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9. 13:05

Mel Tor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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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 Torme 

  멜 토메가 죽기 몇 년 전, 그의 특별 기념 리사이틀을 듣기 위해서 나는 뉴욕의 카네기 홀에 갔다. 프랭크 포스터가 어렌지먼트를 담당한 스몰 밴드를 거느리고 멜 토메는 전성기를 방불하는 목소리로 매력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훌쩍 들럿다"는 제리 멀리건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몇 곡에 인상적인 바리톤 색스를 곁들였다. 그 멀리건도 곧 죽었다.
  멜 토메는 나이가 들어서도 예풍(藝風)이 시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경묘하고 세련된 스타일은 젊은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변하지 않았다. 인생의 연륜이니 고담(枯談)의 경지니 하는 그런 따위에는 서툴렀던 것 같다. 일일이 까다롭게 굴지 않고, 그러면서도 까다로운 것을 매끄럽게 해낸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입가에는 늘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뉴욕의 멋쟁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멜 토메는 원래 드러머였고 버디 리치는 원래 가수였다. 둘 다 같은 시기에 드럼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둘은 사이 좋은 친구였으므로, 라이벌 관계에 놓이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 의논했다. '버디, 나는 노래만 할 테니까, 자네는 드럼만 치라구.'...... 이렇게 합의를 보았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어느 시점부터 멜 토메는 오로지 가수로, 리치는 오로지 드러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이름을 날렸다. 결과부터 얘기할 수밖에 없다면, 그 반대가 되었을 때보다는 더 나았을 것이다.
  멜 토메가 남긴 대부분의 앨범은 세련된 재즈 향으로 가득해서 딱 한 장을 대표작으로 고르기는 어렵다. 멜 톤즈를 거느린 초기 연주도 싱그럽고 신나고, 50년대 베들레헴 버브 시대는 기력이 충만하고, 60년대 애틀랜틱의 앨범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만년의 연주도 "어째 좀 너무 잘 부르는 거 아냐"싶은 느낌만 빼면 불평의 여지가 없다.
  그런 전제하에서 개인적인 편견을 앞세워 고른다면, 나는 "Ole! Torme"를 좋아한다. 당시 유행했던 열두 개의 라틴 곡들을 그러모은 기획물인데, 쉽다면 쉽지만, 빌리 메이의 편곡이 상당히 멋지다. 멜 토메 하면 금방 마티 페이티의 지적이며 친밀한 중형 캄보의 연주가 떠오르는데, 물론 그것은 나름대로 멋지지만,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면, 역시 싫증이 난다. 그에 비하면 약간은 거칠게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리듬감으로 전개되는 빌리 메이의 사운드는 토메의 등을 떠밀어, 이 앨범에 여느 때와는 정취가 다른 '박력'을 선사하고 있다. 발랄하고 세련됨, 완벽한 콘트롤, 고상한 취향 등 일반적인 멜 토메의 세계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멜 토메가 빌리 메이와 좀더 많은 녹음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수는 노래의 품격이 프랭크 시나트라 쪽으로 기울까봐 꺼려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 한 모퉁이의 깔끔하고 아담한 나이트 클럽, 모피 코트, 샴페인과 칵테일, 그것이 멜 토메가 살았던 세계였다. 라스베가스의 대형 홀에서 노래한 시나트라적인 사운드는 그가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이 그가 멋쟁이 중의 멋쟁이라고 하는 이유겠지만, 약간 아쉬운 마음을 어쩌라.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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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Miller

Glenn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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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렌 밀러는 인기 절정에 있을 때 공군 소위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종군했었으나, 영불 해협에서 비행기 사고로 불의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아름다운 전설이 되었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그의 전기영화는 그의 전설을 통절하게 강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밀러는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보란 듯이 살아남은 셈이다.
  밀러의 음악은 재즈라기보다는 "재즈의 이디엄을 뿌려놓은 댄스뮤직"이라고 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당대에 인기를 양분했던 베니 굿맨 악단만큼의 혁신성도 없고, 적어도 레코드로 듣는 한, 그의 음악은 스윙하지도 않는다. 고작해야 소슬바람에 나부끼는 얇은 레이스 커튼 정도의 기품 있는 스윙이다. 악단에는 탁월한 뮤지션이 상당히 많았지만, 박진감 있는 솔로는 혀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 일반적인 재즈 팬이 밀러 악단의 음악에 진지하게 귀기울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밀러 악단이 남긴 몇몇 연주가 독자적인 스타일을 지닌 아름다운 양질의 음악이란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젊은 연인들에게 그의 음악은 아주 '실용적인' 음악장치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연주가 재즈이든 재즈가 아니든 그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젊은 남녀가 포옹을 하고서 아름다운 저녁 한때를 보내기 위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스윙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었다.
  내가 십대 초반이었을 때, 코베의 라디오 방송에 매일 밤 두 시간 동안 팝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와 봅 딜런 같은 팝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사이에 가끔 글렌 밀러의 곡이 흐르곤 했다. 예를 들면 "Hound Dog" 다음에 "진주 목걸이Srting of Pearls"나 "In the Mood"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온 일본이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코베란 도시가 그런 점에서 비교적 특수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튼 1960년 초반에 글렌 밀러의 곡은 내게 '현역' 팝송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니까 내게 글렌 밀러가 남긴 한 다스 정도의 히트 송은 오랜 옛날의 고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운' 이제 이곳의 곡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란 첫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타이틀 백에 흐르는 음악은 "월광 세레나데Moonlight Serenade"가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는 공기 주머니 같다고 해도 좋을 의고적(擬古的)인 공기가 있다. 내 머리 속에서 그 시대의 코베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월광 세레나데"적이다. 그곳은 마치 어느 시대의 어느 곳도 아닌 곳처럼 느껴진다.
  1962년에 녹음된 "Silver Jubilee Album"에서는, 레이 에바르, 텍스 베니키, 모더네아즈와 같은 밀러 악단의 과거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밀러 사운드를 찬란하게 재현한다. 여름의 해질녘에 잔을 기울여 쌉싸름하고 시원한 샤블리스를 마시면서 이런 음악을 들으면 "스윙 같은 것 안 하면 어때"하고 생각하게 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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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 드문 미인인 재키 케인과 그의 남편 로이 크랄은 재주 많은 보컬 듀오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들은 세련되고 상큼하고 투명하고, 재즈 정신에 충만한 도회적인 음악을 창조했다. 흑인적이고 블루시한 끈적끈적함과는 인연이 없었고, 고뇌와 마음의 음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재키와 로이의 음악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확실한 오리지널리티가 있었고, 손바닥을 떠올리고 싶을 정도로 싱그러운 생명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재즈 코러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재키와 로이의 레코드는 거의 가지고 있고 오래도록 애청하고 있다. 아무튼 노래 솜씨가 훌륭하고(특히 재키의 자연스러운 미성은 매력적이다), 테크닉도 넘쳐 흐르고, 로이 크랄의 편곡도 세련되었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재키와 로이의 작품은 어떤 곡이든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다. "이건 어째 좀"하고 고개를 꺄우뚱해지는 곳이 없는 것이다. 40년대 후반, 찰리 벤트라 악단 시대의 풋풋하고 발랄한 보컬도 버리기 어렵고 컬럼비아 시대의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한 노래도 불평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딱 한 곡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그들이 1950년대 중반에 스토리빌 레이블로 남긴 두 장짜리 LP를 고를 것이다. 결혼한 후 벤트라 악단을 그만두고 둘이서 보컬 팀을 구성하여 그야말로 기력이 충만했던 시대의 기록이다. 싱그러움과 음악적 성숙이 적절하게 뒤섞여 질은 높은데, 피곤하지 않은, 어른을 위한 음악이 여기에 있다.
  "Storyville Presents Jackie and Roy"의 10인치 판에 수록된 여덟 곡은 조 모렐로 드럼과 빌 크로우의 베이스가 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당시(1955) 뉴욕의 힉코리 하우스에 매일 밤 출연하여 마리안 맥파틀랜드 트리오의 정규 멤버였다. 로이 크랄이 그 연주를 듣고 매료되어, 제발 부탁이라며 애원하여 이 두 콤비를 빌려 녹음 스튜디오로 데려왔다. 로이 자신이 피아노를 담당하고, 명수 배리 갤브레이스가 장인적이면서도 차분하게 기타를 연주했다. 혼은 없었다. 이 리듬 섹션이 실로 멋지다. 오랜 전부터 죽 같이 연주한 사람들처럼 밀고 당기는 호흡이 딱 들어맞는다. 특히 "Thou Swell"과 "Season in the Sun"에서 경쾌하고 밝은  재키와 로이의 노래 뒤로 들리는, 모렐로의 온갖 기교를 다한 연주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상쾌하다.
  그 모렐로의 명인적인 재주는 "Hook, Line and Snare"(로이 크랄 작곡)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 트랙에서는 주객이 바뀌어서 재키와 로이는 모렐로의 긴 드럼 솔로의 배후로 물러나서 득의의 스캣으로 참신한 코러스를 하고 있다.
  이 레코드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정도로 세련되고 고도로 기술을 구사하는 음악을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창출한 미국이란 토양(뉴욕이라고 한정이어야 할까?)에 그리고 그 특별한 시대에 새삼 경의와 감탄을 보내게 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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