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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29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 2008.08.29 Eric Dolphy(1928-1964)
- 2008.08.29 Thelonious Monk
- 2008.08.28 Charlie Christian
- 2008.08.28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 2008.08.28 베니 굿맨(Benny Goodman)
- 2008.08.28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 2008.08.28 아트 블래키(Art Blakey)
- 2008.08.28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
- 2008.08.28 냇 킹 콜(Nat 'King' Cole)
아무리 허망한 영위일지라도 궁극을 따져보면 그 나름의 고유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머셋 몸이 말했듯,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는' 것이다.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에도 물론 철학이 부수된다. 그것은 바로,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큰 소리로 듣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철학은 아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진실이다. 왜냐하면 카운트 베이시가 빚어내는 음악에 담겨 있는 가장 훌륭한 특질은 그 음악적 '풍압'에 있기 때문이다. 스피커 앞에 앉아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음악을 듣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날아갈 뼌했다면(불과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당신은 이미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풍압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소리를 크게 하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소리가 큰 악단'이란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보다 음향적으로 박력있는 물리적으로 큰소리를 내는 빅 밴드는 그밖에도 많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 탁월한 부분은 그 소.리.의. 작.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정성스럽고 조그만 소리를 쌓아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작은 음을 사용하여 듣는 이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스윙을 들려주는, 마치 쾌할한 고문자처럼......, 가만히 앉아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 놀라운 솜씨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정이 동으로 전환되어, 브라스 밴드가 거침없이 와일드하게 포효할 때 우리들은 낙차의 다이너미즘에 뒤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튕겨나가는 것이다. 작은 소리든 큰소리든 진지하고 대담하게 스윙하는 재주만큼은 다른 어떤 밴드도 흉내내지 못한다. 그 밴드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해도, 캔자스 시티에서 온 윌리엄 베이시(카운트 베이시의 본명) 씨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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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Dolphy(1928-1964)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1958년 치코 해밀턴 밴드에 참가한 후 1960년부터 찰스 밍거스 그룹에 참가함과 동시에 오넷 콜맨과도 공연하였다. 그 후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였다. 존 콜트레인과도 공연하였다. 전통적인 조성의 세계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수법을 도입 찰리 파커 이후의 하드 밥과 모드나 프리등의 혁신적인 재즈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에릭 돌피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이 <Out There>란 프레스티지 사 초기의 LP가 내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음악적 내용도 뛰어나지만 그와 동시에(랄까, 그 이상으로) 오리지널 재킷의 그림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초 현실 주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살바도르 달리풍의 그림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색소폰을 부는 돌피가 공중에 떠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타고 있다. 돛은 첼로 지붕은 심벌즈, 벽으로는 호른이 튀어나와 있고 밑바닥에는 불길한 거머리처럼 플루트가 딱 달라 붙어 있다. 뱃길 뒤로는 악보가 떠다니고 언덕 위에는 등대 대신 메트로놈이 서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다. 마치 우주의 변경처럼(아니면 가물거리는 전등이 달려 있는 광처럼) 어둡다.
그림에는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기술의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한 독창적인 상상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화가의 이름조차 명기되어 있지 않다. 재킷 한 귀퉁이에 '예언자'라는 타이틀이 보일 뿐이다. 아마도 이 레코드를 위한 오리지널 그림을 의뢰 받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젊은 화가는 -당시 프레스티지 레코드는 재킷 디자인에 고액의 개런티를 지불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름도 내세우지 못하고 세월 너머로 잊혀졌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 재킷이 왠지 마음에 끌린다. 그리고 에릭 돌피하면 이 작가 불명의 '달리풍'그림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외람될 지도 모르겠지만 에릭 돌피란 사람의 시대를 앞서가는 독특함과 성실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또 다소는 미심쩍은(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악풍에 이 그림의 톤이 신기할 정도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만약 이 그림을 일류 화가가 그렸다면 또는 진짜 달리가 그린 그림이라면 나는 그다지 매료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참 모를 일이다.
또 이 재킷 뒷면에는 돌피 자신의 이런 발언도 인쇄되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새롭고 또 굉장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야말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인 이곳 뉴욕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 레코드가 녹음 된 것은 1960년 8월 전통을 강조하듯 보수적인 50년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조금 전의 일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여 오래도록 그늘에서 생활해야 했던 에릭 돌피한테도 이 무렵부터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음악적으로도 상당한 비약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는 1964년 6월 심장 발작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우리들은 모두 우주의 변경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에릭돌피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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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블랙 커피와, 담배꽁초로 가득한 재털이와, 대형 JBL 스피커 유니트, 읽기 시작한 소설(예를 들면 조르주 바타이유나 윌리엄 포크너), 가을 초입의 스웨터, 그리고 도시의 한모퉁에서 감당하는 서늘한 고독 -- 그런 정경은 지금도 내 안에서 셀로니우스 몽크와 곧바로 연결된다. 멋진 정경이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은 잘 찍은 사진처럼 아름다운 균형으로 애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다.
몽크의 음악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지적이면서도 괴팍스럽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소리들이 하나같이 옳았다. 그 음악은 우리들의 어떤 부분을 아주 강하게 설득하였다.
그의 음악을 비유하자면, 어디선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 무언가 아주 굉장한 것을 테이블 위에 슬쩍 올려놓고 그대로 아무말없이 사라지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같다. 몽크를 주체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즉 하나의 미스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일스나 콜트레인은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하고 천재적인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수께끼의 사나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몽크의 음악이 언제부터 그 원래의 광휘를 잃게 되었는지, 수수께끼가 수수께끼이기를 그만 두었는지는 실은 나도 잘 기억하고 있지 않다. 후기의 곡 중에서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전후의 일이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몽크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희미해져 갔던 것처럼 그같은 정경의 신비성이나 균형감도 조금씩 상실되었다. 그리고 그 걷잡을 수 없는 비신화적인 시대(1970)가 도래하였다.
나는 이 <5 by Monk by 5>란 대칭적인 제목의 LP를 신주쿠의 하나조노 신사 근처에 있는 <마루미 레코드점>에서 샀다. 수입판이라서 당시의 내 주머니 사정에 견주면 상당히 비쌌다. 내가 레드 갈랜드의 프레스티지 판을 사려고 하자, 가게 주인이 '젊은데 그렇게 시시한 것을 사다니. 이거 사다가 한번 들어보라구'라고 설교를 하기에 억지로 사고 말았다. 정말 이상한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옳았다. 이 LP는 닳아빠지도록 여러 번 들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모든 음, 소절 속에 짜내어도 짜내어도 다 짜낼 수 없을 정도의 자양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젊은 인간의 특권으로 나는 그 자양을 남김없이, 세포 깊숙이 빨아 들였다. 그 무렵에는 거리를 걸을 때에도 머릿속에서 몽크의 음악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몽크의 음악이 얼마나 멋진 지를 전하고 싶어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나는 그때, 그 또한 절실한 고독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였다. 나.쁘.지. 않.다.. 외롭지만 나쁘지 않다. 나는 그 무렵, 여러 가지 형태의 고독을 열심히 그러모으고 있었던 듯하다. 담배를 무수히 피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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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굿맨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체제' 속에서, 몇 소절밖에 주어지지 않은 솔로를 연주하며 발산하는 그의 자연스러운 시심이 우리들의 귀를 사로잡고 마음에 호소한다. 벌써 50년이나 지난 옛날 녹음인데, 크리스천의 기타 솔로는 지금 들어도 고리타분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기적적으로 높은 영역에 도달해 있다. 모던이니 밥이니 스윙이니 하는 틀을 넘어 실로 지적이며 스릴이 있고, 스윙감 또한 뛰어나다.
특히 심플하고 쾌활한 소절을 담고 있는 <브렉퍼스트 퓨드>(Breskfast Feud)에서 베이시와 크리스천의 솔로 응수는 매우 첨예하고 휼륭하다. 레귤러 BG 캄보에서 연주한 크리스천의 연주도 물론 들을 만하지만, 독특한 시간 감각으로 지축을 흔드는 베이시의 리듬 섹션과 , 크리스천의 솔리드한 노선의 결합은 정말이지 '뼈까지 스윙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스윙의 마그마가 끓어오른다. 재즈가 아직은 '영웅적' 이었던 시대의 귀중한 기록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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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니 굿맨 하면 역시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된 무수한 병반이 우리들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이 황금 시대에 녹음된 굿맨의 연주는 한마디로 무엇이든 다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젊은 재주꾼 에디 소터(이때 겨우 20대 중반이었다)가 굿맨을 위해 쓴 어렌지먼트를 연주한 레코드에는 일종의 독특한 참신함이 있으며, 종래의 '스윙의 황제' 노선과는 다른 풋풋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즉 굿맨의 달콤하고 녹작지근한 자질과 소터의 다소 딱딱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융화되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오락성 풍부한 음악을 창조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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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화--스탯 터클이 《자이언츠 오브 재즈》(Giants of Jazz)란 책 속에서 소개한--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 하나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편안함, 자연스러움, 매끄러움--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마는 기적적인 '매직 터치'
우리들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들으면서 늘 변함없이 '이 남자는 정말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느낌은 놀랄만큼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존경하면서도 무대에서 백인 청중을 향하여 이를 드러내고 싱긋싱긋 웃는 그의 연예인 근성을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하지만 나는 루이는 정말로 즐겁고 신이 나서 웃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자기가 이렇게 살아서 음악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귀기울인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여, 체면이니 염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싱긋싱긋 이를 드러내고 웃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즈 마칭 밴드와 함께 성장한 거의 마지막 뮤지션이었다. 그것은 장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그리고 장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의 한없는 환희를 복돋우기 위한 실용적인 음악이었다. 루이의 음악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음악이 가닿는 것이었다.
트럼펫 주자는 자기 악기를 흔히 '챠퍼'(Chopper)라고 한다. 이는 고기를 자르는 부엌칼을 말한다. 1928년에 녹음된 <웨스트 엔드 블루스>(West End Blues)의 단호하고 굵직한 연주에 귀기울여 보라. 그가 얼마나 강인한 챠퍼를 쥐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으로 하여 그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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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던 재즈를 접했다.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재즈 콘서트였다. 장소는 코베, 나는 중학생이었고 재즈가 어떤 음악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호기심이 일어 티켓을 사가지고 들으러 갔다. 당시만 해도 외국의 유명한 뮤지션이 방일하여 연주하는 일이 극히 드문 데다 평판도 자자하여, 아무튼 들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추운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프레디 하버드, 웨인 쇼터, 커티스 플러 등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 전열을 장식하고 있었다. 새 편성에 따른 모드 진행의 삼관 섹스텟(Sextet)--- 지금 생각하면 시대에 획을 긋는 더할 나위없는 라인업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전혀 몰랐다. 리듬 섹션은 블래키, 시다 월튼, 레지 워크맨. 무대 앞으로 조금 나와 노래한 가수는 자니 하트만이었다.
과연 내가 그 밤에 들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너무 어려웠다. 당시의 내가 라디오나 레코드로 들었던 음악은 주로 로큰롤에 재즈는 냇 킹 콜 정도였으니 음악의 수준이 명백하게 다르다. 그 밤의 무대에서는 '잇츠 온리 페이퍼 문'(It's Only a Paper Moon)과 '스리 블라인드 마이스'(Three Blind Mice)가 연주 되었다. 나는 이 두 곡을 알고는 있었는데,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원곡의 멜로디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멜로디가 파괴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기준과 필연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애드리브(Adlib)라는 개념이 나의 지식 상자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무언가, 나의 마음을 관통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비추는 무엇'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역시 음악 그 자체가 충실하고, 미래 지향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흑인 특유의 정열적인 느낌이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때 나를 가장 강하게 압도하였던 것은 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섯 명의 의욕적인 뮤지션들이 자아내는 톤은 그야말로 힘차고 도발적이며, 신비하고, 그리고'''''' 검.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리를 검은 색상으로 느꼈다. 물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전부 흑인이라는 시각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은 아니다. 내가 그들의 톤에서 느끼는 색이, 정말 검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새카만 것이 아니라, 초콜릿 색이 약간 섞인 깊은 검정''''''. 나는 그 색으로 완전히 물들어, 망연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콘서트 후, 블래키의 초기 레코드를 구입하여 몇 번이나 들었다. '위험한 관계 블루스'(Les Liaisons Dangereuses)가 들어 있는 레코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내 한 시대의 어떤 상황이 알알이 되살아 난다. 그 배경은 색깔 역시 검정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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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도 그의 노래로 들은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란 소설을 썼는데, 나중에 냇 킹 콜은 '국경의 남쪽'을 부르지 않았다(적어도 레코드 녹음은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설마' 싶어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조사해 보고서야 놀랍게도 정말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틴 앨범을 몇 장이나 발표했음에도 무슨 까닭인가 '국경의 남쪽'만은 빠져 있었다.
그러니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 결과적으로는 그 편이 오히려 낫지 않았나 싶은 기분도 든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어디에도 없는 세계의 공기를, 거기에 있다고 상정하고 들이마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LP<애프터 미드나이트>(After Midnight)가 녹음된 것은 1956년, 캐피털에서 스타 가수가 된 냇 킹콜치고는 가장 재즈적인 요소가 짙은 레코드다. 멤버가 좋다. 레귤러 리듬 섹션(물론 피아노는 콜이다)에 게스트 솔로이스트로 참가한 뮤지션이 해리 에디슨, 윌리 스미스, 팬 티졸, 스탭 스미스 등이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너무 수더분하지도 않고, 너무 튀지도 않고, 더구나 다른 사람과는 견줄 수 없는 재주를 지닌, 그야말로 좋은 시절의 프로페셔녈들의 작업이다.
잼 세션이 아니라 한 곡마다 한 명씩 솔로를 연주한다. 일을 끝내고 재즈 바에 홀연히 들른 재즈 뮤지션이, 청중의 환호에 무대로 올라가 부담없는 마음으로 몇 곡 연주하며 '놀고 가는'그런 분위기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기획도 주도면밀하여 흥미롭다.
그런 곡들 중에서도 내 생각에 가장 멋진 부분은, '섬타임즈 아임 해피'(Sometimes I'm Happy)에서 스탭 스미스의 연주이다. 지금까지 녹음된 재즈 바이올린 솔로 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연주 중의 하나다. '재즈 바이올린 따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들어보셨으면 한다. 스미스의 풍요로운 바이올린은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꼭꼭 깨물듯 정성스럽게, 또한 정성껏 노래하는 냇 킹 콜의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러나 윤택하고 깊이있게, 인간의 마음의 결을 노래한다. 이 곡을 들으면,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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