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6. 00:39

非日常을 추천함!

아래 글은 덴쯔의 구보국장이 엘지애드의 세미나에서 강의한 내용을 요약 발체한 것이다.

난 구보국장의 강의를 수 도 없이 많이 들었고 늘 세미나의 통역을 도맡아서 했었다.

물론 오리콤의 사보에도 장기간 그분의 글을 연재하며, 번역을 했기 때문에 비록 직접 그뿐께

사사받은 것은 아니지만 내 광고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인 것만은 사실이다. 난 이미 광고업계를

떠났고 구보국장 또한 정년퇴임을 하신지가 벌써 9년이 되어간다.  은퇴후 10년만 일을 더하신다고    

했는데 ....   벌써  약속하신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다.  영원한 광고인!!!


우리의 24시간 - 잠자고, 일어나며, 먹고, 일하러 나가, 업무를 하고, 회의에 나가며, 전화를 한다. 이와 같이 거의 행동의 패턴은 정해져 있다. 용케 싫증도 느끼지 않는 매일 매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이와 같이 나날을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꽤나 재미있게 매일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무래도 그 까닭은 지내는 시간의 내용에 있다고 하는 것에 쉽게 생각이 와 닿는다. 아무리 늘상 하는 시간의 반복일지라도 내용은 언제나 같지 않기 때문에 매일 매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몸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도 그 혼은 회사와는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즐겁고 또 무리없이 해내는 것이다.
고안하는 것, 생각하는 것만 되풀이되면 그 인간은 이미 틀린 것일 것이다. 매일 여러 가지의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러한 '非日常的인 시간을 얼마만큼이나 내용 있게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그 사람의 행복은 그것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365일 언제나 같은 식당엣 항상 같은 식기로 식사를 하고 있다 해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 非일상적인 것이라면 그 사람은 매우 만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광고인이라면 이런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표현 작업에 유다른 규칙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 광고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남의 눈에 띄어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운데서 어떤 종류의 술렁거림을 일으켜야 하며 경쟁 회사로 하여금 부러움과 시기심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것 - 광고 용어로서 말하는 차별화이다.
따라서 차별화의 힘이 약한 작품은 마케팅 전략의 첨병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광고를 아주 단순화하여 생각할 때 A>B라고 하는 부등식이 떠오른다.
'B사의 물건을 사는 것보다 우리 회사의 것을 사는 쪽이 이익이다'라는 것을 전하기 위한 것이 광고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에 납득시키기 위하여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시키는 것도 그 까닭이다.
광고는 물건을 파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님을 이쪽의 씨름판에 반드시 올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광고 표현의 사명은 확실히 거기에 있으므로 마치 던진 볼이 부메랑과 같이 돌아오는 이치라 하겠다. 좋은 광고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반응이 있는 광고가 좋은 광고인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무릎을 치게 되는 훌륭한 캐치프레이즈, 눈길을 뺏는 Visualize, 깜짝 놀라게 하는 Situation - 우리는 그러한 광고를 만날 때에 찬탄을 하게 되며 동조의 웃음을 짓게 된다.
그 아름다움, 그 교묘함, 그 의외성, 모두가 그것들은 오로지 성공해야 하겠다는 장사꾼의 근성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장사꾼의 근성을 의미 깊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나는 '날카로운 크리에이터는 뛰어난 세일즈맨'이라고 하는 진실을 알아주리라 생각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일상성으로부터의 탈주」, 「논리의 뒤집음」, 「조화의 파괴」 혹은 「유행의 등짐」, 「습관의 리듬을 뒤바꾸어 봄」 등 "非"의 기호를 머리에 넣어 발상하면 표현의 세계는 무한하게 확대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유니크한 차별화의 지름길이기도 한 것이다.
유능한 크리에이터가 되려고 하는 인간이라면 한번은 이 "非"를 지닌 극히 感能的인 체험을 맛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비구름으로부터 머리를 내밀면 무한의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고 하는 실감을 가능한 빨리 체험케 하고 싶은 것이다.
"아, 광고란 이런거구나!" 그러한 느낌을 잡았다면 다음은 프로의 길, 일직선이다. 무한의 푸른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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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라는 소화작용

다음 글은 덴츠 제4CD국의 구보 아카시(久保丹)국장의 오리콤에서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 글이다.

35년 광고 인생을 지탱해 준 것은 '창조'라는 소화작용이었습니다.
 
제 이야기의 주제는 광고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문제, 본질적인 문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저의 35년간의 광고인으로서의 총괄이기도 합니다.

금년 10월이면, 덴츠를 퇴사하게 되는 저는 광고에 있어서의 생산성의 향상에 대한 리포트를 최근 회사에 제출하였습니다. 덴츠는 연간 1조2천억 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수치상으로는 세계 「NO 1」의 대행사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수치의 내용입니다. 서비스의 질이 확실하게 뒷받침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일본의 특수한 사정과 매체 확보능력(덴츠의 경우 몇몇 방송국의 프로그램 전체 광고권을 사서, 자사 광고주들에게 독자 배분하고 있다.) 등을 고려한다면 내용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비딩에서의 70%승률을 생각한다면 내용적으로도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다만 총체적으로 말하면 영업(기획)체질이 강합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 크리에이티브라고 해서 크리에이티브가 광고회사의 단순한 서비스 부문이었던 당시와 비교하면 요즘은 크리에이티브의 질에 따라 어카운트가 결정된다고 하는 격심한 경쟁시대에 돌입해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영업(기획)주도적인 체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은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역시 영업(기획)주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영업과 크리에이티브, 경제와 문화, 과학과 예술, 그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그럼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I. 광고인의 자질

-기본적인 2가지 사항

①광고인으로서의 자질 : INTELLECTUAL로서의 知(지혜)

②커뮤니케이션의 본질 : 비(非)의 기호, 도전적인 컨셉트, 더욱더 아이디어

즉, 광고인으로서의 자질이 풍부하고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알고 있으면 꾸준히 프로로서의 일을 할 수 있으며 그러한 프로들이 많이 있다면 광고회사의 생산성은 더욱더 향상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고인의 자질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만인에게 주어지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소화작용/상품으로서의 정보로 전환하는 능력」

즉, 이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개개인의 활발한 소화작용이 광고대행사의 생산성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5년간 카피라이터로 덴츠에 입사한 이래 저의 광고인 인생을 되돌아 보았을때 제 자신을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라고 한다면 이 소화작용이 저에게는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언제 그것을 몸에 익혔느냐고 하면 그것은 '소년시대'의 농업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라는 일은 식물의 생성과정에 있어서 성장력이 강한 것을 남기고 약한 것을 버림으로써 강한것이 양분을 집중시켜 더 한층 성장을 촉진시키는, 최종적으로는 수확률(면적)을 높히는 그러한 일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분별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눈으로 분별하고 몸으로 분별해 갑니다. 익숙해질수록 빨리 잘 분별할 수 있게 되며 이러한 분별 동작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몸안에 살아있게 됩니다.

덴츠에 들어가 얼마 안 있어 거기서 행해지고 있는 크리에이티브의 일을 보고 직관적으로 분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직관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만 그것은 경험을 쌓을수록 확신이 되었습니다.

카피라이터가 헤드라인을 10개, 50개 씁니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은 1개 뿐이며 49개를 분별해서 버리게 됩니다. 카메라맨이 몇백 커트의 사진을 찍더라도 사용하는 것은 기껏해야 2∼3장 정도이며 AD가 대부분 나머지를 버리게 됩니다. 포스터에서 말한다면 한 개의 헤드라인과 1장의 비주얼이 되겠지요. 방대한 글자, 언어, 비주얼은 이런 식으로 잘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6.3.3.4」의 사고체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

「말놀림, 그림 놀림, TV에서 말하자면 소리 놀림」, 크리에이티브의 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놀림의 테크닉입니다. 이러한 동(動)의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크리에이티브의 작업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이 동(動)의 능력을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집단이 AD입니다. 그래서 저는 갓 입사한 IQ가 높은 신입사원들을 뛰어난 AD 밑에 두어 훈련시켜 왔습니다. AD야말로 농업의 경험은 없지만 (손)놀림의 실천가인 것입니다.

크리에이티브라는 일은 극히 물리적인 작업입니다. 공간이라던가 시간(15", 30") 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것을 향해서 언어를 처리하고 그림을 처리하고 소리를 처리해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농부이기도 하고 목수기이도 하며 도예가이기도 한 것이지요. 이것은 IQ가 높다고 해서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곤란하게도 IQ 가 높은 사람일수록 농부나 기술직의 사람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결국광고의 재미에 접하지도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저의 친형은 마이니치(每日) 신문의 기자였습니다. 저와는 달리 IQ가 높고 상당한 지식인으로서 문장도 아주 잘 씁니다. 제 친형과는 사이가 좋기 때문에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만 저와는 물과 기름(그는 신문인, 나는 광고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글과 사진을 취급하면서도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인 것이지요. 한가지 논점을 계속 파고드는 구심적(求心的)사고의 신문인과 확산적, 원심적(遠心的)인 세계에 익숙해져 있는 광고인의 차이를 형을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신문인 뿐만아니라 출판인, 방송인, 대학교수 등에서 볼 수 있는 인텔리 공통의 사고패턴이 있습니다. 논리 구축의 수법, 연역적·귀납법적인 문제 정리의 방법, 그것은 바로 「6·3·3·4년제」라는교육에 있어서 몸에 익힌 사고법이며 그것이 인텔리들의 공통어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광고인이 이 INTELLIGENT(지능) 속에 몸을 두고 있는 한 풍요로운 생산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뛰어난 실무가는 생길지 몰라도 창조적인 광고인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광고인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하루 빨리 이 「6·3·3·4」의 사고체계로부터 벗어나야 바로써 창조적인(INTELLCCTUAL)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5년간의 총괄로 정리한 레포트의 마지막에 저는 회사에 대해 덴츠(DENTSU) 농업연수원의 개설을 제안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10년 동안 생각해 왔던 구상으로 IQ가 높은 신입사원들의 3개월 동안의 연수기간 중 강사를 붙여서 농업을 경험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번쯤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서 태양과 자연과 흙과 교류하는 순수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지요. IQ 라든가 고정관념을 타파해서 풍요로운 감수성을 되돌리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제안을 회사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의문입니다만 덴츠는 토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실행에 옮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요로운 감수성과 생리적으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능력, 이것이 창조라는 일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광고회사의 채용, 교육의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만 (광고=창조적 작업)이라고 한다면 광고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INTELLIGENT(지능)가 아닌 INTELLECTUAL(지혜, 창의)인 것입니다.

II. 커뮤니케이션의 본질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한마디로 쉽게 규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예를들어 CD나 스텝들을 지도할 때 혹은 체크 포인트의 잣대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다음 3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A. 비(非)라고 하는 기호

B. 도전적인 '컨셉트'

C. 더욱더 아이디어

A. 非는 부정적인 의미의 부(不)가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일상, 비논리 , 비현실, 비조화(부조화), 비상식, 비합리...」 비(非)는 인간의 욕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생을 계속 유지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해진 일상 속에 있더라도 그때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 비(非)적인 즐거움으로 충만되고 있기 때문이 인생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비(非)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TV-CF를 볼 때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비(非)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에 非(비)적인 요소를 넘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받아들이는 쪽이 극히 非(비)적인 상태, 즉 자신의 욕망에 의거해 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레서 광고에 비(非)적인 요소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체크 포인트가 됩니다.

비(非)적인 요소가 있는 광고는 재미있는 광고가 될 수 있지만 비(非)가 없는 광고는 단순한 광고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광고에서는 말, 비주얼, 소리 그 어딘가에 비(非)적인 것을 반드시 넣어야만 합니다.

B. 도전적인 '컨셉트'

'컨셉트' 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혼동되고 있으며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컨셉트의 개념은 기성 개념과 대립되는 생각, 혹은 발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산토리사의 '브랜디를 미즈와리(물에 티서 먹는 것)로 해서 마시자' 라는 캠페인을 봅시다. 그때까지 브랜디의 기성 개념이었던 부자가 저녁에 여유롭게 한 잔 마신다는 유럽식 개념을 물에 타서 마음껏 마신다고 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 한가지 예을 들겠습니다. 이전에는 카메라 하면 귀중품이었습니다. 그 카메라를 스포츠 용품으로 대중화 한 어느회사의 캠페인은 "나의 카메라는 라켓이다" "내 카메라는 유격수처럼 셧터를 눌렀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통해 그때까지 귀중품이었던 카메라를 마치 스포츠용품처럼 새로운 용도를 제안하여 카메라 시장을 확대하고 개척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직접 관여했던 캠페인 중에는 <하얀 크라운>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도요타 자동차의 크라운 하면 2000cc급의 고급차로 당연히 회사용으로 사용되는 검정색차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이것을 "하얀 크라운"로 바꾼 캠페인을 전개하여 일반사람들도 즐겨 탈수 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도전성이 없는 컨셉트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에 대한 도전, 시장에 대한 도전, 사회에 대한 도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컨셉트에 도전성이 있다고 한다면 어떠한 미팅에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C. 더욱 더 아이디어

이것은 그야말로 아이디어입니다. 아주 소박한 아이디어가 파급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래의 그림을 기체에 그려서 하늘에 직접 띄운 ANA의 마린 정보 캠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고에 있어서 빅 아이디어란 처음에 보기에는 아주 소박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주 소박한 것이기에 처음에 그것이 나왔을 때에는 반대든 찬성이든 참석자들의 반향이 많이 나와야만 합니다.

광고에 아이디어가 있느냐 없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느냐 없느냐가 때로 그 기업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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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6. 00:33

터미널.... 그리고 재즈


터미널 (The Terminal, 2004)
미국 / 2004.08.27 / 드라마,로맨스(멜로),코메디 / 128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터미널>의 안과 밖
 신기주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터미널>에서 아름다운 미국과 삶에 대한 낙관을 함께 보여 주고자 애쓴다. 톰 행크스의 넉넉한 연기 역시 <터미널>의 풍요로움에 덧칠을 한다. <터미널>은 스필버그가 이야기하는 현대 미국의 동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책상 위에는 여러 편의 시나리오가 수북이 놓여 있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막 마무리한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해리슨 포드가 출연할 <인디아나 존스 4>와 톰 크루즈 주연의 <워 오브 월드>, 그리고 이스라엘 첩보 기관 모사드를 소재로 한 첩보물의 제작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스필버그는 무언가 다른 걸 찾고 있었다. <터미널> 제작 노트에서 스필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터미널>은 가장 마지막에 읽었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나자 이전 시나리오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뭔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터미널>이 미국이다

동유럽의 소국 크라코지아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미국의 관문인 JFK 공항에서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빅토르가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 크라코지아 정부가 쿠데타로 몰락해버렸다는 것이다. 정부가 없으니 여권이나 비자가 효력이 있을 리 없다. 빅토르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공항 관리 책임자 프랭크(스탠리 투치)에 의해 공항에 버려진다. 빅토르는 미국에 입국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미국 당국도 빅토르를 추방시킬 명분이 없다. 따라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JFK 공항의 환승장에 빅토르를 방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처음엔 길어야 며칠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크라코지아 내전은 지리하게 계속되고 빅토르의 기다림도 끝없이 지속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공항 노숙자' 빅토르의 생활에 이상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오갈 데 없는 그는 뜻밖에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낙관적인 표정으로 공항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우선 빅토르는 공항 한켠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꾸민다. 영어도 배운다. 돈 버는 법도 배우고 친구도 사귄다. 그는 터미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알뜰한 삶을 일구어 나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과 엇비슷한 처지의 동유럽 여행객을 도와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사랑도 찾아온다. 유부남과의 해답 없는 연애로 상처받은 스튜어디스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빅토르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따스함을 선물한다. 삶에 대한 낙천적인 태도로 공항을 따뜻한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빅토르에게 공항 사람들도 감화된다. 그동안 9개월이란 시간이 흐른다. 승급 심사를 앞두고 있는 프랭크는 빅토르를 어서 쫓아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내의 가치를 아는 빅토르는 끈질기게 정식 입국이 받아들여지길 기다린다.

스필버그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바로 공항 터미널 안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국제 공항 터미널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 서로 다른 삶의 태도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이다. 스필버그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서로를 이해하며 평화롭게 사는 공간이 바로 자신의 조국 미국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민자의 동화를 꿈꾸다

<터미널>의 이야기는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수년째 살고 있는 한 이란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다.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59)는 1970년대 영국 유학 시절 이란 왕정 반대 시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고국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영국과 독일, 벨기에 등지에 망명을 신청하지만 번번이 거부당한다. 나세리는 영국 정부로부터 가까스로 난민 확인증을 받는다. 하지만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난민 확인증을 분실하고 만다. 영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한 나세리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드골 공항으로 돌아온다. 프랑스 당국 역시 나세리의 입국을 거부한다. 그러나 더 이상 나세리를 공항 밖으로 내치지는 않는다. 1988년부터 나세리는 그곳에서 ‘알프레드’라고 불리며 거주하게 된다.

사실 <터미널>의 실화에는 난민의 고달픈 현실과 국제 관계의 복잡함, 정치적인 억압, 그리고 아랍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 등이 깔려 있다.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공항이라고 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높다란 벽 틈에 영원히 끼어버린 불쌍한 낙오자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터미널>의 시나리오를 차기작으로 선택하면서 나세리의 고난한 이방인의 실화를 ‘이민자의 동화’로 탈바꿈시키고 싶어 했다. 이민자의 동화는 곧 미국의 동화다. 스필버그는 “빅토르는 이민자의 표상이다. 난 빅토르의 이야기가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원했다. 빅토르는 이방인이다. 그는 비록 미국에 입국하는 데 실패했지만 터미널에서 미국의 모든 것을 경험한다. 그것은 미국이 왜 강해졌는지, 사람들이 왜 이 젖과 꿀의 땅에 꿈을 이루러 오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빅토르는 별 노력 없이 터미널에 적응한다. 그것이다. 거대한 단지에 모두가 녹아드는 게 이 나라의 모습이다.” 스필버그는 신예 시나리오 작가 사카 저바시와 의기투합한다. 저바시는 “실제로 미국 땅에 발을 밟지 못하는 한 남자가 터미널 안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경험하는 것은 심오하고도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한다. 스필버그 역시 “능력이 있으면 인정받는 곳,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9.11을 생각하다

스필버그는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의 전쟁 수행을 지지한다는 골자의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또 최근 자신이 준비하던 이스라엘 첩보 조직 모사드를 다루려던 프로젝트를 연기했다. 테러 위협 때문이었다. 그의 모사드 프로젝트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했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거대한 테러의 시대에 또 다른 테러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후 결정한 것이 <터미널>이다. 거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스필버그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줬던 2001년 9.11 테러를 생각했다. 그는 참사 이후 미국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자국민들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너무 포악한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만 했다. “<터미널>이야말로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미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다. <터미널>엔 다양한 사람들의 위대한 혼합물인 미국을 찬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은 좀 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할리우드영화들은 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스필버그에게 <터미널>은 아름다운 미국을 그리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아름다운 미국을 카메라에 포착하기 위해 거리 밖으로 나서는 대신 거대한 인공 세트 안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 스필버그는 시나리오와 세트 작업을 위해 최고의 스탭을 끌어들인다.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앤드루 니콜은 <트루먼쇼>에서 이미 한 차례 ‘인공 세트’를 경험했었다. 세트 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의 도움으로 스필버그는 거대한 JFK 공항을 모두 세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사실 9.11 테러 직후 실제 공항에서의 영화 촬영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스필버그는 실제 JFK 공항과 꼭 같이 생긴 거대한 세트를 지었다. 세트를 다 짓는 데만 20주가 걸렸다. 비행기가 오가는 거대한 활주로는 거대한 천 위에 페인트로 중앙선을 그려 만들어냈다. 스필버그는 공항 세트 안에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면세점들을 빠짐없이 들여놓았다. 서로 다른 업종의 가게만 35개나 됐다. 스타벅스와 휴고 보스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은 그렇게 재현됐다.

박제된 신화를 만들다

<터미널>은 최근에 만들어진 스필버그 영화 중에선 이례적으로 지금 현재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터미널>에 진짜 현실은 없다. 빅토르 역의 톰 행크스는 “빅토르는 공항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오히려 미국이라는 거대 사회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터미널>의 요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터미널> 안에는 완전무결한 스필버그식 미국 사회만이 존재할 뿐이다. 스필버그는 현재의 미국을 그리기 위해 미국을 터미널 안에, 터미널을 다시 세트 안에 몰아넣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트리뷴’의 평론가 믹 라셀은 <터미널>의 비현실성을 이렇게 꼬집었다. '스필버그는 빅토르가 실제로 왜 공항에 머물러야만 하는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단지 또 다른 를 만들고 싶어 했을 뿐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녔으며 결국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외계인의 이야기 말이다.'

<터미널>의 미국은 박제된 미국이다. 스필버그는 터미널 밖 거대한 미국과 마주하는 대신 작은 공간, 한정되고 짜 맞춰진 미국 사회를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스필버그는 9.11 테러 이후 잃어버린 미국 사회의 진짜 모습을 영화 속 터미널 안에서 재현하려 했다. 그런데 그 진짜 모습이란 현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스필버그가 생각하는 미국,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신화적 미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롱닷컴’의 찰스 테일러는 '<터미널>의 동화는 순수한 마음이 전쟁과 자본주의 따위의 굴종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들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정치를 사탕발림으로 바꿔놓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터미널>은 말하자면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영화를 대표해온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최신작 <갱스 오브 뉴욕>과 비견될 만하다. 미국의 창세기를 그리며 미국 사회의 비열한 본질을 꿰뚫으려는 마틴 스콜세지의 노력을 스필버그는 슬며시 회피한다. 그것은 빅토르가 뉴욕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뉴욕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신 그는 주인공 빅토르가 미국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미국에 대한 장밋빛 낙관론을 펼친다. 이민자들은 가족과 재회한다. 사랑은 이루어진다. 인도 출신의 괴팍한 청소부 굽타(쿠마 팔라나)는 결국 빅토르에게 감화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빅토르가 공항을 떠나게 됐을 때 공항 직원은 모두 나와 빅토르에게 애정과 존경의 표시를 한다. 그것 자체가 스필버그가 꿈꾸는 미국의 신화인 셈이다.

논란에 휩싸이다

<터미널>은 미국 개봉 당시부터 찬반이 명확하게 갈린 작품이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터미널>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많은 평론가들이 톰 행크스와 스필버그가 <터미널>에서 녹여낸 넉넉한 낙관주의와 웃음에는 찬사를 보냈다. <터미널>은 미국의 신화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삶은 기다림’이라는 철학적 사색의 영화이기도 하다. <터미널>은 빅토르와 아멜리아의 만남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철학을 이야기한다. 스필버그는 “우리 모두가 잠시 동안 빅토르처럼 기다려야만 하는 시기를 거친다”며 “이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시카고 선 타임스'의 로저 에버트를 비롯해 많은 평론가들은 '<터미널>은 사랑스러운 영화'라며 '<터미널>은 고전 감독 프랭크 카프라의 낙천성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격찬했다. 하지만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데이비드 스트릿은 '스필버그는 <터미널>을 인간적인 코미디나 관료 사회에 대한 풍자 등으로 만들고 싶었겠지만 능력 부족으로 인해 결국 우스운 멜로드라마에 머물게 만든다'며 '스필버그는 다음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쥬라기 공원>으로 떠나야 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사실 <터미널>을 감싸고 있는 풍요로움은 <포레스트 검프>에 이어 다시 한번 톰 행크스가 보여 주는 넉넉한 연기 덕이 크다.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보다도 훨씬 더 먼저 <터미널>에 합류했다. “누구나 공항에 처음 갔을 때 억압되고 답답한 분위기를 느껴봤을 것이다. 요즘처럼 살벌한 공항 분위기만 봐도 그렇다. 빅토르는 공항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섰을 때 자신의 존재가 이곳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빅토르 같은 사람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거대한 무엇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에겐 너무 큰 장벽인 탓이다. 대신 빅토르는 기다린다. 여기 이곳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최선의 삶을 찾는다.” 빅토르의 기다림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빅토르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을지언정 단 한순간도 멈춰 서 있지 않는다. 그는 늘 움직인다. 기다림이란 쉼 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이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역동적인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야박한 현실을 가리다

<터미널>은 미국 개봉 직전까지 결말을 놓고 설왕설래에 휘말려야만 했다. <터미널>의 엔딩에서 빅토르와 아멜리아의 사랑은 이루어진 것도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닌, 열려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터미널>의 이런 결말을 놓고 미국에서조차 여러 차례 의견이 분분했다. 당초 빅토르에게는 할리우드식 엔딩의 로맨스가 허락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1991년 <후크> 이후 처음으로 <터미널>의 개봉을 앞두고 테스트 스크리닝을 했다. 테스트 스크리닝 직후 할리우드에서는 스필버그가 <터미널>의 엔딩을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낙관의 영화 <터미널>은 시종일관 긍정적이었던 분위기와 달리 마지막에서는 모든 것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묘한 영화가 됐다. 일부 스필버그 마니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테스트 관객들이 영화를 망쳤다'고 일갈했다.

<터미널>은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이어 세 번째로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터미널>은 오는 9월 1일 개막하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는 “<터미널>이 현대 미국 사회가 잊고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통한 갈등 해소를 일깨울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터미널>에서 미국이 넉넉한 낙관과 풍요로움, 그리고 세상을 적시는 재즈의 나라라고 말한다. 기다림의 미덕은 삶을 긍정하게 해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터미널 안, 미국 안에서는 꿈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터미널 밖에서도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터미널>의 실제 주인공 나세리는 아직도 프랑스 드골 공항에 살고 있다. 그는 빅토르와 달리 공항을 떠나지 않으며 공항 모두의 환영을 받는 존재 역시 아니다. 나세리에게 기다림은 무의미한 삶의 소진일 뿐이다. 그는 공항 한켠 지하 상가의 약국과 옷 가게 사이의 작은 틈새 집에서 생활한다. 올해로 16년째다.

 

 이 영화 너무 감명깊게 봤습니다.

 웃다 울다가  감탄하다가.....


 왜 재즈인가?   왜 베니골슨인가는 보시면 압니다. ㅎㅎ

 재즈의 매력 .....   저도 베니골슨이  다시한 번 듣고 싶어진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톰 행크스가 베니골슨에게 사인을 받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 재즈의 살아있는 전설  베니골슨"


Benny Golson
California Message


Date of Release Oct 1, 1995 (recording) inprint

Curtis Fuller - Trombone
Bill Mays - Piano
Oscar Brashear - Trumpet
Benny Golson - Arranger, Sax (Soprano), Sax (Tenor)
Thurman Green - Trombone
Roy McCurdy - Drums
Bob Magnusson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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