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4:13

Shelly Manne

Shelly M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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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셸리 맨은 어느 모로 보나 드럼의 달변가이다. 그러나 절대로 수다쟁이는 아니다. 언변이 좋으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 미묘한 구분을 분명하게 하는 데에 그의 음악가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가게에 비유하면, 맛깔난 안주를 조그만 접시에 담아 차례차례 내놓는 술집과 같다. 안주는 어느 것이나 보기 좋고 세련되고 나름의 철학이 있다. 술집 아저씨도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고 성가시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일이 없고, 손님의 안색을 살피면서 임기웅변적으로 안주를 안배한다. 가격은 결코 비싸지 않지만, 내용을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건너편 '맥스 로치'의 가게처럼 아저씨가 무뚝뚝하고 가게 안의 조명은 어두컴컴하고, "맛만 좋으면 돼. 잠자코 먹고 마시고, 다 먹었으면 잽싸게 꺼지라구. 구질구질한 공사치는 필요없으니까"라는 식의 하드한 부분이 없다. 그러니 유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재즈를 듣기 시작하면서, 셸리 맨의 "My Fair Lady"에 푹 빠져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 곡만 들었다. 애드립까지 송두리째 외웠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셸리 맨만큼은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감히 말하건대, 컨템퍼러리에서 나온 그의 리더 앨범은 어느 것이든지 다 신난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라이브 녹음이 좋다.
  이런 말을 하면, 드럼에 관한 한, 흑인지상주의자가 대부분인 일본의 팬들이 눈살을 찌푸릴 듯한데, 그렇다고 세상의 술집이 모두 '맥스 로치 가게' 같다면 좀 피곤해지지 않을까. 나는 로치도 블래키도 좋아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나는 셸리 맨의 세련된 취향과 달변이면서도 간결하고 멜로디컬한 드러밍에 자극을 받은 미국 서해안의 뮤지션들이 평소보다 한결 더 뜨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듣는)것이 좋다. 그 온도치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웬만한 기쁨이다.
  로스 맥도널드는 이렇게 썼다. "캘리포니아의 사계절이 없어서 재미없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계절이 분명하게 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과연 명언이다.
  셸리 맨의 앨범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Shelly Manna & Hits Men at the Black Hawk"이다(네 장짜리 세트인데, 미발표곡을 모은 5집이 최근 CD로 나왔다). 이 라이브 음반의 열기는 무척이나 스릴 있고 듣는 보람이 있다. 앞줄에 배치된 드럼펫의 조 고든과 테너 색소폰의 리치 카뮤카가 미소가 절로 감돌게 하는 수수하고도 견실한 솔로를 들려주고, 피아노의 빅터 펠드맨도 (때로는 시끄럽기만 하지만) 곳곳에서 세련된 맛을 낸다. 리더인 셸리 맨은 철저하게 뒤에서, 열심히 온갖 '안주'를 내놓으면서 등뒤에서 모두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후려친다. 같은 시대의 동해안에서 활동한 흑인 밴드의 육중한 음향에 비하면 "정념이 희박하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만약 여기에 있는 것이 재즈란 음악이 준 기쁨의 하나가 아니라면, 나는 재즈 따위는 듣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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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Krupa

 Gene Kr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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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크루파란 이름은 베니 굿맨 악단에서 연주한 "Sing Sing Sing"의 솔로를 머리에 떠오르게 하고 자칫 "좀 참아주시지"하는 기분을 들게 하지만, 굿맨이 남긴 전성기의 레코드를 찬찬히 들어보면 그렇게 화려한 드러밍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이며 평소의 크루파는 리듬섹션의 일원으로 성실하고 장인 기질의 연주로 일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테니 윌슨, 굿맨과 함께 한 트리오와 거기에 라이오넬 햄프턴이 가세한 오중주단에서의 크루파의 역할은 베이스 주자가 없는 그룹을 위하여 부드럽고 견실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그의 드럼은 그 직무를 충분히 다했다. 그가 두드리는 '싱글벙글 비트'에서 뼈속까지 뒤흔드는 듯한 밀도 높은 신명감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당시 흑인 드러머들의 소박한 스윙을 백인 청중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번역한' 그의 컨셉은 프랙티컬하고 진취적 기상이 넘쳤으며 지적이기도 했다. 특히 뛰어난 청력, 예민한 신경 등의 그의 각별한 특질은 그의 뒤를 이은 백인 드러머들의 스타일을 기본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윌슨, 햄프턴 같은 흑인 뮤지션과 스몰 밴드에서 그저 무심하게 자유로운 즉흥연주를 즐기는 굿맨 어르신 사이에서, 백인 밴드--- 기본적으로는 시카고 재즈이다 ---의 닻을 정해진 장소에 던지고 위치가 어긋나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던 것은 역시 크루파의 흐트러짐없는 비트였으며, 그것은 음악적인 급소라고 해도 지장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화려한 드럼 솔로를 일약 유명해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듬 메이커인 크루파의 값어치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크루파는 그런 굿맨 시대의 화려한 이미지로 낙인이 찍혀 독립을 하고서는 긴긴 세월 고생을 해야 했다.
  물론 크루파의 대표적 드럼 연주를 들으려고 한다면, 1930년대 굿맨 시대의 레코드를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가 굿맨 악단을 떠난 후에 조직한 빅 밴드도 상당히 신선하고 들을 만한 보람이 있다. 특히 1946년에서 57년 사이에, 당시 열아홉 살 제리 멀리건의 편곡으로 녹음한 "How High the Moon"과 "Disc Jockey Jump"와 같은 히트 곡에는 희미하게나마 팝의 내음마저 풍겨 지금 들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드럼도 적확하게 밴드를 떠받치고 있다. 그리고 12년 후에 크루파는 멀리건이 남긴 악보를 그대로 사용하여 버브에서 다시 음반을 내게 되었는데, 그런 종류의 기획치고는 의외로 재미가 있다. 오리지널 연주의 거친 면은 사라졌지만, 에디 버트, 카이 윈딩, 필 우주 등의 신세대 뮤지션의 옛 악보에 새로운 사운드로 솜씨 좋게 숨을 불어넣고 쏠쏠하다. 멀리건 자신도 "나의 스타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옛날 곡이라서, 기획 얘기를 듣고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상당히 좋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약관 열아홉 살에 무명인 멀리건의 재능을 간파하고 등용하여 밴드의 어렌지를 송두리째 맡긴 밴드 리더 크루파의 도량이랄까 모험 정신에도 재삼 경의 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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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한 지 오래지 않아 게리 버턴은 당시 비브라폰 주자로 절정에 있었던 밀트 잭슨을 비판했다가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그는 훗날 씁쓸하게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그때 절감했다. 주류를 가볍게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밀트 잭슨이 데뷔할 당시, 비브라폰 주자로서 재즈계에서 군림했던 뮤지션은 라이오넬 햄프턴이었다. 아니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를 재즈에 도입하여 기본적인 주법을 확립한 사람이 바로 햄프턴이었고 이미 그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밀트 잭슨은 그 거대한 선구자의 스타일을 파괴하고 자신의 새로운 이디엄을 명료하게 제시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밥 무브먼트 그리고 MJQ는 그의 유효한 무기가 되었다.
  그렇게 보면 햄프턴에서 잭슨으로 그리고 버턴으로 이어지는 비브라폰 주자의 역사적 추이는 다른 악기의 완만하고 집단적이며 대하적(大河的)인 계승성에 비해 개인간의 개성의 대비와 갈등이 보다 더 선연하다. 연주자의 절대수가 적은 마이너 악기인 만큼 일인일당(一人一堂)의 요소가 짙고 늘 고독한 긴장감이 강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옛날부터 비브라폰이란 악기를 좋아했다.
  헴프턴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스윙 밴드 시대의 발랄한 연주는 높이 평가받았으나, 전후에는 "그저 멋들어지게 노래할 뿐 아닌가", "지나치게 CM으로 흘렀다"는 이유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홀대를 받았다. 내 개인적으로는 노만 그랜츠 Clef-Norgran 레이블로 녹음한 일연의 스몰 캄보 연주(백은 오스카 피터슨, 레이 브라운, 버디 리치 등 예의 그랜츠 악단의 "무엇이든 좋아요'의 리듬 섹션)가 마음에 들어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일이 많은데, 이 레코드들도 세상 사람들의 입에는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다.
  하기야 이 무렵의 햄프턴의 음악에서는 혁신성이 거의 사라져서 어떤 곡을 들어도 대개 비슷하다. "뜨뜻미지근하다"고 표현한다면 반박할 말도 없었지만...... 그러나 타악기 비브라폰의 본질적인 특성으르 낙천적이고도 명쾌하게 전면에 부각시킨 햄프턴의 연주 스타일은 나름대로 바람직하고 들어서 기분이 좋다. 뜨뜻미진근할지도 모르겠으나, 회고에 물들지 않고 또 시류에 휩싸이는 일도 없다. 늘 하나의 완결된 언어가 있고, 그것은 보수나 혁신과는 다른 차원이므로 좀더 평가받아도 좋지 않을까? 오늘날에, 시대와 함께 비참하게 바람처럼 사라져간 무수한 '혁신성'의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닐까?
  주안점을 '신난다'는 데에 둔다면, 나는 임펄스의 "You Better Know It!!!"를 좋아한다. 1964년에 녹음한 앨범인데, 클라크 테리, 벤 웹스터, 같은 베테랑이 전열에 진을 치고 오랜만에 마음껏 스윙한다. 행크 존스도 좋다. 연주의 질도 높고 의욕도 충분하고, 신기하게도 퇴보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요즘은 이렇게 "저력있는 어른들의 놀이" 같은 앨범을 별로 볼 수 없다. 신나고 아주 좋은데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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