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8. 14:37

Charlie Parker

Charlie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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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 <버드 앤 디즈>(Bird and Diz)의 연주 멤버는 신기한 인물들의 집단이다. 디지 길레스피와 베이스의 칼리 러셀 두 사람이 같이 연주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프로듀서인 노먼 그란츠가 드러머인 버디 리치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버드(파커)는 일거리가 없는 셀로니우스 몽크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각 통일성 없는 퀸텟(Quintet)이 구성되었다.

  리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공전의 테크닉으로 열심히 두드려댔기 때문에 개런티도 눈이 뛰어나올 정도로 높았다. 한편 몽크는 그 전위적인 스타일이 일반인에게 이해되지 않아, 인기는 물론이요 일거리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었다.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몽크와 리치는 전혀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피차가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지 원' 하는 식으로, 각자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날 스튜디오에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이건 나 개인의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이후,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처음 이 레코드를 들었을 때, 드럼을 맥스 로치나 케니 클라크가 연주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몽크의 피아노는 막 두드려 만든 쐐기처럼 날카롭게 다가오는데(솔로는 그다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그래도 유니크한 반주는 일품이다), '어때, 이래도'란 식으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전통적인 스윙 감각의 드럼에 김이 새고 만다.
   
  그런데 최근에 이 앨범을 새삼스럽게 들어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으음,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지만, 그래도 버디 리치의 드러밍은 굉장하군'이란 감탄사가 나오고 말았다. 화려하게 튄다는 인상은 변함없지만 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이 세션 특유의 드러밍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홀로 독자적인 길을 가는 몽크의 방향성을 부각시키는 것 역시 리치의 무모한 '두드려대기'였던 것이다. 이 두사람의 연주를 로치나 클라크가 대신하였다면 어쩌면 너무 틀이 꽉 잡혀 감동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파커의 연주 같으면. 그밖에도 휠씬 더 좋은 연주가 많은데'란 식으로 사정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리치의 드럼은 과연 시끄럽기는 하지만, 귀를 잘 기울이고 들으면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요소요소마다 어깨에 힘을 빼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할 만한 사람이다 싶다. 그러니 어쩌면 노먼 그란츠는 재능있는 뮤지션을 키우는 '재.배.자.' 로서 독자적이고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앨범 첫머리에 담겨 있는 <블루 무디드>(Blue Muddied)에서, 인트로를 연주하는 짜.릿.짜.릿한 심벌즈 소리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정말 좋습니다.
  찰리 파커에 대해 쓴다면서 버디 리치 얘기만 늘어놓고 말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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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Getz

  Stan G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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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 겟츠는 정서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껴안은 사람이었고, 그 인생 또한 평탄하고 행복하지는 않았다. 스팀 롤러처럼 거대한 에고를 부둥켜안고, 대량의 필로폰과 알코올에 혼을 침식당하면서, 철이 들어서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거의 모든 시기가 안정되고 평온한 생활과는 인연이 없었다. 주변의 여인들은 상처를 입었고, 친구들은 넌더리를 내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스탄 겟츠라는 한 인간이 아무리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활을 보냈다 해도, 그의 음악이 천사의 날개 같은 마술적인 부드러움을 잃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가 일단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서면, 그 무대에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렸다. 마치 불행한 미다스 왕의 손이 그에 닳은 모든 사물들을 빛나는 황금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처럼.
   그렇게 겟츠 음악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빛나는 황금의 멜로디였다. 열렬한 애드리브를 빠른 템포로 펼칠 때에도 거기에는 자연스럽고 윤택한 노래가 있었다. 그는 테너 색소폰을 마치 신의 뜻을 전수한 성대처럼 자유자재로 다루었고, 선명하고도 행복감에 가득한 무언의 노래를 자아내었다. 재즈의 역사에는 별들만큼이나 많은 숫자의 색소폰 연주자가 있다. 하지만 스탄 겟츠만큼 격렬하게 노래하고, 그러하면서도 안이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은 인간은 없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고, 다양한 재즈를 탐닉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스코트 피츠제랄드야말로 소설(the Novel) 이고, 스탄 겟츠야 말로 재즈(the Jazz)라고 생각하고 있다.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에게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 듯도 하다. 그들 두 사람이 창조한 예술에서 결점을 찾아내기 것 또한 가능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하자에 대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각인되지 못햇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들의 하자까지 유보없이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겟츠의 작품은 재즈 클럽 <스토리빌>에서 연주한 두 장의 라이브 앨범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온갖 표현을 초월할 만큼 경이롭다. 퍼내도 퍼내도 고갈되지 않은 자양분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무브'(Move>를 들어보라. 얼 헤이그, 지미 레이니, 테디 코틱, 타이니 캔의 리듬 섹션은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하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냉철하고 간소하며 동시에 땅속의 용암처럼 뜨거운 리듬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훌륭한 겟츠의 연주는 천마처럼 자유롭게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비상하여 눈이 시릴 만큼 초롱한 별하늘을 우리들 앞에 제시해준다. 그 선연한 움틀거림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왜냐하면 그의 노래는 사람이 그 혼 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굶주린 늑대떼를 가차없이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 속에서 짐승의 하얀 숨을 토한다. 손에 잡아 나이프로 도려낼 수 있을 정도로 하얗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숨을....... 그리하여 우리들은 조용히, 깊은 혼의 숲에 사는 숙명적인 잔혹함을 보게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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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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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와 벤 웹스터를 밥 이전의 3대 테너 색소폰 주자라 칭하는 데는 아무런 이의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호킨스의 예리하고 수직적이며 야심적인 연주, 웹스터의 균형미있고 직접적이며 스윙적인 시심,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혼의 비상을 꿈꾼 영의 부드럽고 대담한 리듬, 그 뛰어난 음악들은 지금 들어도 결코 세월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나 개인적으로는 세 사람 중에서 레스터 영의 연주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내가 레스터 영의 연주를 처음 의식한 것은 콜롬비아사에서 발매된 빌리 홀리데이의 30년대 후반 녹음을 들은 때이다. 간주로 들어 있는 테너 색소폰이 뭐라 할 수 없이 좋았다. 정말 마음을 쏙 빼앗겼다. 함께 연주한 멤버를 살펴보니 백밴드가 카운트 베이시 악단(아니면 실질적인 그 멤버)이었고, 테너 색소폰 주자는 레스터 영이었다.
  레스터의 솔로는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다. 테너 색소폰 주자면 너나할것없이 리드가 찢어져라 불어대던 빅밴드 시절에 그는 부드럽고 자비롭게 그 악기를 불었다. 자신에게 뭐라 말을 걸듯, 자연스러운 소리를 짜맞춰 갔다. 보다 큰 틀로 리듬을 파악하고 보다 넓은 세계관을 재즈 뮤직에 도입한 것이다. 그것은 보컬 세계에서 빌리 홀리데이가 하고자 했던 일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독창성은 두 삶에게 크나큰 부담을 주었고 그들 모두 유감스럽게도 그 현실적인 중압감을 견딜 만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부인인 빌리 홀리데이와 함께한 아름답고 따스한 합작의 기록을 레스터 영의 최고 연주로 꼽고 싶은데, 그에 대해서는 이미 빌리 홀리데이 항에서 얘기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휠씬 후기의 <프레스 앤드 테디>(Ptrss and Teddy)를 그에 버금가는 한 장의 앨범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함께 공연한 테디 윌슨도 빌리 홀리데이의 반주자로 오래도록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다. 아쉽게도 버브 시대의 레스터의 연주는 고르지 못한 면이 있는데, 1956년 1월에 있었던 테디 윌슨과의 두 세션(<프레스 앤드 테디>와 (재즈 자이언츠 56>)은 모든 곡이 완벽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발라드 '루이스'에서 연주하는 레스터의 그 따뜻한 음색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을 통과하여 체온을 채 잃기 전에 주변 공간으로 살며시 퍼져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레스터 영을 이렇게 회고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연주는 훌륭하지만 그 악기라니, 정말 봐줄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었어. 싸구려 악기를 고무줄이니 풀이니 껌 같은 것으로 덕지덕지 붙여놨더라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야말로 멋졌지."
  레스터 영에 대한 에피소드 중에서 나는 이 코멘트를 가장 좋아한다.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라고 생각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