 필 우즈처럼 철저한 모더니스트를 멤버에 가담시켰을 때는 수완 좋은 그도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하여 일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옥.신.각.신 시.끄.러.웠.던. 사건의 전말은 베이시스인 빌 크로우가 쓴 <안녕 버드랜드>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절충적인 뒤죽박죽 밴드도 레코드에 한해서는 꽤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주므로, 굿맨의 의도가 전혀 빗나갔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베니 굿맨 하면 역시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된 무수한 병반이 우리들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이 황금 시대에 녹음된 굿맨의 연주는 한마디로 무엇이든 다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젊은 재주꾼 에디 소터(이때 겨우 20대 중반이었다)가 굿맨을 위해 쓴 어렌지먼트를 연주한 레코드에는 일종의 독특한 참신함이 있으며, 종래의 '스윙의 황제' 노선과는 다른 풋풋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즉 굿맨의 달콤하고 녹작지근한 자질과
소터의 다소 딱딱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융화되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오락성 풍부한 음악을 창조해낸 것이다.
 
 굿맨도 소터의 의욕적인 편곡에 자극을 받았으리라. 예를 들면 <문 라이트 온 더 갠지즈>(Moon light on the ganges)에서 굿맨의 클라리넷 솔로는 상당히 첨예하고 모던한 색채를 띠고 있으며, 거기에는 '그저 달콤한 오락적인 재즈'라고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기백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굿맨 역시 아직은 젊었고 그 나름대로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열기로 넘쳤던 저 유명한 <카네기 홀>에서의 라이브 연주도 멋지지만 듣다보면 싫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에는 이 앨범 를 들으면 좋다. 에디 소터가 편곡하여 베니 굿맨이 연주한 곡들은 유감스럽게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겠지만) 대중적인 호응은 얻지 못했지만 훗날 소터는 스탄 겟츠와 함께 조형미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포커스>(Focus)라는 탁월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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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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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암스트롱은 열세 살 때 사소한 장난질 때문에 경찰에 붙잡혀, 뉴올리언즈에 있는 '소년원'에 수용되었다. 소년원 생활은 엄격하고 힘들었지만 악기와의 만남이 그의 고독을 구원해 주었다. 그 이후 루이에게 음악이란 마치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 되었다.

 루이가 소년원 밴드에 들어가 맨 처음 손에 든 악기는 탬버린이었다. 그리고 탬버린은 마침내 드럼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에는 나팔이 되었다. 기상, 식사, 소등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 소년이 사정이 있어 소년원을 나가게 된 덕분에 루이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엉겁결에 나팔부는 방법을 배우고, 대역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 신기한 변화 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가 매일 아침 나팔을 불면서부터 모두들 즐거운 기분으로 눈을 뜨고, 또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째서일가? 그 까닭은 루이가 부는 나팔 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매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일화--스탯 터클이 《자이언츠 오브 재즈》(Giants of Jazz)란 책 속에서 소개한--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 하나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편안함, 자연스러움, 매끄러움--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마는 기적적인 '매직 터치'

 우리들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들으면서 늘 변함없이 '이 남자는 정말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느낌은 놀랄만큼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존경하면서도 무대에서 백인 청중을 향하여 이를 드러내고 싱긋싱긋 웃는 그의 연예인 근성을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하지만 나는 루이는 정말로 즐겁고 신이 나서 웃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자기가 이렇게 살아서 음악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귀기울인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여, 체면이니 염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싱긋싱긋 이를 드러내고 웃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즈 마칭 밴드와 함께 성장한 거의 마지막 뮤지션이었다. 그것은 장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그리고 장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의 한없는 환희를 복돋우기 위한 실용적인 음악이었다. 루이의 음악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음악이 가닿는 것이었다.

  트럼펫 주자는 자기 악기를 흔히 '챠퍼'(Chopper)라고 한다. 이는 고기를 자르는 부엌칼을 말한다. 1928년에 녹음된 <웨스트 엔드 블루스>(West End Blues)의 단호하고 굵직한 연주에 귀기울여 보라. 그가 얼마나 강인한 챠퍼를 쥐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으로 하여 그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도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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